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래된 집 사이에 깨끗한 골목길
 오래된 집 사이에 깨끗한 골목길
ⓒ 이지아

관련사진보기

지난 일본 여행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한 장, 한 장, 모니터 속에 사진들이 넘어갈 때마다 그때의 기억들이 다시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올 봄, 일본에서 우리는 주택가에 있는 숙소에 머물렀습니다. 지하철을 타러가려면, 차도를 따라서 20분쯤을 걸어야  하는 곳에 숙소가 있었습니다. 

지하철 역 가는 길에서 재활용품 가게를 만나고, 편의점을 두 개 만나고 그리고도 크진 않지만 아주 알찬 시장을 지나야 했습니다.

처음 길을 모를 땐, 조금 큰 차도를 따라 지하철역에 다녔지만, 어느 정도 길을 알게 되자 과감히 동네 골목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사는 집을, 겉모습이나마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동네가 참 깨끗하다고, 오래된 집들이 아직도 많구나, 생각을 하며 골목을 이리저리 걸어 다닙니다. 그러다 모퉁이를 돌며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그때는 물론 3월 말경이었고, 봄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때였지만, 날씨는 엄청나게 추워 마치 겨울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골목을 돌 때마다 나타나는 광경들은 저를 그 추위 속에서  봄 한가운데로 당장 끌어올렸습니다. 몸은 덜덜덜 떨고 있었지만, 내 눈은 봄꽃 속에서 호강을 하고 있었습니다. 

봄꽃들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봄꽃들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 이지아

관련사진보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이 꽃들이 과연 다 얼마치야, 하는 아주 세속적인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곧 "우와, 우와" 감탄사만 연발하고 맙니다. 이 골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연신 사진기만 눌러댑니다.

아침마다 이 길을 걸어서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 골목을 걸을 때마다 매일 큰 꽃을 선물받는 기분일 거라고, 매일 작은 호사를 누리는 기분일 거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가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다지 넓지 않은 이 골목길을 쓸고, 꽃집에서 꽃을 사오고, 또 조금 큰 화분에 옮겨 심는 사람들 모습이 이 사진 속에 겹쳐집니다. 자기 돈을 들여서 꽃을 사오고, 자기 힘을 들여 화분을 정리하면서도 사진 속 사람들은 더 맑게 웃고, 더 행복해 합니다.

골목마다 꽃이 한가득
 골목마다 꽃이 한가득
ⓒ 이지아

관련사진보기


여기도 꽃이 한가득
 여기도 꽃이 한가득
ⓒ 이지아

관련사진보기



골목길을 돌다돌다, 작은 동네 놀이터를 만납니다. 작은 의자 하나와 미끄럼틀이 하나, 화장실 하나가 있는 놀이터는 이른 아침이라 아이들은 만날 수 없었지만, 또 다시 꽃들을 만납니다. 여기도 꽃, 저기도 꽃입니다. 봄이 되면, 비싼 돈들여 놀이공원이라도 가야 화사한 색색가지 꽃을 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 비해, 여기는 마치 꽃 속을 걸어다니는 기분입니다. 색색가지 꽃들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꽃들로 둘러싸인 놀이터
 꽃들로 둘러싸인 놀이터
ⓒ 이지아

관련사진보기



그러면서, 속상하지만 우리나라 골목길을 생각합니다. 봄이 왔다고 봄을 쉽게 느낄수 없고, 일년 내내 한 계절 같은 삭막한  골목길을 아무 감흥도 없이 걸어다닙니다. 대문 앞엔 음식물 쓰레기를 담는 통이 지키고 있고, 어느 동네엔 재활용품 수거 그물이 재활용품을 가득 담고 대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문에서 떨어진 광고 전단지가 뒹굴고, 누군가 제 시간에 내놓지 않아 수거해 가지 않은 쓰레기 봉투가 전봇대 아래에서 뒹굽니다. 아이들이 버린 과자 봉지가 바람에 휘날리고, 재활용하라고 놔둔건지 담장 아래엔 플라스틱 빈 음료수 병이 놓여져 있습니다.

담장 아래로 쓰레기가 보입니다.
 담장 아래로 쓰레기가 보입니다.
ⓒ 이지아

관련사진보기



대문 앞에 꽃나무를 두기엔 우리가 많이 삭막하다는 걸 압니다. 가정집이 아니라 상가 앞에 놓여져 있는 화분에도 '가져가지 마세요'라는 팻말을 쉽게 볼 수 있는 우리이니, 대문 앞에 꽃을 둔다는 건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건 욕심이라고 치더라도, 왜 사람들은 더 이상 내 집 앞을 청소하지 않을까요. 일본의 깨끗한 골목길에 감탄하면서 왜 나부터도 대문에 붙여진 광고 전단지를 그냥 못 본 척 하는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태그:#일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