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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과 골목꽃. 아니 고추포기를 심었으니 골목고추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 나라 골목은 우리 나라 나름대로 골목사람들이 살포시 가꾸고 있습니다.
▲ 골목길과 골목길과 골목꽃. 아니 고추포기를 심었으니 골목고추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 나라 골목은 우리 나라 나름대로 골목사람들이 살포시 가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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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2008년 5월 7일치에 올라온 글 가운데에, ‘골목을 쓸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이름이 붙은 글이 있습니다. 글쓴이 이지아 님은 일본 나들이를 했을 때 본, “깨끗하고 오래된 집들이 아직 많”은 골목을 걸으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골목길 가득가득 피어 있는 꽃을 보면서, 3월 아직 으스스한 추위에도 즐거움을 듬뿍 누리셨다고, “아침마다 이 길을 걸어서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 골목을 걸을 때마다 매일 큰 꽃을 선물받는 기분일 거라고, 매일 작은 호사를 누리는 기분일 거라고” 말씀합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이 골목길을 쓸고, 꽃집에서 꽃을 사오고, 또 조금 큰 화분에 옮겨 심는 사람들 모습이 이 사진 속에 겹쳐집니다. 자기 돈을 들여서 꽃을 사오고, 자기 힘을 들여 화분을 정리하면서도 사진 속 사람들은 더 맑게 웃고, 더 행복해 합니다”하는 말씀도 붙입니다.

서울은... 우람하게 잘 자라던 방울나무 굵은 줄기도 끔찍하게 베어내는 공무원들 세상입니다.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거님길, 풀 한 포기 깃들이지 못하도록, 가게집 사람들은 오토바이며 짐이며 내어놓고, 걸어다니며 앉을 자리조차 없습니다.
▲ 서울 골목 서울은... 우람하게 잘 자라던 방울나무 굵은 줄기도 끔찍하게 베어내는 공무원들 세상입니다.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거님길, 풀 한 포기 깃들이지 못하도록, 가게집 사람들은 오토바이며 짐이며 내어놓고, 걸어다니며 앉을 자리조차 없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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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우리 나라 골목길을 생각해 보면, “봄이 왔다고 봄을 쉽게 느낄수 없고, 일년 내내 한 계절 같은 삭막한 골목길”이라고, “대문에서 떨어진 광고 전단지가 뒹굴고, 누군가 제 시간에 내놓지 않아 수거해 가지 않은 쓰레기 봉투가 전봇대 아래에서 뒹”군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나라 웬만한 도시를 가 보아도, 또 시골 읍내나 면내에 가 보아도, 쓰레기와 광고전단지가 얼마나 많이 나붙어 있는데요. 또 도시이고 시골이고 스탠드바 나이트 따위에서 뿌리는 광고전단지가 얼마나 많은데요. 광고전단지를 뿌리는 젊은이들은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열 장 스무 장 씩 길에 휙휙 던지곤 합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국도를 달리다가 이런 전단지뭉치에 맞아서 크게 다칠 뻔하기도 했습니다.

더없이 슬픈 우리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처럼 슬픈 사람이 되었을까요. 우리 마음이 그지없이 메말랐는가요. 우리는 가슴을 잃거나 버리면서 살아가고 있나요. 우리한테는 오로지 돈만, 오직 권력만, 그저 학벌과 명예만 아름답게 느껴지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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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저는 골목길을 걷습니다. 이 못난 한국땅 골목길을 걷습니다. 그것도 도심지 골목길을 걷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고향인 인천은, 서울로 올려보내는 물건을 만드느라 온 동네가 공장투성이입니다. 본사는 서울이지만 공장은 인천인 곳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 공장은 하나같이 매연과 공해물질을 끝없이 쏟아냅니다. 우리 나라에서 죽는 사람 숫자를 보면, 자연스레 늙어서 죽는 사람보다 교통사고나 병으로 죽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납니다. 이 가운데 암으로 죽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인천은 교통사고로도 많이 죽으나 암으로 가장 많이 죽습니다. 얼마 앞서 2007년 통계가 나왔는데, 폐병으로 죽는 사람도 몹시 많더군요. 그만큼 공기가 나쁘고 물이 더럽다는 뜻입니다.

조그마한 땅뙈기에 심었던 들꽃이 어느덧 소복하게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인천시 공무원 어느 누구 거들떠보지 않고, 여기에 꽃을 가꾸지 않습니다만, 골목길 사람들이 손수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꾸고 있습니다.
▲ 골목꽃 조그마한 땅뙈기에 심었던 들꽃이 어느덧 소복하게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인천시 공무원 어느 누구 거들떠보지 않고, 여기에 꽃을 가꾸지 않습니다만, 골목길 사람들이 손수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가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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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는 골목길을 걷습니다. 이 매캐하고 가슴 답답한 골목길을 걷습니다. 더욱이 옛 도심지에서 ‘재개발’과 ‘재생사업’과 ‘도시정화’라는 이름으로 밀려날 판인 골목길을 걷습니다. 처음 이곳 인천에서 태어나 살 때에는 몰랐던 골목길을 걷습니다. 그때에는 저희 집이나 이웃사람 집이나 모두 마찬가지라고 느껴서 남다르게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사진쟁이 김기찬 님이 담아낸 <골목안 풍경>이라는 곳에 나오는 사람들 삶이 바로 내 삶이었고 이웃 삶이었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하루하루 조금씩 느끼면서 골목길을 걷습니다.

골목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헌 고무통 꽃그릇. 돌담 한쪽에도 고운 꽃을 심어 놓는 골목사람들 손길.
▲ 꽃그릇들 골목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헌 고무통 꽃그릇. 돌담 한쪽에도 고운 꽃을 심어 놓는 골목사람들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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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도 멀리하고 자전거 하나에만 몸을 맡기며 전국을 두루두루 다니다가, 뜻하지 않은 뺑소니 사고를 겪으며 무릎이 나가고 팔꿈치가 나가고 어깨가 나가서, 이제는 그렇게 좋아하던 자전거를 거의 못 타며 두 다리로 걸어다니기만 하는데, 이렇게 걸어서 골목길을 천천히 둘러보는 동안, 여태껏 못 보았던 모습을 하나하나 새롭게 받아들입니다. 처음에는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를 못 타게 되어 밉디미웠습니다만, 요즈음은 자동차 뺑소니 덕분에 이렇게 두 다리로 더 많은 시간을 걸어다니면서 골목을 느끼게 되는구나 싶어, 어느 한편으로는 고맙습니다.

머무는 만큼 본다고, 눌러지내는 만큼 느낀다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만큼 받아들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네 살림터에 오래오래 머물 수 있으면 오래오래 사랑을 쏟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네 살림집에 오래오래 눌러지낼 수 있으면 오래오래 마음을 바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네 골목길에 오래오래 이웃과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우리는 소매 걷어붙이고 골목문화를 일구어 나갈 수 있습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구파발을 빠져나가면, 북한산을 에둘러 엄청나게 솟아오르는 아파트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이렇게 도시에서는 골목길을 없애고, 도시 바깥 시골에서는 논밭과 산을 깎고 무너뜨리며, 오로지 아파트 하나만 올려세웁니다. 이런 한국땅 어디에서 골목길 문화가 싹틀 수 있을는지요.
▲ 일산 가는 길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구파발을 빠져나가면, 북한산을 에둘러 엄청나게 솟아오르는 아파트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이렇게 도시에서는 골목길을 없애고, 도시 바깥 시골에서는 논밭과 산을 깎고 무너뜨리며, 오로지 아파트 하나만 올려세웁니다. 이런 한국땅 어디에서 골목길 문화가 싹틀 수 있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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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습니까. 전국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던 ‘낮은자리 사람(서민)’들 삶터인 골목길을 남김없이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자동차 다니는 길을 내야 한다면서, 낮은자리 사람들 집을 까부수고 몰아내면서, 처음에는 2차선, 다음에는 4차선, 그러고 나서 6차선, 아니면 처음부터 8차선 10차선 찻길을 뻥뻥 뚫습니다. 높은자리 사람들 삶터에서 이렇게 막 나가는 길공사를 보신 적이 있으시온지요. 여기 제가 사는 동네에도 ‘너비 50m가 넘는 산업도로’를 골목집 한복판에 밀어붙이겠다며 인천시장님을 비롯한 관련 공무원들이 열 해째 닦달하고 있습니다.

하긴, 높은자리 사람들 삶터를 닦을 때에는, 낮은자리 사람들을 죄 몰아낸 다음, 아주 ‘깨끗하게’ 재개발을 하여 높은자리 사람만 들어오게 합니다. 모든 시설과 편의와 터전을 닦아 놓고 집을 들이니, 막개발이나 막공사나 날림공사란 깃들이지 않습니다.

지난해 시월 끝무렵. 한 해 동안 애쓴 스티로폼 꽃그릇이 비었습니다. 겨울나기를 하려고 흙마다 거름을 얹어서 삭여 주면서 이듬해 새봄을 기다립니다.
▲ 겨울맞이 빈 꽃그릇 지난해 시월 끝무렵. 한 해 동안 애쓴 스티로폼 꽃그릇이 비었습니다. 겨울나기를 하려고 흙마다 거름을 얹어서 삭여 주면서 이듬해 새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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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2014년에 아시안게임을 치른다면서 2013년까지, ‘인천에 남아 있는 모든 골목길을 없앤다’는 계획을 시장 방침으로 내려보내고 있습니다. 그곳에 삶이 있든 문화가 있든 역사가 있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정 그곳 문화와 역사가 소중하다면, 지금은 재개발을 하고, 나중에 다시 돈을 들여서 지으면 되지 않는가?’하고 주민들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인천시청 도로과와 도시계획과 공무원이 우리 앞에서 이렇게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일이 아니냐고.

인천을 넘어 한국이라는 넓은 틀로 보자면, 2020년 계획이라는 게 있다더군요. 2020년까지 한국을 새롭게 뜯어고치는 계획. 그래서 2020년까지 고속도로나 고속화도로는 지금 닦인 길보다 두 곱절 늘리도록 닦아놓고, 전국 구석구석 골목집을 모두 없애서 ‘깨끗한 주거환경인 아파트’로 갈아치운다고 합니다. 어느 분 머리에서 이와 같은 계획이 나오고, 누구네 주머니에서 이와 같은 계획을 밀어붙일 돈이 나올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수수꽃다리가 자라는, 인천 골목길. 동네 분들이 한두 해가 아닌 여러 해에 걸쳐서 고이 심고 가꾸는 수수꽃다리가 골목길마다 함초롬히 피어 있습니다.
▲ 수수꽃다리 수수꽃다리가 자라는, 인천 골목길. 동네 분들이 한두 해가 아닌 여러 해에 걸쳐서 고이 심고 가꾸는 수수꽃다리가 골목길마다 함초롬히 피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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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는, 스스로 역사를 빚어 나갑니다. 조그마한 것 하나에도 역사를 담고 문화로 꽃피웁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스스로 역사를 깔고뭉갭니다. 커다란 것조차 내팽개치는 판이니 조그마한 것 하나는 그냥 밟아서 없애고 말아요.

슬프고 가슴이 아려서, 골목길 나들이를 하면서 부지런히 사진으로 담기는 하는데, 이렇게 담아내는 사진이 사진에만 담기는 모습으로만 남으면 어쩌나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에서 흙과 햇볕과 물과 바람을 멀리하고 있는데, 우리 손으로 풀을 밟고 나무를 꺾고 꽃을 목아지치는데, 씨를 받아서 푸나무를 키우는 매무새가 아니라 돈으로 어른나무를 사서 심는 매무새로 달라지고 있는데, 무엇을 하든 돈이 얼마가 드느냐로 따지는 마음결로 바뀌고 있는데, 이 골목길 사진 한 장이 참말 무슨 뜻이 있으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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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 님께서 당신 일본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시면 느끼실 테지만, 자동차가 함부로 싱싱 달릴 수 없는 골목길은 꽃피고 새우는 아름다움을 듬뿍 맛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차가 싱싱 달리는 길에서는 꽃내음과 새소리가 깃들이지 못합니다. 우리네 터전도 그렇습니다. 지금 도심지 골목이라고 하는 곳을 보면, 어디를 가도 자동차 판입니다. 멀뚱멀뚱 하루 내내 서 있는 자동차, 넓지도 않은 길을 우악스럽게 먼지 일으키며 달리는 자동차,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한테 무섭게 빵빵질을 하면서 내달리는 자동차 …….

골목을 지나가면서 이와 같은 꽃 가꾼 집을 볼 때면, 마음이 아주 넉넉해집니다.
▲ 꽃으로 가꾼 집 골목을 지나가면서 이와 같은 꽃 가꾼 집을 볼 때면, 마음이 아주 넉넉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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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달리는 곳에는 문화가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경제’, 그러니까 ‘돈’만 있습니다. 자동차가 달리지 않는 곳에는 문화가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며 매달리는 ‘돈’은 거의 없습니다.

골목길 꽃그릇은 돈을 벌자고 마련해서 가꾸는 꽃그릇이 아닙니다. 골목길 내 집 앞뿐 아니라 이웃사람 집 앞 쓸고 치우는 일은 돈이 되기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좋아서 하니 일이 아니라 놀이입니다. 시골에서라면 텃밭을 일구는 그 거칠고 투박한 손길로, 도시 골목길에서는 꽃그릇을 가꿉니다. 스티로폼 모으고 흙 퍼 와서 푸성귀를 심습니다. 골목길 한켠에서 텃밭 농사를 합니다. 종묘상에 가서 씨앗을 사 오지 않습니다. 당신이 한 해 동안 기르고 가꾼 꽃에서 씨앗을 받아서 이듬해에 다시 심습니다. 남는 씨앗을 이웃한테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누가 보라고 가꾸는 꽃일지 모르나, 당신 스스로 좋아서, 골목길을 말끔하게 치우고 꽃잔치를 이루어 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골목길을, 어느 공무원도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으나, 볼 눈도 없지요. 그리고 공무원뿐 아니라,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꽃 골목길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 골목집 꽃 활짝 누가 보라고 가꾸는 꽃일지 모르나, 당신 스스로 좋아서, 골목길을 말끔하게 치우고 꽃잔치를 이루어 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골목길을, 어느 공무원도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으나, 볼 눈도 없지요. 그리고 공무원뿐 아니라,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꽃 골목길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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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골목길. 제법 오래 자란 나무는 이 골목에서 고운 나무 냄새와 꽃 냄새, 그리고 싱그러운 그늘을 선사해 줍니다.
▲ 나무그늘 골목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골목길. 제법 오래 자란 나무는 이 골목에서 고운 나무 냄새와 꽃 냄새, 그리고 싱그러운 그늘을 선사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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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는 골목길입니다. 일본 낮은자리 사람들도 가꾸고 한국 낮은자리 사람들도 가꾸는 골목문화입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일본 낮은자리 사람들 골목길을 함부로 다치게 하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는 한국 낮은자리 사람들 골목길을 군화발로 짓밟다가 돈뭉치다발로 짓밟고 있습니다. 두 나라 골목길은 한편으로는 같지만 한편으로는 다릅니다. 일본은 조용히 가꾸며 즐길 터전이 마련되어 있고, 한국은 조용히 가꾸며 즐길 터전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슥 지나가면 느낄 수 없는 골목길이요 골목문화이며 골목사람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휭 지나가도 맛볼 수 없는 골목길이요 골목문화이며 골목사람입니다. 골목길에 핀 골목꽃은, 두 다리로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같은 마음이자 눈높이일 때에만 마음 깊이 스며듭니다. 골목길에 보금자리 틀고 살아가는 골목새는, 두 손으로 흙을 만지고 빗자루를 들면서 하루 두어 차례 비질을 하는 몸뚱이일 때에만 몸속 깊이 다가옵니다.

골목길 나들이를 해 보셔요. 적어도 인천은 2013년까지는, 그리고 한국땅은 2019년까지는 그럭저럭 골목길이 살아남아 고요히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터이니까요. 골목꽃을 쓰다듬으며 사진 한 장 찍어 보셔요. 골목새 소리를 들으면서 수채그림 한 장 그려 보셔요. 일본 나들이는 돈이 들지만, 한국 골목길 나들이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돈으로 세운 롯데월드를 구경하자면 돈이 들지만, 돈이 아닌 마음으로 가꾸는 골목길을 구경하자면 돈은 한 푼도 들지 않고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돈벌이에 바쁘다면 하는 수 없습니다만, 돈벌이보다 마음밭 일구기에 시간을 쓸 수 있다면, ‘한국땅 바쁜 사람들 눈에는 한 번도 보이지 않고 있는 골목길 골목집 골목사람 골목꽃 골목새 골목마을’을 느껴 보소서. 마침, 인천 배다리 골목길에서는, 오는 5월 9일부터 11일까지 동네잔치를 조촐하게 치르려고 하니까, 살포시 잔치구경을 오셔도 좋습니다(행사안내 : http://cafe.naver.com/baedariro).

골목길 꽃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꼽으라면, "골목길에 널어 놓는 빨래"입니다. 이 또한, 골목길에 자동차가 함부로 다니지 못하는 데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자동차 배기가스를 맡지 않아도 되는 고요한, 고즈넉한 골목길 문화입니다.
▲ 빨래 골목길 꽃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꼽으라면, "골목길에 널어 놓는 빨래"입니다. 이 또한, 골목길에 자동차가 함부로 다니지 못하는 데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자동차 배기가스를 맡지 않아도 되는 고요한, 고즈넉한 골목길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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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태그:#골목길, #골목집, #인천, #배다리, #배다리문화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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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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