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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경리 선생의 운구차량이 8일 오후 모교인 진주여고 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고 박경리 선생의 운구차량이 8일 오후 모교인 진주여고 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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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여고 한 후배가 고 박경리 선생의 영정을 들고 서 있다.
 진주여고 한 후배가 고 박경리 선생의 영정을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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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타계한 고 박경리 선생의 유해가 조선 땅 곳곳을 누빈 끝에 고향에 도착했다. 고인의 유해는 8일 오전 서울 아산병원에서 영결식을 치른 뒤 생전에 머물렀던 강원도 원주(토지문화관)에서 노제를 지내고, 모교인 진주여고에 들러 추모제를 지낸 뒤 이날 저녁 통영 숭례관에 안치되었다.

8일 오후 고인의 유해가 도착한 진주여고에선 후배들의 애도 속에 추모식이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정영석 진주시장을 비롯한 진주지역과 문화예술계 인사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재학생 대표의 추모시 낭송에 이어 박경리 선생의 자작시 '미친사내' 낭송, 유족대표 인사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 유족이 박경리 선생의 위패를 들고 진주여고 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 유족이 박경리 선생의 위패를 들고 진주여고 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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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여고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김영주 토지문학관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진주여고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김영주 토지문학관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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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선 진주여고총동창회장은 추도시를 통해 "5월 일신(일신여고는  옛 진주여고)의 교정은 온통 꽃밭입니다"라며 "생전의 당신께서 그토록 걸음하시길 갈망했을 일신 교정엔 지금 등꽃들과 영산홍, 한껏 물오른 나무들이 영면에 드신 당신 품안의 토지에서 어여쁩니다"라고 말했다.

고인의 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은 "어머님께서 생전에 '몸이 나으면 꼭 한 번 모교인 진주여고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했는데 끝내 오시지 못해 안타깝다"며 "모교와 진주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계선 진주여고총동창회장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김계선 진주여고총동창회장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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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은 1941년부터 4년제였던 진주공립고등여학교를 다닌 뒤 1945년 3월 25일 졸업했다. 진주여고 졸업대장에는 선생의 본명이 '박금이'로 기록돼 있다. 진주여고총동창회는 지난 2004년 박경리 선생한테 '제1회 자랑스러운 일신인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박노정 시인은 "박경리 선생은 돌아가셔서도 이 땅 곳곳을 누볐다"며 "유해는 서울을 출발해 강원도 땅까지 간 뒤 다시 경상도로 왔다"고 말했다. 이어 "역대 어느 인물의 장례행렬이 이처럼 전국을 누빈 적은 없을 것"이라며 "그만큼 고인은 이 <토지>를 사랑하신 것 같다, 고인은 장례식 또한 오래오래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관문화훈장이 고인의 영정 앞에 놓여 있다.
 금관문화훈장이 고인의 영정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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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는 9일 오전 10시 분향소가 차려진 통영 강구안문화마당에서 열린다. 이날 추모제는 '넋맞이굿'을 시작으로 조사와 추모시 낭송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고인의 유해는 꽃상여에 태워져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서문고개 근처 충렬사까지 이동해 노제를 지낸다. 시민들은 200여개의 만장을 들고 꽃상여를 뒤따를 예정이다.

고 박경리 선생은 이날 오후 통영 앞바다와 한산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양지바른 미륵산 자락에 영원히 안장된다.

진주여고는 나무에 하얀색 리븐을 매달아놓았다.
 진주여고는 나무에 하얀색 리븐을 매달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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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여고 교정에 마련된 분향소의 박경리 선생 영정 모습.
 진주여고 교정에 마련된 분향소의 박경리 선생 영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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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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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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