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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찾겠다고 이라크를 침공했으나 결국 한 개의 대량살상무기도 찾지 못했다. 그러자 입장을 바꿔 이라크 민주화를 돕기 위한 선택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일으킨 침략전쟁은 이라크 민중 수십만 명을 사망하게 했고, 수백만 명을 난민으로 만들었다. 미군도 3500명 정도가 전사했다. 반문명적 반인류적 침략전쟁을 일으킨 조지 부시, 딕 체니. 알베르토 곤잘레스, 곤돌리자 라이스를 전범 재판소에 회부해 단죄해야 한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지난 4일과 6일 상영된 미 독립영화 <이곳으로>의 엔딩 크레딧 마지막 부분에는 작품을 연출한 존 조스트 감독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견해가 담겨 있다. 영화의 내용이 이라크 전쟁의 불행과 부조리를 고발한 탓인지 감독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영화의 마지막에 덧붙여 놓은 것이다.

<이곳으로>는 단돈 500달러(우리 돈 50만원)라는 믿을 수 없는 제작비로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로, 이라크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미국 청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곳으로>, 부시를 전범 재판에 회부해 단죄해야

독립 대안영화를 바탕으로 삼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이렇듯 세상을 향한 감독들의 거침없는 목소리를 심심찮게 대할 수 있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특성상 정치적인 표현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세상에 쏟아내는 그들의 거침없는 발언은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관객들에게 시원함을 안겨준다. 동시에 영화제가 갖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지난 주말 내내 서울이 광우병 쇠고기 논란 때문에 뜨거웠다면 전통의 도시 전주는 영화로 인해 뜨거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한 뜨거움의 중심에는 문제의식을 담은 독립영화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랜스 해머 감독은 <발라스트>를 통해 가난으로 인한 고통과 상실감 속에 힘겹게 살아가는 아웃 사이더들의 삶을 그렸고, 하나 마흐발바프는 <학교 가는 길>에서 전쟁으로 황폐화 되어 가는 아프가니스탄을 어린 아이의 눈으로 고발했다.

김동원 감독과 안해룡 감독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끝나지 않은 전쟁>과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에 각각 담아냈고, 와카마츠 코지는 72년 적군파 이야기를 소재로 한 <실록 연합적군>으로 30년 전 혁명을 꿈꾸던 사람들의 모습을 돌아봤다. 

그리고 감독들은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이 만든 영화에 대해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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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듯 의식 있는 작품을 수월하게 볼 수 있다는 것과 영화들에 대한 진지한 대화와 토론이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감상하고 난 이후 감독에 대해 영화 내용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는 모습은 영화제에서 관객들이 얻을 수 있는 수확 중의 하나다.

간혹 영화제라고 하면 화려한 개막식과 스타 배우나 감독들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외형만을 보면 축제의 장소가 분명하다. 화려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널려 있으니 굳이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축제의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깊이 있게 영화제를 즐기려는 관객들에게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영상과 작품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영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준다. 단순히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영화에 대한 감독의 철학과 미학을 통해 작품 세계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영화제가 마련해 주는 것이다.

영화제, 감독의 철학과 미학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

날카로운 질문과 성실한 답변이 오가는 감독과 관객 간의 대화는 그 진지한 분위기 속에 어느덧 서로에게 동지의식을 갖게 한다.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 자리를 뜨지 않았던 관객들은 대부분 감독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이명박씨'를 거론하는 거친 질문에 관객들은 미소로 동조했고, 감독은 적극적 공감을 표하면서 한발 더 나아가는 답변으로 관객들에게 연대감을 나타냈다.

물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의 핵심이었지만 그 핵심은 결국 위안부 문제에 공통으로 느끼고 있는 울분과 분노였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오갈 수밖에 없는 영화. 사회성 짙은 작품에 대한 대화시간은 독립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런 풍경이었다.

<이곳으로>의 관객과의 대화도 마찬가지. 미국인 감독이 만든 반미영화에 대한 관객의 질문에 존 조스트 감독은 거침없는 답변으로 관객들을 만족시켰다. 또한 저예산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운 생활에 대해서도 감독의 답변은 자연스러웠다.

[관객] "보통 미국인들은 이라크 전에  찬성하는 것으로 아는데 자막에 써 넣은 비판의견을 써 넣은 감독처럼 반대하는 사람이 많이 있나?"
[존 조스트] "영화를 만들 때는 40% 정도가 반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70% 정도가 반대한다. 단순히 이라크 전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들 이제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부시는 맨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아주 심하게 부패된 정부다."

[관객] "영화를 통해 이익을 내거나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나이도 많으신 것 같은데)생활은 어떻게 하나?"
[존 조스트] "(한참 웃더니) 62년 퇴학을 당했고, 63년부터 영화 제작을 했다.(감독은 65년 베트남전 징집 거부로 2년 3개월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지금껏 정상적 직업을 가져보지 못했다. 2주 후면 65세가 된다. 정상적인 직장이 없었기에 저렴하게 생활했다. 1년에 2000달러로 몬타나에 있는 방 1칸 오두막서 살았다. 몬타나가 1년 중 8개월이 겨울인데, 그래도 아내와 행복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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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에 대한 간섭 배제, 폭넓은 영화 자유

표현에 대한 간섭이 배제된 영화제의 특성은 이처럼 영화와 감독들에게 폭넓은 자유를 허락한다. 평상시는 상업영화에 밀려 변변한 상영관을 잡기도 어려울 만큼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독립 다큐 감독들이 적어도 영화제에서만큼은 예우 받고 존중받는다. 이 같은 모습은 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긍정적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립영화들에게 이런 영화제를 통한 관심과 지원은 중요한 일이다. 물론, 독립영화들끼리의 자체적인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리기는 한다. 그러나 일반관객들의 자연스런 접근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대중적인 영화제에서의 이런 노력이 없다면 '그들만의 잔치'로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상업영화들이 대부분의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의식 있는 작품들이 그나마 부각될 수 있는 영화제. 최근 영화제들이 홍수라며 영화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보이기는 하지만 독립영화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영화축제는 그래서 가치 있게 보인다. 더욱이 일부러 불러내기 힘든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대거 몰려든다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겠는가!

전주국제영화제가 소중하게 생각되는 이유다.

전주영화제 J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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