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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시죠?”

 

선생님의 노안에 환한 웃음이 넘쳐나고 있어 보기에 참 좋았다. 선생님을 뵙는 것도 반갑지만, 오랜 만에 만나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기쁨도 컸다. 서로 살기가 바쁘니, 자주 볼 수가 없었다. 선생님을 찾아뵙기 위하여 만나게 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가 33년이 되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건강하신 선생님의 모습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세월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 죄송스럽기만하다. 선생님 앞에서는 마음은 언제나 열정이 넘치는 젊음으로 넘쳐 있다. 그런데 겉모습은 시간에 삭혀지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였다.

 

새만금 방조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된 심포로 향하였다. 오월의 농촌은 신록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논에서는 보리가 익어가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보리 이삭들의 모습이 그렇게 풍요로울 수가 없었다. 보리는 그리움을 자극하고 있었다. 가난하였던 어린 시절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어머니의 사랑 덕분에 가난하였지만 행복할 수 있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어머니의 "괜찮다"라는 말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다. 이해와 용서를 통해 격려와 위로를 받고 포용과 사랑으로 안심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정말 그리워진다.

 

김제시 진봉면에 위치하고 있는 망해사에 올랐다. 바다를 바라보는 절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해의 널따란 바다가 가슴에 쏙 들어온다. 만경강의 강줄기와 서해의 바닷물이 서로 소통하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새만금 방조제로 인해 이제 바닷물이 들어올 수가 없다고 하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바닷물이 밀물되어 들어오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물을 바라보면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형상을 고집하지 않는 물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삶의 지혜를 전해주셨다. 증기가 되기도 하고 얼음이 되기도 하는 물에서 고집을 부리지 않는 슬기를 배운다. 남의 뜻에 따르는 모습이 그렇게 상징적일 수가 없다.

 

내 생각을 남에게 전해주려고 애를 쓰지 말라고 하신다. 상대방이 내 생각을 이해하고 동의해준다고 하여 좋아할 것도 없고,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억울해하고 불평할 까닭도 없다고 하신다. 물을 보라 하셨다. 물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상대방은 존중하고 배려해줘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신다.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것이 얼마나 큰 어리석음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이 바로 고통의 시작이라고. 다를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고 없고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셨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된다. 돌이켜 보니, 일체개고의 원인은 바로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기 위하여 노력한 것이 원인이라는 결론에게 도달하게 된다. 내 편을 만들기 위하여 무리한 시도를 하게 되고 그 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심포항의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손안에 들어올 것 같은 작은 어촌의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방파제 앞에 떠 있는 배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새만금 방조제의 완공으로 인해 예전의 항구가 아니라 이제는 한가로운 어촌이 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깨닫는 것이 있었다.

 

열정과 패기가 넘치던 학생 시절의 나와 세월에 삭아진 오늘의 모습이 비교가 된다. 지금까지 그 때와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늙어가는 것일 뿐 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다르다는 생각은 아예 할 수가 없었다. 의당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의심을 갖게 한 것이다. 물에서 배우라는 말씀과 한가로워진 심포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정열이 넘치던 3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다는 생각에 미친 것이다. 같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믿고 있는 것의 허구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연속성이 있을 것이란 것은 바람일 뿐이라는 사실에 도달하게 되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어제의 나도 분명 나인 것은 틀림없지만 오늘의 나는 확실히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어제의 나를 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통해 집착하게 되면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나를 먼저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있으면 고통은 가중될 것이 아닌가?

 

오늘의 새로운 나가 어제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 가려지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의 나임에도 어제의 나에게 밀리게 되면 나의 삶은 고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미래의 나로 인해 오늘의 나가 밀리는 것도 똑같다.

 

선생님을 모시고 점심을 함께 하였다. 큰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이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다. 80에 가까워지고 계신 고령의 연세에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환하게 웃으시는 선생님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새로운 오늘의 나에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김제 망해서에서(2008.5.18)


태그:#선생님, #망해사, #가르침, #오늘의나,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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