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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새 정부 들어 쇠고기 파동을 거치며 민심의 호된 질책을 맛본 한나라당의 고민이다. 작년 대선에서 당과 후보의 지지율이 시너지 효과를 거둬 압승을 거둔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다.

 

대통령의 정책 방향을 놓고 당·청 갈등이 격화되며 지지율이 동반추락해 급기야 '공멸'의 길을 걸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모습을 답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시들시들한 '여당' 한나라당... 경선 분위기도 미지근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석 달이 다 되어가고 여대야소 국회의 호조건이지만 여당은 갈수록 활력을 잃고 있다.

 

한나라당은 7월 3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원내대표 경선(22일)을 비롯해 디지털정당위원장과 청년위원장(이상 21일) 등 각 부문별 선출직 당직선거가 줄줄이 잡혀있다. 그런데 특정인이 유력후보로 부상하며 출마를 재던 사람이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하고 경선 자체가 무산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전국 1만5천여 명의 직능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중앙위의장에는 이재오 의원의 측근 이군현 의원이 단독 출마해 당선됐고, '여대야소'라는 호조건에서 한나라당을 이끌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에는 홍준표·임태희 의원이 경선 없이 추대될 것으로 보인다.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의 사정도 비슷하다. 총선 직후만 해도 박근혜 전 대표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정몽준 의원의 당권 도전이 화제를 일으키는 듯 했지만, 지금은 민정당 출신 중진 박희태 의원의 옹립이 유력하다. 명목상 경선을 치른다고 해도 이명박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누를 만한 대항마를 당내에서 찾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오히려 당대표 출마 가능성이 점쳐졌던 안상수 원내대표가 20일 18대 상반기 국회의장 도전으로 갑자기 선회하는 바람에 명예직에 불과한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할 판국이다.

 

야당 시절 한나라당의 전당대회와 원내대표 경선은 후보들의 치열한 선명성 경쟁으로 후끈 달아오르곤 했다. 여당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주공격수를 뽑는 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당이 된 한나라당에서는 그런 모습을 더 이상 찾기 어렵다. 청와대를 겨냥해 "야당 시절에 없던 '보이지 않는 손'이 당내 경선을 좌지우지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 당직자는 "야당 시절의 국회의원은 일 할 자리가 많지 않아서 '자기 홍보'를 위해 당내 경선에 나서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당이 됐으니 의원들도 안정감이나 모양새를 살리는 쪽으로 취향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정부 비판'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강재섭 대표가 19일 청와대 주례 회동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정 쇄신'을 건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당·정의 최고책임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국정을 논의하지 못하고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당무를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5공 시절'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여당 내에서 독특한 성격을 구축했던 이재오 의원의 '퇴장'이 여당의 대정부 '종속' 현상을 심화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인 이 의원은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함께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하고픈 얘기를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힌다. 지난 총선의 수도권 압승으로 이 의원과 코드가 맞는 '신진 세력'이 대거 국회에 들어오며 이 의원이 당권을 장악할 조건이 무르익었지만, 정작 이 의원 자신이 낙선함으로써 신주류의 구심점이 사라져버렸다.

 

차기 당대표로 유력한 박희태 의원의 경우 작년 대선이 끝난 후 '당·정 분리'를 명문화한 현행 당헌의 완화를 주장했던 인물. 이 때문에 전당대회가 끝난 후에는 '여당의 정부 종속' 현상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헤아리고 당·청 관계의 미세한 부분까지 챙길 수 있는 실세 정치인의 공백이 당·청 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당내 토론이 부재하고 대정부 비판이 사라진 세태에 대해서도 당내에서 뒷말이 많다. 그러나 자기 이름 석 자를 걸고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사람은 없다.

 

비록 야당이 아니라고 해도 땅투기 논란과 정책 혼선 등 이명박 정부의 난맥상들에 대해서는 여당도 따끔한 지적을 할 만 했지만, 당 지도부 중에서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건 사람은 이한구 정책위의장뿐이었다.

 

실세도 없고 소장파도 없다

 

야당 시절 한나라당 의원들의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던 당 홈페이지 '국회의원 발언대' 코너에 '쇠고기 수입'에 대한 의원들의 글이 한 건도 올라오지 않은 것도 더이상 화제가 아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농해수위 청문회에서 한 것이라고는 "노무현 정부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고 하지 않았냐"는 식의 '물타기' 질의 밖에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정국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정의화·원희룡 의원 정도만이 '재협상'을 바라는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부에 목소리를 냈을 뿐 대다수 의원들은 "좌파의 선전선동으로 촛불시위가 일어났다"는 음모론에 묵시적으로 편승했다.

 

강재섭 대표의 한 측근은 "강 대표가 이 대통령을 만나 쇄신의 '쇄' 자도 못 꺼냈지만, 당내 소장파들도  쇠고기 '쇠'자도 얘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누가 누굴 비난할 처지가 못된다"고 꼬집었다. 

 

한나라당의 대정부 '종속'이 심화되는 와중에 여권 수뇌부에 직언을 할 만한 '소장파'의 부재를 개탄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구 출신의 주성영 의원은 당내 소장파들에 대해 "생물학적 나이와 선수(選數)뒤에 숨어서 부겐베리아(뿌리 없이 숲에 기생하는 브라질산 꽃)로 머물지 말고 원내대표 선거에도 나서고 전대에도 출마해 당원들로부터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들이 진정으로 '온전한 희망'이 되려면,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함으로 정확한 민심을 물어와 당과 청와대에 제대로 작동하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한나라당에 진정한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부와 민심이 정면충돌하는 상황이 거듭됨에도 여당이 지금처럼 어정쩡한 모습을 취할 경우 정부와 여당의 '공멸'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데 여당의 고민이 있다.

 

 

다섯 달 전의 환호는 벌써 '추억'이 되고

 

야당과 학계에서는 "대통령이 지금처럼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당·청 갈등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통령의 '불도저' 리더십 자체가 민주화 시대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통합민주당 박선숙 당선자는 지난 10년간 청와대 공보수석과 환경부 차관 등을 지내며 대통령들의 정책 추진과정을 지켜본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이 겉으로는 막강해보이지만, 사람 하나 쓰는 것도 국회와 행정부, 무수한 이해집단과의 컨센서스(의견 일치)를 보지 않고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자리"라며 대통령을 이해가 대립되는 집단들을 마차에 함께 태워 끌고 가는 '마부'에 비유했다.

 

"대통령이 뭔가 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일이 되기 위한 조건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의 당·정 갈등은 상당한 시간을 가지고 동의와 설득을 거쳐야 할 사안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다가 문제가 생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민들이 동의하지 못하니 여당도 이런 대통령을 못 따라가는 것이다. 당·정이 충돌하는 일을 막으려면 대통령이 먼저 여당 내 다수가 동의할 만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박 당선자는 '강부자' 인사 파동을 예시하며 "이 대통령이 설득 과정을 염두에 뒀다면 아예 그런 식의 인사는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태도와 생각을 바꾸는 게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학자도 "단임 대통령과 중임 가능한 국회의원들이 공존하는 정치시스템에서 당·청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면서도 "대통령이 자신이 공천권을 행사한 당에서조차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스스로의 정치력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공격했다.

 

그는 "지금처럼 여당 대표와 주례회동하고 입맛에 맞는 측근들만 청와대로 불러 얘기를 들을 게 아니라 쓴소리 할 사람도 두루 만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에서는 "지금은 대통령을 탓하기보다 당의 화합과 안정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수도권의 친이 당선자는 "한나라당은 4년 전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이 17대 총선에서 국회 과반수 의석을 얻고도 '개혁 대 실용'이라는 실체 없는 노선 투쟁을 벌였고 당·정 관계도 아파드 분양원가 공개와 대연정 등으로 완전히 틀어져버렸는데, 정부와 한나라당이 구여권처럼 '집안싸움'으로 몰락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도 "지금처럼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못받는 상황이 계속돼도 당은 가만히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2007년 12월 대선의 추억을 즐기기에는 5개월 동안의 민심이 너무 험악해졌다는 게 한나라당 사람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태그:#한나라당, #박선숙, #주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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