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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일 오후 5시 50분경, 경기도 평택에서 한 축산농민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최근 출하를 앞두고 있는 젖소 25마리 가격이 폭락해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해왔다는 평택의 축산농민, 쇠고기 수입에 따른 소값 폭락 때문에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이 축산농민의 자살기도 소식은 언론이나 포털에서 주요기사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SBS 8시뉴스에서 자막으로 스쳐 지나갔고 YTN에서 짧게 보도했을 뿐입니다. 또 <민중의 소리> 인터넷에 짤막하게 실렸습니다.

 

당시 포털 뉴스를 검색해도 이 짤막한 기사에 대한 YTN의 뉴스 목록만이 나와 있을 뿐이었습니다. 모든 언론과 포털사이트들이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행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3일 새벽, 그 축산농민은 사망했고 그제야 언론들은 이 소식을 단신으로 보도했습니다.

 

평택 축산농민의 안타까운 사망소식 이틀 후인 지난 5일 전남 함평에서 40대 초반의 축산농민이 또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농가부채의 어려움을 딛고 축산으로 재기를 꿈꾸던 중 최근 수입개방에 따른 소값 폭락으로 좌절, 결국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넜습니다. 세 자녀와 아내까지 근심 걱정 없는 저 세상으로 데려가려고 농기계 수리용 둔기로 가족들을 내려쳐야 했던 축산농민의 심정,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단지 말로만, 심정으로만 이해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시골에 계신 제 아버지께서도 소를 25마리 정도 키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 가족, 우리집 즉 생계와 직결된 문제이도 하니까요.

 

축산농민의 자살,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

 

소값 하락에 따른 농민들의 고충은 뉴스보도를 통해 익히 알고 있습니다. 소를 키우는데 드는 인건비는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송아지 원금, 사료비, 건초 등 10원 한 푼 남지 않더라도 본전은 찾아야 하는데 요즘 시세라면 밑지고 소를 팔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송아지를 사서 2년 동안 600kg까지 키우는데 드는 비용이 400만원 정도인데 지금 팔면 400만원을 못받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2년 동안 꼬박 직장 다니면서 10원 한 푼 못받았다고 생각해보세요. 소득은 한 푼도 없고 출퇴근하면서 차비와 밥값만 없앴다고 가정했을 때, 그 심정이 어떨 것 같습니까? 2년 동안 말이지요. 죽고 싶은 심정 안 들겠습니까?

 

지난 주말, 할머니 제사 때문에 아버지께서 서울에 올라오셨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속이 답답해 지더군요. 소값 폭락도 문제지만 폭락한 가격으로도 소장사들이 소를 안 가져 간다는 것입니다. 더 떨어지기 전에 팔려고 해도 서둘러 내다 팔려는 축산농민들 때문에 출하물량만 많고 실거래가 안 되고 있다네요. 결국 거래는 별로 없고 계속 소값만 떨어진다는 애깁니다.

 

게다가 세계 곡물가격 인상으로 사료값도 대폭 인상된 상황이라 축산농가 입장에서는 소들이 하루하루 먹는 사료마저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멀쩡한 황소 굶겨 죽일 수도 없고…. 그래서 저희 시골집은 하루 세 끼 주던 사료를 아침, 저녁 두 번으로 줄였습니다.

 

점심 때만 되면 소들이 배가 고파 아우성을 친다고 합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대여섯 마리 정도의 소를 키우는 옆집은 출하할 소에게 하루 한 번만 사료주고 들판에 난 풀을 베어다 준다고 합니다. 가족의 중요한 생계수단이 이제 애물단지가 돼 버렸습니다.

 

소는 그동안 우리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생활의 근간이었습니다. 사실 곡식 농사는 가계에 별로 보탬이 되지 않았습니다. 곡식 농사는 가족, 친척들 먹을 양식 정도였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소를 여러 마리 팔아 떼돈을 번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예전 시세로 소 10마리 팔아 5천만원을 받았다고 하면, 송아지 10마리를 2500만원~3000만원 주고 사와야 합니다. 거기에 사료값, 건초, 약값 등 1천만원 이상 빠지게 되지요.

 

결국 2년 정도 키운 소 10마리 팔아봐야 인건비를 빼더라도 1천여만원 정도가 남는 것입니다. 일반회사 연봉과 비교한다면 정말 터무니없지만 그래도 많은 축산농민들은 이렇게 근근이 버텨왔습니다. 목욕을 여러 번 해도 가시지 않는 찌든 소똥냄새를 간직한 채 아버지도 평생 그렇게 소와 함께 살아오셨습니다.

 

"경제 살린다더니, 2개월 만에 나라 말아먹을 참이여"

 

엊그제 서울 올라오신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기업하는 사람이 대통령 허면 안뎌, 경제 살린다고 혀서 나이 많은 농촌 사람들 죄다 찍어줬더니 2개월 만에 나라를 말아먹을 참이여."

 

갑자기 지난 주에 본 MBC 드라마 <이산>의 한 장면이 생각합니다.

 

밭에서 면화를 불 태우고 있는 백성들을 본 정조(이산)가 신하로 하여금 그 이유를 묻자, 중국에서 들여온 값싼 면화 때문에 가격이 폭락해 태우는 것이라고 했지요. 정조가 어찌 그럴 수가 있냐고 묻자, 신하는 "면화를 키우는 백성들에게는 안 된 일이오나 많은 도성 사람들에게는 값싼 면화를 이용할 수 있어 좋은 면이 더 많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정조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면화를 재배하며 먹고 사는 백성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 그 수가 소수라 해도….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시행토록 하라."

 

모르긴 해도 지난 주 방영된 정조 이산의 위 멘트는 지금의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인 듯 싶습니다.

 

그나저나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축산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지 걱정됩니다.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이 버려져야 축산농민들을 위한 정부의 현실가능한 대책이 마련될지 모르겠습니다.

 


#소값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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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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