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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엘리엇(Thomas Elyot, 영국, 1490~1546)이 말한 '잔인한 달(4월)'은 5월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어린이날을 보내고 나니, 바로 오늘이 5월 8일, '어버이날'입니다. 이제 곧 다음 주면 '스승의날'도 다가옵니다. 이번에는 다 챙겨보려고 일단 마음은 먹었는데, 끝이 없을 듯합니다.

지난주부터 모두 작은 정성이나마 마음 담아 선물 고르기에 애들 쓰셨을 줄 압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물들을 고르고 준비하셨습니까? 어떤 의미를 담아 포장하고 마무리하셨습니까?

고흐의 마음을 담아 그의 그림을 바칩니다!

평생을 부족한 자식을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 아버지의 은혜가 그 어떤 선물을 한들 갚아지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도 오래전부터 마음 담아 준비하고 간직해온 기념 선물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선물을 공개하여, 이 땅의 존경하는 모든 어머니들, 아버지들께 바치고자 합니다.

요즈음 연일 날씨도 화창하고 좋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와 뺨을 스치는 대기의 감촉이 참~ 싱그럽고 상쾌합니다. 오늘 즈음에는 독자들의 창가나 방 안에 '카네이션 꽃송이나 화분'이 하나씩은 다 놓여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듭니다.

고흐 관련 작품들은 이미 앞에서 여러 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고흐의 자세한 약력은 "주요 작품활동"과 이전의 글들을 참고하시고, 오늘은 간략하게만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에 있어서 아래 오늘의 그림들을 그렸던 시기를 중심으로 알아보려고 합니다.

Oil on board, 1886-7,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USA
▲ 고흐의 자화상(Self Portrait) Oil on board, 1886-7,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USA
ⓒ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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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3월 30일, 고흐는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포르트 춘데르트(Zundert)란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엄격한 개신교 목사였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로 살았던 아버지, 테오도루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 1882-1885)와 외향적인 어머니, 안나 코르넬리아 반 고흐-카르벤투스(Annaornelia van Gogh-Carventus, 1889-1906)의 맏아들이었으며, 어릴 적에는 시골의 목사관에서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1869년네 고흐는 숙부의 권고를 받아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서 판화와 복제그림을 파는 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는 열성적이고 세심하며 유능한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는 날마다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웠던 시기입니다. 1872년부터 아우인 테오가 화랑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헤이그에서 보낸 이 시절은 고흐의 삶에 있어서 가장 밝고 행복했던 시기였습니다.

인상주의 영향을 받아 화법의 변화를 겪은 파리의 생활

위 '자화상'과 아래 '카네이션을 꽂은 정물화'를 그렸던 1886년에 고흐는 든든한 지지자였던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파리로 그림공부를 하러 갑니다. 당시 파리는 새로운 인상주의(impressionism) 양식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던 시기였습니다.

이곳에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네덜란드, 1606~1669)와 당시 작품활동을 하던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 그리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1886년부터 1888년 2월까지 파리에서 인상파 영향을 받으면서 화법 변화를 보입니다.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 풍의 어두운 그림에서 밝고 강렬한 분위기로 바뀌었으며, 색조도 다채로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풍과 새로운 붓놀림을 창조해냈던 것입니다. 그의 그림은 표현주의적인 동시에 상징주의(symbolism)적이었습니다.

그러던 1890년 7월 27일, 고흐는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의 삶을 마감하고 맙니다. 생레미 요양원에서의 계속되는 신경증과 발작, 폭력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그가 그림으로도 즐겨 그렸던 밀밭 언저리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Vase with Red and White Carnations on a Yellow Background), 1886, Kroller-Muller Museum, Netherlands
▲ 노란 배경에 붉고 흰 카네이션이 꽂힌 꽃병 (Vase with Red and White Carnations on a Yellow Background), 1886, Kroller-Muller Museum, Netherlands
ⓒ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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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이라는 짧은 생으로 삶을 마감했던 고흐. 그의 작품 활동도 단지 1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 기간에 열정적으로 제작했던 1000여 점이나 되는 그의 작품들은 특히 강렬한 색채와 거친 화풍, 그리고 살아 생동하는 힘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모델을 살 수 없어 자연을 담아 그린 꽃 정물화

그러나 화랑에서 직원으로 일했을 때와 잠시 전도사로서의 삶을 살았을 때를 제외하면, 고흐의 경제적인 생활은 무척 불행했습니다. 위 자화상과 정물화들을 그렸던1886년에는 경제적인 생활과 미술기법에 필요한 책, 미술도구, 물감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전적으로 동생 테오에게 의존하던 시기입니다.

생계유지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을 만큼 경제적인 궁핍과 빈곤으로 인해 고흐는 그림 그릴 모델조차 전혀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고흐의 작품에 있어 야외에 널려 있는 꽃밭이나 그 안의 꽃들과 같은 자연풍경은 고흐 그림의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해바라기 연작과 마찬가지로 위 세 그림들도 그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고흐는 야외에 직접 나가 그 현장에 자라는 생물들을 생생하게 표현하기도 하였지만, 오늘의 그림처럼, 현장의 꽃들을 꺾어다 꽃병에 꽂아놓고 감상하며 그린 정물화들도 그만의 개성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1886, Private collection
▲ 카네이션 꽃병(Vase with Carnations) 1886, Private collection
ⓒ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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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활동 시기는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시기는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한 1873년에서 오늘의 작품이 완성되기 전인 1885년까지를 말합니다. 이 1880년대 전반기에는 잇따른 실패와 진로의 전환이 있었던 수습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해낸 시기의 꽃 정물화

이때에는 미술 기법을 익히면서 오로지 데생과 수채화에만 전념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까다로운 기질과 씨름하면서 진정한 자기표현의 수단을 찾으려고 애쓴 시기였습니다.

이때 바로 자연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꽃이나 꽃병과 같은 정물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이때 그린 그림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뚜렷한 윤곽과 강렬한 색채의 효과를 통하여 주제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애썼습니다.

후반기인 1886년부터 1890년까지의 두 번째 시기에는 그림에 몰두하면서 빠른 성장과 성취감을 가졌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1889년부터 정신적인 위기와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오늘의 세 그림을 완성했던 1886년 봄부터 1888년 2월까지 파리에서 화법 변화를 겪으면서 그 자신의 개성적인 화풍과 붓놀림을 창조해냈습니다.

(Vase with Carnations and Other Flowers), 1886, private collection
▲ 카네이션과 다른 꽃이 있는 꽃병 (Vase with Carnations and Other Flowers), 1886, private collection
ⓒ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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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흐의 그림과 같은 정물화는 17세기에 등장했으나, 이후 급속도로 발전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회화의 유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물화는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행복과 낙관주의를 표현한 카네이션 꽃 정물화

그 이유는 정물화는 단순히 모방의 미술이라고 생각했으며, 눈과 손의 뛰어난 협업과 정교한 기술을 요구할 뿐 독창적인 사고력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8세기 유럽의 미술과 회화 장르의 위계에서 당시 '역사화'는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했으나, 정물화는 공식적으로 가장 낮은 것으로 좌천되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는 정물화의 목적과 위상이 극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미술 아카데미의 위력이 쇠퇴하였고 독립적인 미술 시장이 성장하면서, 회화는 장대한 주제에 위존할 필요가 없는 개인적인 표현과 창조력의 영역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정물화는 관찰할 수 있는 세계를 눈으로 보고 기록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 실험을 전개하던 고흐와 같은 화가들에게 호감을 샀습니다.

고흐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해바라기의 황금빛 색조를 녹여버릴 만큼 뜨거운 열기를 내는 것,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한 사람의 혼신의 에너지와 집중을 요구한다." 이에서, 오늘의 정물 그림에 대한 고흐의 열정과 신념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위 세 카네이션 그림에서 보여주는 황금빛 색채는 고흐에게 있어서 특히 중요했으며, 자신만의 상징주의를 발전시킨 것입니다. 특히 그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밝은 노란색으로 행복과 낙관주의를 표현하였습니다. 이처럼 정물화를 통하여 개인적인 생각과 심상을 표현했던 고흐의 위 세 그림을 이 땅의 어버이들께 바칩니다.

덧붙이는 글 | 오늘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 그림과 약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A R C(http://www.artrenewal.org)", "반고흐 미술관(http://www.vangoghmuseum.nl)", 문화 예술사(http://windshoes.new21.org), 그리고 "반고흐 영혼의 편지(Dear Theo: The Autobiography of Vincent Van Gogh, 도서출판 예담 1999)", "천년의 그림여행(Stefano Zuffi, 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를 참고하였습니다. 더 관심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태그:#정물화, #고흐, #카네이션, #어버이날,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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