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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과 이명박, 이쯤 되면 운명의 장난? 

 

[장면1] 2007년 12월 19일,  당선이 확정된 후 이명박 대통령(당시 당선자)은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청계광장을 찾았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최대의 발판이었다. 한나라당 당원들과 이명박 지지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명박'을 연호하던 그 날 밤, 청계광장은 오로지 '이명박을 위한' 장소였다.

 

[장면 2] 2008년 5월 2일,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그리고 그가 대통령으로서 첫 출발을 다짐했던 청계광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이 날 청계광장의 주인은 작년 12월, 이 곳에서 기쁨을 만끽하던 이명박 당선자와 지지자들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성난 시민들의 분출구가 되었다. 이번 집회에서는 쇠고기 문제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오후 5시 이후부터 청계광장에는 하나 둘씩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집회 시작 시간인 오후 7시가 되자 청계광장 일대에는 퇴근길 직장인들까지 합세하여 순식간에 1만여 명 이상이 운집하였다. 시민들은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미친 소는 청와대로!' '대한민국 할 수 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 중간에 '쇠고기 재협상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정부의 방침이 전해지자, 구호는 순식간에 '이명박 탄핵'으로 바뀌었다. 특히 시민들은 그동안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대해 정부의 의견을 옹호해 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옥을 향해 '불 꺼라' '각성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뿔 난' 국민들, '불 난' 청계천 -  그 속에서 움튼 민주주의의 싹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청소년들의 활발한 참여였다. 교복 차림으로 혼자서 집회에 참석한 정나림 (17·경기도 의정부) 양은 "인터넷을 보고 가족과 친구들의 건강이 걱정돼서 시험기간인데도 (집회에) 왔다"고 밝혔다. 

 

집회가 무르익자 파이낸스센터 앞에서는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여기서도 청소년들의 발언이 두드러졌다. "이명박과 그 친구들이 하는 일이 너무 웃겨서 요즘엔 개그 프로그램을 안 보게 됐다"는 비아냥거림에서, "군대 간 형이 광우병 쇠고기를 먹게 될까봐 두렵다"는 눈물어린 호소에 이르기까지 청소년들은 그동안 자신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정치적 발언권을 마음껏 토해냈다.

 

폭력사태로 번질 것을 대비해 전경 5개 중대가 투입되었으나 밤 10시를 기해 시민들이 대부분 귀가하면서 집회는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우려와 달리 집회 현장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질서의식으로 집회가 아닌 '축제'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네티즌들이 주축이 된 자원봉사자들은 양초와 종이컵을 나누어 주고, 시민들의 동선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고등학생·대학생, 그리고 "이 나라는 게임 속 킹덤(kingdom·왕국)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게임 개발자까지 누구에게나 발언권이 주어졌다. 시민들은 구호를 함께 외치거나 "옳소!"같은 추임새를 넣어주며 발언자와 뜻을 함께 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나, 구한 말 만민공동회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장면이었다.

 

손수 피켓을 제작해 온 시민들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고 아무개씨는 "평소에도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광우병 쇠고기 보도를 보고 요즘엔 불안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부모님 두 분 모두 교사이신데 학교 급식에 미국산 쇠고기가 쓰일 생각을 하면 너무 걱정이 된다" 며 손수 제작한 가면을 쓰고 청계광장으로 나왔다.

 

집회가 끝난 이후에도 시민들은 남은 쓰레기들을 스스로 청소하며 끝까지 질서의식을 잃지 않았다.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던 엘리사(27·미국)씨는 "미국인들과는 달리 정치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한국인의 모습이 놀랍다"면서 집회를 본 소감을 'beautiful democracy(아름다운 민주주의)'라고 표현했다.

 

 

이번 집회를 주최한 다음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http://cafe.daum.net/antimb)의 총무 박은주(35·경기도 수원)씨는 "오늘 집회에 든 모든 비용은 카페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이뤄졌다. 1천원, 2천원, 3천원…학생들이 보낸 것으로 생각되는 적은 액수의 후원액이 십시일반 모이는 것을 볼 때마다 감사하다"고 밝혔다.

 

또 "5천명 미만, 많아야 1만 명 정도가 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참여도가 기대 이상이었다. 국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국민의 소리를 듣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고 덧붙였다.

 

총 2만여 명이 운집한 이 날 집회는, 같은 장소에서 3일 다음 카페 '정책반대 시위연대' (http://cafe.daum.net/OurKorea)가 주최하는 촛불 집회로 다시 한 번 이어질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 아고라 / "모이다"란 어원으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중심에 위치한 정치적 토론 광장을 의미한다. 
● 만민공동회/ 1898년 독립협회가 정부의 비자주적 외교에 반발하여 일으킨 집회, 모든 계층의 참여를 허용한 대중집회였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미국산쇠고기#청계천#광우병#이명박#촛불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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