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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찬 마음으로 기대한 '수만 촛불'의 장관 

 

여태껏, 수만의 군중이 운집해 하나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황홀한 장관이었다. 촛불과 종이컵, 디지털 카메라 하나 들고 먼 길을 가는 셈이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 설렘은 최소한 1번은 참여해본 분이라면 아실 듯하다.

 

물론, 그동안에도 다양한 일은 많았다. 그동안 들었던 가장 가슴 벅찬 소식은 "미국산 쇠고기 운송을 거부하겠다"던 운수노조의 선언에 시민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것과 과천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반대 플래카드'를 집집마다 내걸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이야말로 모처럼 빛을 발한 우리 시민들의 연대의식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명박 정부가 시도하는 정책은 하나같이 우리 삶을 위협하는 정책들이다. '미국산 쇠고기'는 기폭제였을 뿐이다. 건강보험 민영화에 학교 자율화 방안 그리고 상수도 민영화 등, 노무현 정권에 '세금 폭탄' 운운했던 세력들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진짜 '세금 폭탄'이 무엇인지를 맛보여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생존의 위협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의도하지 않았던 '연대의식'을 이끌어냈다. 이 '연대의식'은, 드디어 '정치'를 정치인의 영역이 아닌 '나의 영역'이자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피어난 것이다. 대한민국 1% 부유층은 말 그대로 1%에 불과하다. 99%의 사람들이 위기를 느끼면서 응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17일의 촛불집회는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장관이 연출됐다.

 

'서민 죽이기' 정책, 그 앞에 '갈등'은 없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분들이 다시 한 번 한 자리에서 한 목소리로 뭉쳤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자리에서 학생들은 저마다 준비한 공연이나 메시지를 10대다운 센스를 발휘해 전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들을 '분노'케 했지만, 이들은 '분노'를 '연대'로, 그리고 '웃음'과 '박수'로 승화하고 있었다.


'2차 청소년 행동의 날'에는 '청와대로 종이비행기 시위'를 벌인다고 하는데, 이것 참 기대된다. 이 역시 10대의 센스가 가득 담긴 멋진 시위 방법이다. 하지만, 그 멋진 시위 방법에는 청소년들이 느끼는 생존의 위협과 분노가 담겨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경찰은 특히나 청소년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청계광장 곳곳에는 교육 당국이 동원한 교육자들이 감시의 눈초리를 아끼지 않고 있는데, 취재 전문 블로거 '몽구(http://mongu.net/150 )가 그들이 모인 현장을 섬세하게 담았다.

 

그들은, "단속이 아니라 학생지도"라고 주장했다고 하는데, '문자메시지 검열'로도 모자라 경찰의 학생에 대한 조사도 사실상 방조한 교사들도 많은 현실에서, 그걸 어떻게 믿나? 게다가 수만명이 운집한 그 공간에서 무슨 '학생지도'를 한다는 이야기일까? 어디에서 온 어떤 학생일지도 모를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청소년들도 많았다.

 

'자유발언'에서 어떤 남학생이 하소연한대로, 학교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악몽의 등교시간 7시'를 겪은 나로서는 여전히 7시 10분까지 등교를 '명령'해 아침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학교로 힘 없는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학교, 심지어 군대보다 더한 1cm의 두발제한을 '명령'하는 학교의 이야기를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신들이 말하는 '지도'는 무엇인가? '지도'가 '단속'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텐데, 담장 안 학교는 여전히 '박통 시대'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 "머리가 짧아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는 과학적 근거, 심리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어처구니없는 두발제한은 영원히 명분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청소년은 어른에게 세상을 묻고, 삶과 꿈을 묻고 있었다.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이명박 정부'가 세상, 삶과 꿈을 파괴하고 있다고 어른들을 꾸짖고 있었다. 아이들의 이런 진지하고도 성숙한 질문을 듣고도 여전히 '뉴타운'의 허상에 헤매고 있는 어른이 있다면, 어른은 여전히 반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몽구'의 인터뷰에 따르면,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오늘로 행사 자체가 완전히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행사 자체'가 끝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촛불집회'가 멈춰지려면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도 해야 하며, 이명박 정부가 각종 민영화 정책과 '학교 자율화 방안'을 포기해야 한다.

 

요원한 일이다. 더이상, 청소년을 '단속'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말라. 투표권이 없다고 인권이 없고 발언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들은 얼마든지 세상과 어른에 항변할 권리가 있으며,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문제를 고민할 권리가 있다.

 

 

아래의 사진을 보라.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철없는 푸념'에 불과했다면 이렇게 어머니들까지 나오셨을 리는 없을 것이다.

 

 
보수세력의 주장에 따르면, 이 집회는 '반미좌파집회'다. 그들의 성역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면 그렇듯 애들이고 어른이고 가릴 것 없이 '반미좌파'의 딱지를 달아준다. 그러나 청계광장에 갈 때마다 아이러니인 건, 청와대가 코 앞 그리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바로 근처에서 이렇듯 수만명의 군중이 모여 한 목소리로 아름다운 집회를 연다는 것이다. 정말로 묘하다.

 

'연예인'도 나온 촛불집회

 

블랙홀, 트랜스픽션, 김부선, 이승환, 김장훈, 윤도현 등의 연예인들도 집회에 참여해 목소리를 보태며 노래를 불렀다. 그들의 노래와 환호하는 관중들의 목소리가 나온 순간, '촛불집회'는 보수언론에 의해 '붉은색'과 '폭력'으로 덕지덕지 덧칠된 집회 문화의 본질, 그리고 그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오죽하면 <조선일보>도 트집잡을 것이 '촛농'밖에 없었을까?   

 

 

 

'재협상' 대표로 '강달프'와 '이선영 주부'가 나선다면?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한나라당 이방호 의원을 물리친 저력으로 주목받더니, 농부 출신으로서 누구보다 빛났던 진정성과 정돈된 이론으로 국민의 가슴 속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그의 별명은 '강달프',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는 그렇듯 국민영웅 '강달프'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의 연설도 환영받았지만, 17일 집회에 있어 무엇보다 환영받았던 것은 <100분 토론> 최고의 스타로 부상한 재미교포 이선영 주부다. 미국 현지와의 전화통화로서 서로의 목소리를 주고받으며 진심을 나눴던 것이다.

 

'쇠고기 재협상 추진'이라는 당면한 과제에 대한 고민을 제기한다면, 혹시 '재협상'이 이루어져도 누가 '재협상'에 나서야 하느냐는 문제가 떠오른다. 또다시 민동석·이상길 양자가 주도하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그래서 문득 떠오른 생각은, 아예 '강달프'와 '이선영 주부'를 재협상 대표로 내세우는 것은 어떨까 싶은 것.

 

내 상상이 과한 것일까? 하지만, 직접 농사를 지었던 농부 출신 국회의원과 담당 고위 공무원까지 궁지로 몰았던 재미교포 주부라는 생생한 현실체험자가 직접 재협상에 나서는 것이 훨씬 나은 것 같다는 판단도 든다. 그런 상상마저 들 정도로 이들은 누구보다 뚜렷했다.

 

'분노'를 '축제'로, 그 '축제'가 정치 전반에 이어질 수 있다면...

 

해가 저물자, 수만개의 촛불은 그야말로 '그림'같았다.

 

 

이 사진조차도 6만개를 넘긴 촛불의 일부분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디카 하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내 처지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던 장면이었다. 여기에는 세대갈등도 지역감정도 없다. 누누히 말하지만, 분노를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시민들이 있었으며, 축제로 승화시킨 시민들이 있었다.

 

나로서는 <쿠니미츠의 정치>라는 만화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만화가 제기했던 주장은 하나였다.  "선거는 축제"라는 것, 애초에 '선거'부터 축제와 같았다면 어른이 후회할 선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선거는 축제"라는 주장은 결국 "정치는 축제"라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정치를 축제 즐기듯 즐기면서 바라보고 고민할 수 있다면,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인도 긴장할 수 밖에 없을 터. 정치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정치를 즐길 줄 아는 시민의 눈, 그리고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앞장서 지적할 수 있는 시민의 역량일 것이다.

 

촛불집회는 그 가능성을 말해줬다. 그 가능성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며 화면에 담았다는 것은 나로서는 너무나도 황홀한 일이다. 앞으로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늘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 촛불에 담긴 모든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리고 학교 내의 부정비리 의혹과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항거해 단식 농성까지 나선 모 대학 학생회장의 이야기, 우리가 앞으로도 평생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다가올 모든 선거에서도 높은 투표율로 다시 승화돼 정치인을 덜덜 떨게 만들 수 있다면, 정치인 특유의 그 오만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촛불의 힘으로 '쇠고기 정부 고시'가 늦춰졌다. 고삐를 늦추지 말고, 하나된 목소리를 앞으로도 지속시킬 수 있다면 우리의 검역주권과 건강권, 나아가 생존권을 지켜가면서 이명박 정부에게 준엄한 경고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촛불이 끝까지 아름답게 타오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촛불문화제, #미국산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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