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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해 피해액만 GDP의 1%수준인 7조 9천억원. 천식·뇌졸중 환자 사망률이 4.6% 증가하며, 전산업과 학교 문을 닫게 하는 모래폭풍 황사. 중금속과 전염병, 심지어 방사능 물질까지 실어 온단다. 몽골과 중국의 사막화 때문이다. 이에 푸른아시아(시민정보미디어센터의 새 이름)와 함께 현지를 취재해 연재기사를 싣는다. <필자주>

'우주의 지배자' 칭기즈칸의 대지로 초대받은 적이 있나요? 끝없이 펼쳐지는 대초원의 품에 안겨 목동의 피리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모래폭풍의 한 가운데서 보라색으로 곱디곱게 피어나는 희망을 보신 적이 있나요?

초원의 꿈에 부풀어 짐을 싸들고 집을 나선 건 5월 중순 어느 날. 비가 오락가락 하는 궂은 날씨가 조금은 부담스런 오후입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보니 비보 하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1시간이 좀 넘게 연착한다는 전언이었죠.

공항에 들어설 때면 들던 주눅이 이번에도 여지없습니다. 까칠하게만 들리던 승무원의 안내방송 내용을 알아들었을 땐 그 위압감이 조금 누그러졌죠. 긴장 뒤에 찾아오는 지루함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도 달콤한 모카향의 커피도 달랠 수 없나 봅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대지는 푸른 희망의 약속입니다. 구릉을 서성이는 말들은 그 약속을 고대하며 쪽 빛 하늘의 날궂이를 기다립니다.
▲ 대지의 약속 끝없이 펼쳐지는 대지는 푸른 희망의 약속입니다. 구릉을 서성이는 말들은 그 약속을 고대하며 쪽 빛 하늘의 날궂이를 기다립니다.
ⓒ 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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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는 한국인들 바라보는 몽골 토박이 노인의 눈엔 두 개의 빛이 스칩니다. 척박한 땅을 푸르디푸른 숲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역만리에서 찾아온 저들에게 난 어떤 희망을 전달하나?
▲ 몽골노인 나무를 심는 한국인들 바라보는 몽골 토박이 노인의 눈엔 두 개의 빛이 스칩니다. 척박한 땅을 푸르디푸른 숲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역만리에서 찾아온 저들에게 난 어떤 희망을 전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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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입니다. 등성이 넘어 하늘 한 끝자락 어딘 가로 이어진 길이죠. 전 이쯤에서 하늘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밥 딜런의 '하늘문을 두드리며'라는 노랫말을 음미하면서요.
▲ 길 길입니다. 등성이 넘어 하늘 한 끝자락 어딘 가로 이어진 길이죠. 전 이쯤에서 하늘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밥 딜런의 '하늘문을 두드리며'라는 노랫말을 음미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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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비보' 하나

초심자의 예측은 3시간만에 빗나갔습니다. '붉은 영웅'(울란바토르)에 발을 내딛으며 들은 첫 하소연이 이랬으니까요. "왜 이 땅엔 비도 안 오는지 원…." 그러니까 우리 발을 묶은 건 비가 아닌 폭풍이었습니다. 동북아 하늘을 뒤덮는 재앙의 황사공포 말입니다.

언젠가 푹푹 찌는 마드리드공항에서 느꼈던 숨막힘이나 방콕의 수상시장 어딘가에서 가슴조리며 맡던 비릿한 흙내음과는 다른 무엇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질러 쩍 갈라진 대지 끝자락에 당도했을 때 엄습해왔던 그 답답함이었을까요? 아님 두려움이었거나.

도심 한 호텔에 들어설 때까지 뒷자리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들려준 말은 "몹쓸 땅이구먼", "나무 한 그루 없어"였습니다. 그도 나 같이 몽골에 처음 오는 인사인 모양입니다. 그러니 메마른 나무 몇 그루를 발견했을 때 안도감은 호사였고요.

몽골 환경청사 회의실에서 고위급 관료들의 환호를 받으며 뻐꾸기 웃음을 날릴 때만해도 그럭저럭 여유로웠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함께 보듬어 살려보자는 것이었으니까요. 울란바토르의 젖줄을 따라 바람먼지 휘날리며 달릴 땐 어깨까지 제법 으쓱였습니다.

푸른아시아가 조림사업을 하고 있는 바양노르에 사는 꼬마들입니다. 천진난만한 웃음 속에서 우리는 큰 희망을 봤습니다. 기자가 '치즈'라며 따라하라고 하자, 글쎄 이녀석들은 '김치'라고 연호하는 군요.
▲ 초록꿈을 키우는 꼬마들 푸른아시아가 조림사업을 하고 있는 바양노르에 사는 꼬마들입니다. 천진난만한 웃음 속에서 우리는 큰 희망을 봤습니다. 기자가 '치즈'라며 따라하라고 하자, 글쎄 이녀석들은 '김치'라고 연호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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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양노르 척박한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앳된 아이들입니다. 바양노르에 심은 나무를 살린 일등공신이라고 하네요. 공부 마치고 집에 갈 때마다 물을 한봉지씩 싸들고 가 나무에 뿌린답니다.
▲ 물을 주는 아이들 바양노르 척박한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앳된 아이들입니다. 바양노르에 심은 나무를 살린 일등공신이라고 하네요. 공부 마치고 집에 갈 때마다 물을 한봉지씩 싸들고 가 나무에 뿌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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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오는 아이. 천국을 지키는 아이입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생명을 지키며 번영하기를 기원합니다.
▲ 천국을 지키는 아이. 자전거를 타고 오는 아이. 천국을 지키는 아이입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생명을 지키며 번영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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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강 발원지 어딘가에 기껏 나무 한 그루 심어놓고 보람찬 하루를 보낸 것처럼 취재수첩을 만지작거릴 땐 머쓱하기까지 했습니다. 몽골의상을 한 노인에 이끌려 '똑딱이' 셔터를 연거푸 눌러보지만 세월의 무게와 땀의 색깔은 흔적조차 남지 않습니다.

"몹쓸 땅, 나무 한 그루 없고..."

흙먼지 자욱한 들판 한 곳. '한국의 거리' 어느 음식점에서 사온 도시락을 까먹으며 '역시 최고'를 연발할 때까지만 해도 그 좋다는 일제 사륜구동 차의 날렵함을 믿었습니다. 구수한 보리차 입가심 뒤 서녘으로 내달릴 땐 제법 뿌듯함도 엿보였습니다.

하지만 대지의 여신의 진노는 거침이 없습니다. 건들거리는 이방인의 발걸음을 매몰차게 거부합니다. 애써 저리가라고 가로막고 엉뚱한 길도 보여줘 보지만 방문자의 무례는 막무가내입니다. 그렇게 길 위에서 녹초가 돼 갈 때 쯤 여신은 살짝 노여움을 거둡니다.

희망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죠. 맑게 갠 하늘, 파릇파릇 돋아나는 이파리, 그리고 뷰파인더를 향해 승리의 브이자를 꺼내 보이는 바양노르의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바로 몽골에게나 이방인에게 모두 '작은 꿈'입니다. "치즈"에 "김치"를 연호할 땐 천사의 환희였죠.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윤경효 사무국장입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황사를 끌어안고 동북아의 맑은 하늘을 지키겠다고 수천리 먼 땅에 날아온 녹색 전사랍니다.
▲ 녹색전사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윤경효 사무국장입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황사를 끌어안고 동북아의 맑은 하늘을 지키겠다고 수천리 먼 땅에 날아온 녹색 전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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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 버려진 문명. 그 아래 아득하게 생명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이 땅은 희망을 피워낼 것입니다.
▲ 폐허와 생명 척박한 땅에 버려진 문명. 그 아래 아득하게 생명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이 땅은 희망을 피워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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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 한 가운데 자리한 노마드의 집. 초록 빨강 지붕이 고즈넉합니다.
▲ 초원의 집 몽골 초원 한 가운데 자리한 노마드의 집. 초록 빨강 지붕이 고즈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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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대지에 여운을 남기며 긴 그림자로 남은 대지의 여신은 살며시 내 발바닥을 간질입니다. 거기 태양의 에너지를 잔뜩 머금은 황금빛 모래위로 은륜을 타고 살갑게 다가오는 '오래된 미래'는 수만리 간격을 잇는 온정의 전령사입니다.

희망의 씨앗을 어딘가에 심어놓고도 건망증에 시달리는 방문객은 그저 딴눈을 팔고 있군요. 타들어가는 사막 한 가운데 덜렁 남은 생명의 씨앗은 어느 몽골 여인의 노동에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고요. 불패의 신화를 쓰는 '사막의 희망'이 되어서요.

"불패의 신화를 쓰는 사막의 희망"

붉은 모래땅을 뚫고 보랏빛 생명 하나가 탄생했습니다. 돌보는 이 없어도, 물을 주지 않아도 제 멋에 겹습니다. 미색 시비는 없지만 제법 요염한 자태를 뽐냅니다. 거센 폭풍에도, 억센 말발굽에도 결코 드러눕지 않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희망이 돼야 하니까요.

죽음 한 가운데서 피어난 보랏빛 생명. 이 생명은 황사의 땅 몽골을 약동하는 푸른 세상으로 바꿀 것입니다.
▲ 보랏빛 생명 죽음 한 가운데서 피어난 보랏빛 생명. 이 생명은 황사의 땅 몽골을 약동하는 푸른 세상으로 바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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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살리는 생명의 통. 이제 누런 대지는 초록의 소리에 깨어 일어날겁니다.
▲ 생명수 사막을 살리는 생명의 통. 이제 누런 대지는 초록의 소리에 깨어 일어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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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약속을 지키는 한 몽골 여인. 이제 대지는 생명의 단꿈을 딛고 깨어나 무럭무럭 희망을 키워갈 것입니다.
▲ 초록의 약속 초록의 약속을 지키는 한 몽골 여인. 이제 대지는 생명의 단꿈을 딛고 깨어나 무럭무럭 희망을 키워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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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롱 고스'(동방의 무지개)를 환호하는 몽골에게 우리는 '희망의 숲'으로 섰습니다. 외롭게 살아남아 초록 입새 하나로 피어났지요. 광활한 초원,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지는 척박한 사막에 간신히 발 딛고 섰습니다. 대지를 적시는 '날궂이 약속'을 기다리면서요.


태그:#몽골, #황사기획, #사막화, #푸른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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