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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봉림사지는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번창하였으나, 이후의 내력에 대하여 상세히 전하는 바가 없으며 임진왜란 때 없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곳에는 건물터가 일부 남아 있으며, 탑과 탑비를 옮긴 흔적 남아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있는 진경대사 보월능공탑(보물 제362호)과 탑비(보물 제363호)는 이곳에서 옮겨 졌으며 상북초등학교내의 삼층석탑도 여기에서 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장은 각자 저마다 느낌이 다르나 터가 다소 좁고 아늑한 느낌이다. 올라가는 길도 대나무 숲을 끼고 돌아 가는데 한 참 죽순 수확이 이루어지고 뿌리를 신경초라고 하여 민간에서 신경통, 관절염등에 신기한 효과가 있다는 꼭두서니도 보았다. 유적이 다 없어져서 인지 횡환 느낌이 들었다. 겨울철에 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주변에는 민묘들이 있으며 안내 표지판은 잘 되어 있어 찾아 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제자리를 떠난 문화재

 

보물 제362호 봉림사 진경대사보월능공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전형적인 8각 부도이지만 표면의 조각은 적은 편이어서 재료의 빛깔과 아울러 청초한 느낌을 준다. 8각의 바닥돌 위에 있는 기단의 아래받침돌 또한 8각으로, 옆면에는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무늬의 바닥선이 불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시대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현재 용지공원에는 같은 크기로 실물을 재현해 놓았는데 기단 아랫 부분에는 돌아가면서 동물들이 새겨져 있는데 토끼와 돼지가 있어 주목된다. 진품에도 과연 이렇게 새겨져 있는지 예전에 한번 사진을 찍은 적은 있으나 세부적으로 살펴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보물  제363호 봉림사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 역시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현재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 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받침돌의 거북이는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머리 위에는 뿔이 있던 작은 구멍이 나 있다. 등 위에는 비를 꽂아두기 위한 네모난 홈이 있는데, 주위에 구름무늬가 가득하다. 머릿돌에는 구름 속에 둘러싸인 두 마리의 용이 모퉁이에 각 한 마리씩 표현되어 있다.

 

 

  봉림사지 삼층석탑은 봉림사지에 남아 있던 탑으로, 일제 강점기에 반출되었다가 되찾은 것이다. 관리 소홀로 많이 부서진 것을, 1960년 창원교육청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탑의 기단은 이중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여러 차례 옮겨 다니면서 많이 깨져나가 위층 기단의 일부만 남아있다. 3층을 이루고 있는 탑신부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특이한 것은 2층 몸돌에 문짝 모양의 조각을 둔 것으로, 보통 1층 몸돌에 새겨놓던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낙수면의 경사는 급하게 내려온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의 탑으로 추정된다.

 

 옛 터를떠나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유적들을 볼 때 옛터에 있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그 당시 영광을 누리던 사찰은 온데 간데 없어도 이러한 유적들을 통해 또한 무궁한 그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제자리를 떠나 흩어져 있는 유적들은 전국에 지금도 많이 남아 옛 터를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홀로 남은 유적들을 볼 때 안타까움은 당장 그 자리로 옮겨다 놓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태그:#봉림사터, #진경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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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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