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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하랑(21)씨는 중간고사 성적을 받고 울상이다.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보다 시험 준비를 더 했음에도 낮은 성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아보니 친구들은 이른바 '족보'를 구해서 공부한 것이다. 족보란 해당 수업의 전년도 기출 문제를 말한다. 이번 중간고사가 전년도와 유사하게 출제되어 족보를 참고한 학생이 더욱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이었다.

김씨는 "한 교수님이 해당과목을 오랫동안 강의를 하면 매해 시험 유형이 비슷하다. 심지어는 똑같은 문제가 출제되기도 한다"며 "이 때문에 족보없이 시험준비를 열심히 한 사람보다 족보만 구해 공부한 사람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학교 게시판에는 시험기간마다 족보 관련 글이 쇄도한다. 보통은 족보를 선배 혹은 친구에게 받는다. 이러한 인맥이 없는 학생들은 학교게시판에 족보를 부탁하는 글을 남기는 것이다. 고려대 이지웅(24)씨는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정보가 나만 없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서 시험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며 "궁여지책으로 게시판에라도 글을 남기는 것이다"고 말했다.

한 학생이 족보요청 글을 올리자 같은 류의 댓글이 달렸다. 이런 글이 시험기간 동안 약 100건이 올라왔다.
 한 학생이 족보요청 글을 올리자 같은 류의 댓글이 달렸다. 이런 글이 시험기간 동안 약 100건이 올라왔다.
ⓒ 이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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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는 뜨거운 감자

시험기간 게시판에는 족보에 대한 논쟁도 끊이지 않는다. 아이디 '11thwing'은 "누구는 족보를 잘 구해서 좋은 학점을 받는다. 학점이 누가 더 정보력이 좋은가를 평가하는 것이냐? 차라리 교수님이 족보를 올리는 것이 공평하다"고 글을 남기자, 아이디 '오엘'은 "족보를 잘 구하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며, 수업에 대한 애착이다"라고 반박했다.

서강대 유현아(23)씨는 "대학생들이 족보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한국대학의 부조리를 방증한다. 대학교는 학문의 상아탑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모인 집단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문 자체에 관심있기 보다는 점수를 어떻게 하면 잘 받을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대학이 목적성을 상실했음을 지적했다.

족보 때문에 친구 관계 금 가기도

족보가 반드시 좋은 시험성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족보의 유형과 내용에 익숙해 지다보니 새로운 문제나 유형이 출제되면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고려대 김성표(27)씨는 "오히려 족보만 믿다가 당황한 적이 있다"며 "몇 해 동안 족보의 유형대로 출제됐다는 '카더라'를 듣고 그것에 맞게 공부했는데, 실제 시험에서 그렇지 않았다"며 "차라리 족보를 안 보았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족보 때문에 친구간의 우정에 금이 가는 경우도 있다. 김하랑씨는 "친한 친구가 혼자 족보를 보고 시험을 친 것을 알게 되어 '왜 나한테 안보여 줬느냐'고 따졌더니, 친구는 '너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고 변명했다"며 "하지만 친구가 보여주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 관계가 서먹해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강대 최희정 교수는 "족보에 집착하는 것은 학생들만의 잘못만은 아니다.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근본적 원인이다"고 말했다.


태그:#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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