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기, 송구가 온다!"

 

내가 쓴 장편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찬섬 펴냄)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을 출간한 것은 1999년의 봄이 시작될 무렵이었고,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였다. 그러니까 이 작품을 다시 세상에 들추어내는 것은 무려 10년만의 일인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작가인 내가 또 다시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영원한 자유인 '송구', 그의 삶을 찾아 떠난 주인공 '김석우'

 

그 시절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던 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을 실존 인물이었던 '송구'로 설정했다. 송구,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는 강원도 정선 땅의 그저 그런 거지 중의 한 사람이었다. 보통의 거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일자무식의 거지가 아니라 학자층에 속하는 거지였다.

 

송구의 집안은 유진사댁으로 불리워지던 가문으로 동리에서는 명망가 집안으로 세를 떨치던 양반가문이었다. 송구는 바로 유진사댁 자제였다. 그랬던 그가 거지가 된 사연은 똑똑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일찍 알아버린 것이 화근이 된 송구는 그 길로 영원한 자유인의 길을 걸었다.

 

작품 속 주인공인 김석우는 서울에서 대학 강사 신분이었다. 가난한 대학 강사인 그는 끝내 강사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자 교수의 꿈을 버렸다. 그리고 송구의 삶을 살고자 정선으로 찾아 들었다.

 

4년 전 늦가을, 드디어 나는 대학 교수라는 허상을 좇던 김석우가 아닌 송구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모든 걸 훌훌 벗어버렸을 때의 그 촉감이란 아직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아니 새로운 열정이 불같이 피어오르는 듯 했다.

 

그 가을날 새벽녘에 도착한 나는 정선역 광장에다 비로소 입을 맞추었다. 내 다시는 거짓과 위선과 욕망으로 가득찬 도시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때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었다. - 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화창한 봄날 나는 실로 오랜만에 작품의 무대이자 송구가 거처하던 정선읍 애산리를 찾았다. 그동안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던 송구의 집. 그가 살던 집은 마을 사람들이 상여를 모셔두는 '곳집'이었다. 상여와 함께 살아갔던 그는 그곳에서 자유를 노래했으며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세상을 향해 일갈했다.

 

정선선 기차길이 집 아래로 지나가는 그의 삶터는 철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터널이 나왔고 반대편으로 걸으면 강물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철다리가 있었다. 더구나 뒤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있어 천혜의 요새와 같았다. 주변 일대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사람들은 그가 사는 집을 상여를 둔 집이라 하여 무서워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는 송구, 그녀는 끝내 송구를 찾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렸다. 하루 세 번 지나가는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정선으로 오면 그는 지나가는 기차 안의 승객들을 훑어 보았다. 혹여 그녀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차가 오는 시간이면 하지 않던 세수를 하기도 했던 송구. 그러나 송구의 여인인 '가님'은 끝내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은 상여집은 수풀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상여를 매는 시절이 아닌 터라 곳집은 지난 세월의 흔적만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을 여전히 무섭게 만들고 있었다. 송구가 다니던 길도 많이 바뀌었다. 아무렇게나 개울로 나갈 수 있던 길이 몇 번의 수해로 인해 말끔하게 단장되었다.

 

소설 속 송구는 상여집을 지나가는 기차의 기적소리에 언제나 잠을 깼다. 그는 단청이 군데군데 벗겨진 상여집을 나와 흐르는 맑은 물에 고양이 세수를 하고 느긴 걸음으로 정선아라리를 흥얼거리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애산리 송구는 바위 구멍도 뚫는데

우리 집 저 멍텅구리는 뚫어진 구멍도 못 뚫네

 

배 주인 옆집 안가는 피죽도 못 먹는데

불러터진 군수 배는 남산만큼 커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 정선아라리 가사 중에서

 

실존 인물이었던 유송구의 삶은 어떠했을까. 송구는 턱수염에다 콧수염, 긴머리를 상투로 틀어올린 모습이었다. 머리 모양만 다르지 지금의 내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정선사투리를 걸게 쓰던 송구는 한자 실력도 대단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이런저런 것을 물으면 답변을 시원시원하게 했다. 

 

어린 시절 송구는 늘 내가 살던 집 앞을 지나쳤다. 막걸리 한 잔이면 바지춤을 내리며 자신의 물건을 거침없이 보여주던 그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영원한 자유인이었다. 아이들의 친구이기도 하고 어른들의 벗이기도 했던 송구. 70~80년대, 그가 사망할 때까지 정선은 물론이고 인근 고장까지 그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그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정선군수 이름은 몰라도 송구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 그의 유명세는 하늘을 찔렀다. 지금도 송구를 떠올리면서 추억하는 이들이 많은 곳 또한 정선 땅이다. 오래전의 이야기이도 하지만 학교 다닐 때 송구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이 한 학년에만도 열 명이 넘었다.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가님'이다. 송구의 영원한 연인 가님은 어느 날부터 송구와 나란히 정선읍내를 나들이 했다. 둘은 손을 꼬 잡고 길을 걸었으며 어느 날인가부터는 가님의 눈 한쪽에는 흰 안대가 가리워져 있었다.

 

송곳으로 연인의 한쪽 눈을 멀게 한 송구,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어느 날 애꾸눈이 된 가님. 그 사연인 즉슨, 송구가 지신의 연인인 가님이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혹은 다른 남자들에게 한눈 팔지 말라며 송곳으로 가님의 눈을 찔렀다는 것이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기겁할 노릇이기도 하지만 송구와 가님의 사랑은 그렇게 처절했고, 그렇게 완성되었다. 송구를 그렇게 자신의 여인을 지켰고 80년 대 후반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그 이후 가님은 정선을 떠났고 송구가 걸어왔던 삶은 하나의 전설로 남았다.

 

소설 속 주인공인 김석우는 '민간 설화 속에 숨은 민중의식 연구'를 진행하다 송구를 알게 되었으며, 결국 대학강사 신분인 김석우를 버리고 송구의 삶을 살기로 했다. 정선에 내려온 김석우는 전설로 남은 송구의 삶을 살아간다. 송구의 삶이 그러했듯 그 역시 글쓰는 거지의 삶을 살며 해학과 풍자, 거침없는 독설로 세상 사람들을 울리고 웃긴다.

 

소설 속 송구는 정선 장날이면 먹을 갈아 속옷에다 자신의 물건으로 글과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렇게 판 돈을 '황가'에게 주는데, 그 일로 경찰서 신세를 지기도 한다. 또한 그는 송구를 주인공으로 연극을 준비하기도 하는 등의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

 

소설 속 송구를 가장 송구답게 만든 것은 '동강댐 건설 백지화 투쟁'이다. 그 무렵 동강은 동강댐 건설 계획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전국의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들이 동강댐 백지화를 외치고 있었고, 백성들은 동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 위해 천리길도 마다 하지 않았다.

 

동강변은 관광버스로 가득찼고, 동강댐 반대 목소리도 높아만 갔다. 송구는 정선 사람들과 함께 동강댐 백지화 투쟁에 나섰으며, 소설이 발표된 한참 후엔 동강댐 건설을 백지화 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꼭 10년 전의 일이다. 다시 10년이 흐른 지금 동강은 또 댐 건설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대운하를 만들기 위해서는 충주댐 상류에 댐이 두 개나 들어서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댐이 만들어질 곳은 동강과 동강 상류. 정선은 이제 물 위에 뜬 마을이 아니라 댐에 갇힌 마을이 되고 만다.

 

동강댐 반대 투쟁에 앞장 섰던 송구의 정선 사랑

 

10여년 전 전국민이 나서서 막았던 동강댐이 대운하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슬그머니 포함되는 상황이지만, 사람들은 국민의 강이 두 동강이 나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는지 아직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 

 

난 데모하는 아빠보다 열심히 일하시는 아빠가 더 좋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아빠는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해 그러는 거란다' 하신다. 마을에 댐이 생기면 우리 집도, 배추밭도, 내가 심은 사과나무도 물에 잠긴다 했다. 그 일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이 나이에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것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엄마는 피곤하신지 벌써 코를 골고 주무신다. 모기가 얼굴을 물어 뜯어도 그냥 주무신다. 내일 아빠가 오면 물어봐야겠다. 진짜로 댐이 만들어지는지 말이다. 사실이라고 하시면. 나도 다음부터 아빠를 따라 데모를 하러 가야겠다. 내가 심은 사과나무는 내가 지켜야 하니까 말이다. 옆집 사는 은숙이도 함께 가기로 했으니 심심하진 않을 거 같다. - 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본문 중에서 '아이의 일기' 일부

 

실제 송구는 가님이라는 여인이 있었으나 소설 속 송구는 도시에 살고 있는 '그녀'를 끊임없이 기다린다. 그러나 그녀는 송구의 기다림에도 정선으로 오지 않는다. 그런 송구를 보살펴주는 여인은 막걸리집 주모인 '평창댁'이다. 평창댁은 송구를 위해 보약까지 만들어주는 등의 정성을 다한다.

 

소설에서 송구의 여인이 되는 것은 평창댁이다. 송구는 오지 않는 그녀를 기다리지 않기로 하고 평창댁을 가님으로 맞이한다. 어느 날 송구는 '그 날 아침 난 그녀를 이렇게 불러 주었다. "가님이" 하고 말이다'라며 평창댁을 송구의 여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동강댐 반대 시위와 송구가 준비한 연극이 첫 공연을 시작하는 장면이다. 한쪽에서는 전경대와 투석전이 벌어지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정선아리랑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 그랬습니다. 지금 이 시간 공설 운동장에선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시위대는 건물 옥상에서 너울대는 횃불과, 하늘에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보며 망연자실 할 말을 잃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이 순간에도 예정된 모든 것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음에 놀라워 하면 말입니다. - 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중에서

 

지난 10년 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소중한 자연 유산을 제 앞마당처럼 생각하고 무참히 작살내는 일이다. 그 일이 또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진행되고 있다니 놀랄 뿐이다.

 

책을 펴낸 후 처음으로 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를 끝까지 읽어 보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10년 전 지금과 같은 삶을 살았던 듯싶다.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이나 지금 내가 고향인 정선에서 살아가는 모습이나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 어찌된 일일까. 

 

작품을 통해 10년 전 송구를 통해 동강을 죽이려는 사람들과 싸웠다면, 이젠 내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동강에 댐을 만드려는 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10년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반복되는 상황. 누가 또 동강의 쉬리를 죽음으로 내몰려 하는 것인가.

 

10년 전 쓴 작품 내용과 작가의 현재 삶이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 송구는 기다리는 여인을 포기하고 평창댁을 '가님'으로 맞이했다. 나도 곧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필연이라면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될 것(끝내 만나지 못하면 할 수 없고)이다. 요즘의 삶을 10년 전 자신의 작품으로 예견한 작가의 삶. 내가 쓴 작품이지만 한 인간의 생애가 어떻게 자신이 쓴 소설처럼 살아질 수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아, 이놈들은 동강에서 보았던 쉬리였다. 벌써 그곳을 피해 여기까지 올라온 걸까. '댐 건설 결사 반대'를 외치면서 말이다. 내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망막을 어지럽히는 물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 그저 슬프기 때문인 것이다. 그저, 말이다. - 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에필로그 중에서    

 

동강의 상징이 된 '쉬리'는 여울각시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비늘이 아름다운 물고기이다.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동강과 더불어 살아가는 쉬리. 쉬리는 그동안에도 동강 상류에 있는 도암댐으로 인해 극심한 고생을 했다.

 

그럼에도 살아남았던 쉬리. 지느러미를 힘차게 흔들며 범여울과 황새여울을 거슬러 올라가던 쉬리를 이제 동강에서는 볼 수 없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소설 속 송구도 살아있고, 정선 사람들도 그대로인데, 아름다운 동강에 댐을 또 건설하겠다는 이명박 정부 사람들. 필름을 10년 전으로 되돌려야 할 때가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태그:#동강에는쉬리가있다, #정선동강, #대운하, #도암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