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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버님, 그리고 아이들 아빠 티셔츠 하나 사려면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 돈이 좀 남으면 애들 여름 티셔츠도 하나씩 사주고….'

 

어버이날을 앞둔 엊그제(5월 6일) 어머니와 함께 남대문시장에 갔다. 어머니와 남대문시장에 가기 전에 우체국에 들러 20만원을 뽑았다.

 

어머니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남대문시장에 가자는 나의 제의에 어림짐작, 어머니 아버지 선물을 사자는 것임을 짐작하셨을 텐데, 남대문시장에 도착해서는 "맛난 것이나 많이 먹고 식구들 먹을 족발이랑 반찬이나 사가자. 정 섭섭하면 아버지와 아범 여름 남방이나 하나씩 사고…"라며 옷 고르는 걸 한사코 마다셨다.

 

그런 어머니를 억지로 모시고 들어간 삼익상가에는 어머니께서 좋아할 법한 옷들이 많았다. 삼익상가에 먼저 들르길 잘했다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하고 아범 옷이나 사자"며 한사코 남자들 옷 파는 곳 쪽으로만 가셨다.

 

어머니께서 그래도 눈길을 한 번 더 주는 옷들이 있는 곳을 눈여겨보았다가 다시 모시고 가서 입어보시길 강요(?)했다. 그렇게 사드린 점퍼형 재킷.

 

"엄마가 정장은 많으니까 이런 옷이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그런데 너무 젊어 보이는 것은 아니니? 사람들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책 맞다고 하면 어떡하니?"

 

어머니께선 아버님과 남편의 옷을 사는 사이, 남대문 여기저기를 함께 다니는 동안 이와 비슷한 말씀을 몇 번 하셨다. 생색내는 말을 별로 안 하시는 어머니의 성품을 난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옷이 무척 맘에 드시는 거다.

 

"꼭 정장 받쳐 입지 않아도 될 곳에 막 입고 다니기 좋겠지? 어디 놀러 갈 때도 편하게 입을 수 있고."

"어머니, 다시 한 번 꽃구경 가셔야겠네요."

 

필요한 것을 사면서 구경하는 틈틈이 어머니와 함께 순대와 떡볶이를 사먹었다. 1000원짜리 과일도 한쪽씩 사서 먹었다.

 

"따님이세요? 아닌 것 같은데? 따님이 아니라 며느리 맞죠?"

"딸로 보여요. 며느리로 보여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유?"(웃음)

"며느리 맞죠? 며느리 같아요. 참 보기 좋아서요. 난 한 번도 어머니와 이렇게 시장에 나온 적이 없는데 어머니 모시고 꼭 와봐야겠어요. 무척 행복해 보이세요."

 

어머니와 함께 전철을 타고 오는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얘, 엄마가 양장점에서 보았던 옷들이 남대문시장에 많이 보이더라!"

"그렇죠. 가게 주인들이 새벽에 떼다가 소매하니까. 동대문 시장도 그렇고요. 업자들에게 주는 것보다는 비싸게 팔지만 그래도 동네 양장점에서 사는 것보다는 훨씬 싸죠. 동네에서 사면 좋은 것은 가게 주인이 선택한 것을 한꺼번에 보면서 고를 수 있으니 좋고, 그런데 아까 간 곳에는 어머니 취향의 옷이 참 많았죠? 그러고 보니 어머니랑 남대문시장에는 처음 간 것 같네?"

 

점퍼형재킷(어머니):70,000/점퍼(아버님):45,000/와이셔츠(남편):15,000/트레이닝복 한 벌(아들)40,000/티셔츠와 후드 티(딸):18,000/슬리퍼(딸):5,000/옥수수:3000/순대와 떡볶이:4000/미삼:5000/모자(어머니):10,000/핫바 4개:4000/수박 2쪽:2000

 

얼추 헤아려본다. 적은 돈으로 식구들 몫을 골고루 챙긴 것 같다. 어머니와 맛난 것도 사먹었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옥수수도 사드렸다.

 

전철 안. 경로석에 앉으신 어머니는 졸고 계신다. 고개가 옆으로 조금씩 움직인다. 2개는 내가 들고 가겠다는데 한사코 빼앗아 가신 터라 그런 어머니 무릎에는 4개의 봉지가 올려져 있다. 때문에 앉았지만 그다지 편하지는 못할 것이다. 무릎의 봉지를 다시 손에 꼭 쥐고 졸고 있다.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오랫동안 보면서 왔다. 많이 수척해지셨다.

 

결혼 15년. 연애할 때부터 유통업에 종사하던 남편은 첫아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에 가게를 차렸고, 세 살 터울인 둘째가 돌이 될 무렵부터 나도 함께 장사를 했다. 때가 되어도 손님이 우선이라 어버이날이라고 어머니와 함께 살뜰한 시간을 한 번도 보낸 적이 없었다.

 

어버이날 닥쳐서 필요하실만한 선물을 급히 사서 저녁을 나눠 먹으며 드리는 정도였었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며 '올해도 이렇게 무사히 행사를 치렀구나'의 안도감이 들곤 했던 것 같다.

 

몇 년 전부터는 그냥 필요하신 것 사시라고 돈으로 드리곤 했다. 하지만 그 돈들은 나중에 아이들 옷이나 남편의 옷으로 돌아올 때가 많았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살기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를 앞세우며 소홀하였던 그간의 어버이날들을 생각하다가 비싼 옷이 아니더라도 맘에 드시는 옷을 직접 사드리고 싶어서 모시고 간 남대문시장이었다.

 

'그 누구보다 우리 사정을 잘 아시는 어머니, 비싼 백화점표 선물이 아니면 어때? 함께 시장을 가는 것만으로도 어머니는 좋아하실 텐데.'

 

어머니는 남대문시장 가는 전철 안에서 며칠 전에 보고 온 연극 이야기를 하셨다. 고양시와 고양시 농협에서 어버이날 행사로 마련, 노인들을 초대한 <불효자는 웁니다>.

 

너무 가난한 살림의 주인공 어머니는 아들을 서울로 보내고 고생고생 뒷바라지로 아들은 성공시킨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너무 남루한 자신이 아들에게 피해가 될까. 고향에서도 떠나 근근이 살아가면서 날마다 아들의 먼발치에서 아들을 훔쳐본다. 얼굴까지 가린 자신의 어머니를 몰라보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따뜻한 말을 건네는 그 아들, 아들 가까이에서 아들의 손을 한번 잡아본 것만으로도 "이젠 세상의 한을 풀었다"는 말을 하고 어머니임을 끝내 밝히지 않고 아들 주변에서 떠나는 어머니….

 

"이젠 진오엄마(주인공 어머니)처럼 고생 고생하여 자식들 성공시킨 이야기는 노인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 연극을 보다가 기분이 나쁘다며 나가버리는 사람들도 많더라. 그런데 손자 같은 애들이 나와서 요즘 유행하는 춤을 출 때는 다들 좋아하더라. 엄마야 너희들 자주 보고 그래서 섭섭하지 않다만 그 연극을 보면서 자식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속상했겠니? 자식들 생각도 더 나고.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큰 것 바라겠니? 손자들 자주 보고 과자라도 하나 더 사줄 수 있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태그:#어버이날, #남대문시장, #효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어버이날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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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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