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주제가 주제인만큼, 8일 밤 11시부터 방영된 <100분 토론>은 3시간을 넘겼다. 시청자들이 직접 인터넷 댓글을 달 수 있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토론 광장 '100분 토론' 코너에도 무려 3만 4천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이 역시나 민감한 주제라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나는 3시간 내내 지속됐던 패널들 사이의 전문적인 논쟁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보다 그들 사이에 오간 대화가 대중들에게는 어떻게 와닿았을지를 추론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정부 측 패널의 최대 문제점, '책상머리 공무원'의 자세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민심이 분노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광우병의 위험은 한마디로 생명의 문제이며, 가족의 안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보통 일일까? 아니다. 내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부모로서 자녀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할 때가 인간으로서는 가장 절망과 고통이 따르는 순간이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따르면, 누가 어떤 쇠고기를, 어떤 방식으로 먹었다가 탈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문제가, 이명박 정부의 처신과 분야별 정책에 대한 쌓였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독자들이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널로 출연한 이상길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단장이 나름대로는 '선방'을 했다고 본다.

 

여기에는, 반대 측 패널로 출연한 송기호 변호사와 박상표 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이 '의욕 과잉'으로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이야기하려다가 미숙한 화법과 맞물려 설득력을 반감시켰다는 효과가 만만치 않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상대의 논거를 가장 확실하게 반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본인의 전문분야가 아니었기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점도 두 패널의 '의욕 과잉'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그런 와중에, 분명하면서도 알아듣기 쉽게 요점을 정리해 정부 측 패널을 공격한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의 활약과 재미교포 이선영 주부의 전화 지적은 더욱 빛이 났던 것 같다.

 

일단, 이상길 단장으로 대표되는 정부 측 패널의 문제점은 '화법'과 '어휘 선정'에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국민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을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길 단장을 비롯한 정부 측 패널은 99.9%니 하는 퍼센테이지에 의존한 근거 제시로 일관했다. 또 토론에 전혀 도움이 안돼 '엑스맨' 역할을 자처한 정인교 인하대 교수의 '떡' 이야기로 초반부터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다.

 

그러다가 이상길 단장이 그동안 줄곧 유지했던 '이번 합의는 양국(한미) 간 신뢰의 문제'라던 입장을 방송 토론에서까지 내세우며 "미국을 안믿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시청자로서는 경악을 금치 못할 한마디(의식적인 것인지, 무의식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 다 문제)를 내뱉었다. 거기서 토론의 의미는 끝이 났다.

 

'국민 건강'의 문제를 '양국 간의 신뢰'라는 논리로 "안전하다"는 입장을 밀어붙이려다가 대중의 감정을 더욱 격앙시킨 것이다. "한미 간의 신뢰 문제가 국민건강보다 우선"이라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상길 단장을 비롯한 정부 측 패널 최대의 패인은, "책상머리 앞에 앉아 서류로 퍼센테이지나 따진다"는 대중의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부채질했다는 점에서부터 비롯됐다. 거기에 이명박 정부의 갖은 실책과 '조공외교' 논란, '엠바고 파문'과 맞물려 판단해본다면, 결과는 안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100분 토론>은 이명박 정부 측에 전혀 도움되지 않았다.

 

이제 남은 분수령은 <PD수첩>

 

이제 남은 것은 <PD수첩>이다. 지난 4월 30일 방영분에 대해 청와대는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명의로 <PD수첩> 측을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언론 탄압'이라는 대중의 반발을 아주 확실하게 이끌어냈다.

 

5월 14일자 <PD수첩>, 청와대의 입장에서는 방영이 돼도 문제고, 안돼도 문제다. 방영이 안된다면 '언론 탄압'이라는 반발에 더 확실한 명분을 줌과 더불어 촛불문화제로 드러나는 민심에 기름을 잔뜩 끼얹는 결과가 된다.

 

하지만, 방영이 된다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더욱 확실한 공격의 근거와 명분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니, 이래저래 곤란할 수밖에 없질 않나.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자체도 문제지만, 국민의 반발에 대처하는 청와대나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의 대처방안도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점 자체에서 엄청난 뇌관이 잠재돼 있다.

 

과연, 청와대의 <PD수첩>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 제기는 어떤 결과를 맞이할까? 그 칼이 <PD수첩>을 정조준할지, 오히려 부메랑처럼 날아와 스스로를 겨눌지, 그것은 5월 14일의 방영과 소송 과정에 따라 드러날 듯하다.

 

'사람 마음'도 못알아보는 정권을 지켜보는 슬픔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은 이제 정국을 지배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것을 좌우할 이슈로 자리잡았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의 안위'와 '변명 논리 계발'에 급급함에 따라, 취임 두달 만에 28%라는 어처구니 없는 지지율을 확인받았을 뿐이다.

 

누누히 말하지 않았나? 인간이라면, 누구든 때때로 나보다 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걸린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심지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런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100분 토론>은 이명박 정부의 그런 몰이해를 재확인시킨 계기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 됐다.

 

대통령이라면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정치하는 입장에서는, '뉴타운'이라는 말에 쉽게 휘둘리는 바보 같은 존재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바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나 '역린'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 '역린'을 건드렸다는 것, 알고 있을까?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으로 대표되는 보수인사들이 '배후 세력' 운운하고 있지만, 학생들까지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는 사실이 뭘 말하고 있는지 과연 알고 있을까?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4·19 혁명 직전의 이승만 정부와 거의 다를 것이 없는 대처로 나서고 있다. 'PD수첩 시청 권유 문자메시지'도 주시하며 처벌하겠다니, 말 다 한 것 아닐까.

 

국민들은 결국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자체의 문제와 더불어 그에 대처하는 이명박 정부의 자세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이다. '생존'과 '민주주의'에 대해 동시에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것, 이것은 말 다 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더이상의 폭주를 멈추길 바랄 뿐이다.


태그:#미국산?쇠고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