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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말을 제대로 실감 나게 해 준 책이 있다. 바로 <똥꽃>(그물코 펴냄).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전에 KBS <인간극장>에서 전희식씨가 나온 방송을 보았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다. 방송에서 나이드신 어머니께 극진하게 대하던 모양새가 기억에 남았을 뿐이다. 물론 그 몇 장면은 '강렬'했다. 그러니 이 책을 읽게 되었겠지.

 

귀농해서 사는 것, 그것도 어머니를 모시고. 이 두 가지 소재는 이 책을 안 읽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호기심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헌데 그 호기심의 대가는 너무 컸다.

 

출퇴근길 차 안에서 처음 읽기 시작한 이 책, 출퇴근길 차 안에서 다 읽고만 이 책. 책이란 놈을 읽으면서 눈가에 눈물 맺혀본 적 여러 번이지만 이토록 '깊고 아픈 눈물'은 처음인 듯 하다.

 

아! 지하철 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결국 참지 못하고, 사람들 몰래 닦아내느라 어찌나 힘들었는지. (꼭 지하철 안이 아니어도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물 보이는 거 정말 싫다.) 결국, 마지막 책장을 지하철 안에서 넘기고는, 지하철 역사 안 화장실로 뛰어갔다. 변기에 앉아 입을 손으로 부여잡고 꺼이꺼이 통곡을 했다. 공중 화장실에서 그렇게 울어 본 적은, 아무래도 처음이지 않을까.

 

글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회초리'인 책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바로 '어머니'라는 이름 때문이다. 농부 전희식씨가 어머니한테 베푼 따뜻한 사랑과 존경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거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하늘로 떠난 내 어머니 때문이다. 그런 거 제대로 해드려 본 적 없는 못난 자식 '나'라는 사람 때문이다.

 

내 어머니는 치매에 걸린 적도 없고, 전희식씨 어머니보다 훨씬 젊으셨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 왜 그렇게 내 어머니랑 맞아떨어지게 느껴졌을까. 글쓴이가 자기 어머니를 향해 무언가를 해드리면 곧 바로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한 내 모습에 자책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 책은 글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나에겐 모두 '회초리'였다. 몸이 아니라 마음을 때리는 그런 회초리.

 

"줄곧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너랑 어머니랑 바꿔서 살아볼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옷에 똥을 누는 사람보다 그 똥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배는 행복한 줄 알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미움과 무시, 의심과 두려움을 안고 지내려면 매 순간순간이 고통일 텐데 어떻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치매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한 계기였다."

 

"모든 망각은 잠재된 고의라고 한다. 왜 집을 못 찾겠는가? 이치에 안 맞는 말을 하고 똥오줌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람을 감금해 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 집을 못 찾는 치매노인의 심리라고 하면 억지일까?"

 

"모든 기억은 다 고통이고 할 수 있는 모든 생각들이 괴로움의 원천일 때 해당 세포는 자살을 한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에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보살피는 것이 치매 노인의 품위와 존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이다."

 

"과거 어느 한 지점에 맺힌 한이 소통되지 못한 채 오늘까지 이어져오다 보니 악담과 저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흘려보내야 한다. 했던 얘기 또 하고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는 노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저 글들을 읽고서도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다면, 둘 중 하나이리라. 정말로 부모한테 잘못한 게 없거나, 자기가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고 있거나.

 

허나 이를 어쩌랴. 나는 부모한테 잘못한 것도 많고, 게다가 그 잘못이 무엇인지까지도 잘 알고 있는 걸. 그러니 그렇게 눈물이 흐를 수밖에. 남들보다 두 배는 더 회초리를 맞아야 하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갑자기 떠나신 엄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난 한 번씩 상상을 해 본다. 만약 내 어머니가 글쓴이 어머니처럼 치매를 앓는다거나 오래 병수발을 할 정도로 아프셨다면 난 어땠을까. 이 못된 성격에 힘든 내색 꽤나 많이 했겠지. 아니, 오히려 그런 어머니 곁을 별로 지켜드리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난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었다. 내 어머니는 흔히 말하는 '급사(急死)'를 하셨다. 나랑 같은 시간에 같이 집에 계시던 어머니였는데…. 내가 점심밥까지 차려드린 그 어머니가 쓰러져 계신 걸 발견하고는 생전 처음 119에 신고란 걸 해봤다. 연락받고 찾아온 119대원한테 "이미 돌아가셨는데요"라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말도 들었고, 역시나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구급차에서 울면서 '엄마, 엄마!'를 외치며 병원으로 가기까지 했다.

 

식구들은 그래도 내 덕에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부검까지는 안할 수 있었다며, 마지막으로 어머니한테 효도한 걸로 생각하라고 나를 위로했지만, 그게 위로가 될 수가 없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 오히려, 조금만 더 일찍 쓰러진 어머니를 발견했다면, 하는 그 자책감이 아직까지 나를 옥죄고 있는 걸. 그러면서 언니·오빠·동생들한테 한 번씩 이런 푸념을 건넨다.

 

"어쩜 엄만 그렇게 우리 육 남매 요만큼도 고생 안 시키고 돌아가셨을까? 우리가 그렇게 잘못한 게 많은데,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었을까? 정말 너무해. 우리들 불효한 죗값을 어떻게 치르라고 말이야. 너무 속상해. 엄마 병수발이라도 고생스럽게 하고 떠나보냈다면 이렇게 이렇게 한스럽진 않을 텐데."

 

하지만 한 번씩은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이게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한테 준 죗값일지도 모르겠다는. 우리가 아무것도 해볼 수 없게 떠나는 대신, 이렇게 평생 엄마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질 수밖에 없는, 상쇄시킬 수 없는 아픔을 주신 것.   

 

"어머니의 굴절된 삶이 현재적 표현이 지금의 치매다. 오늘의 어머니를 인정하려면 고른 삶뿐 아니라 굴절된 삶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분리될 수가 없는 것이다. 치매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어머니 인생은 일찍 사라졌을 수 있다. 그런 말,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어머니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치매는 그렇게 살아온 삶에 대한 필요한 현상이고 치유의 과정이다."

 

전희식씨 어머니는 어쩌면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굴절된 삶을 '치매'라는 치유 과정으로 드러낼 수 있었으니. 그리고 그 치유 과정을 함께 보듬어 주는 착한 자식까지 곁에 두고 계시니.

 

<똥꽃>은 나에게 '눈물꽃'

 

그에 비하면 치매든, 다른 그 어떤 방식으로든 그 굴절된 삶을 드러내지 못한 채, 환갑도 되기 전에 그저 이 세상에서 일찍 사라져버린 내 어머니는 얼마나 안쓰러운가. '심장마비'라는, 병원에서 내려 준 그 추측성 사인(死因) 뒤에 감춰져 있을, 진짜 사인(死因)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과거 어느 한 지점에 맺힌 한을 소통하지 못한 나머지, 어느새 모든 기억은 다 고통이고 할 수 있는 모든 생각들이 괴로움의 원천이 된 나머지 '치매'나 '병'이라는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죽음'의 길로 떠나신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으니 공중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꺼이꺼이 울 수밖에 없었겠지. 이 책 표지만 봐도, 그리고 책 읽은 느낌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날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 이 책 <똥꽃>은 이제부터 '눈물 꽃'이라고 불러야 할까 보다. 쳐다만 봐도 눈물이 앞을 가리게 만드는 그런 존재니까.


태그:#어머니, #효도, #똥꽃, #귀농,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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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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