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납치에 관한 영화 <테이큰>

 

영화 <테이큰>의 포스터 호쾌한 액션 영화

▲ 영화 <테이큰>의 포스터 호쾌한 액션 영화 ⓒ 와이즈앤와이드 엔터테인먼트

영화 <테이큰>을 봤다. 전직 특수요원의 딸이 납치되자, 그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직접 찾는다는 진부한 스토리의 영화 <테이큰>.

 

사실 유괴나 납치 등은 영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다. 범인이 무력한 희생자를 납치한 뒤 그 희생자의 가족이나 경찰이 범인과 협상하거나 추격하는 이야기의 구조는 그 자체만으로도 스릴 있고, 선과 악의 대립을 분명하게 함으로써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쉽게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은 그 소재의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위 영화가 몇 주 동안 박스오피스 1등을 유지하자 모두 비슷한 평을 내놓기 시작했다. 요즘 사회 이슈 중 하나가 잦아지는 유괴, 납치 등의 범죄인데 때마침 영화 내용이 이와 관련되어 있어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록 영화 <테이큰>의 인기가 4월 비수기, 소문만 무성했던 흥행 기대작 <GP506>, <삼국지: 용의 부활> 등에 대한 실망의 결과라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어쨌든 영화 <테이큰>이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유괴·납치 등의 범죄와 맞물려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괴와 납치 등의 범죄 행위가 양극화의 심화 그리고 싸이코패스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서부터, 아동 유괴·납치범에게는 최고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가칭 혜진·예슬법을 만들어 법의 준엄함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까지, 분분한 논란 속에 위 영화는 우연찮게 그 한가운데를 차지하여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과연 영화는 유괴·납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물론 소재만 유괴·납치일 뿐인 흔하디흔한 액션영화일테지만 우리가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전혀 없을까?

 

내 딸은 내가 구한다?  

 

딸을 구하려는 전직 특수요원 아버지 공권력을 믿을 수 없는 개인의 도전

▲ 딸을 구하려는 전직 특수요원 아버지 공권력을 믿을 수 없는 개인의 도전 ⓒ 와이즈앤와이드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역시 예상대로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액션물이었다. 리암 니슨 등 비록 화려한 캐스팅은 아니었지만 영화는 뤽 베송이라는 명성이 괜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시종일관 스피디하고 긴박하게 전개되었고, 그 빠른 장면 전환 앞에서 나는 어떤 다른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아무리 전직 특수요원이라고는 하지만 혼자 그 많은 악당들을 해치우는 것이 과연 말이나 되는 것인지, 진짜 요즘 파리에서는 영화에서처럼 인신매매와 성매매가 성행하는지 등 그 모든 질문들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이상하게도 영화 <테이큰>은 웃고 즐기는 단순한 액션오락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영화 외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 중 무엇보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영화 초반부터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아느냐며 우리네 부모님 같이 후줄근한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정작 딸이 납치된 이후에는 그 어느 특수요원보다도 민첩하게 딸을 찾아 나서는 주인공.

 

그것은 '위험에 처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부모'의 전형으로서 영화의 핵심 얼개였지만, 동시에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비록 아버지가 특수요원이긴 하지만 딸자식의 납치를 알게 된 이후 모든 공권력을 제쳐두고 자신이 직접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유쾌하지 못한 진실의 이면이었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공권력의 치안능력을 믿지 못해 각자 스스로 자구책을 구하는 현실. 결국 그것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공적 사회를 반영한다. 영화에서 보듯이 현재 국민국가의 비대해진 경찰 조직은 구성원들 각각을 위한 민생치안보다 거시적이고 정치적인 시국치안을 챙기기에 급급하며, 자신들의 탐욕에 충실한 것도 일면 사실이다. 

 

물론 우리의 현실이 그 정도이겠느냐만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공권력을 믿느니 차라리 내가 나서는 게 낫다'라는 영화의 이야기가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범인을 잡을 거면서 그동안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거나, 온갖 흉악한 범죄가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정작 '백골단' 부활에 정력을 쏟고 있는 데서 보듯 경찰은 그동안 불신을 자초해 왔기 때문이다.

    

영화가 현실에 대한 카타르시스라면 영화 <테이큰>은 신뢰를 잃어버린 공권력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경찰을 믿느니 차라리 당신이 특수요원이 되어 납치된 딸을 찾는 것이 더욱 빠르다'라는 냉소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인 것이다.

 

영화 속 이주민에 대한 편견

 

낭만의 도시 파리 여행객의 도시 파리

▲ 낭만의 도시 파리 여행객의 도시 파리 ⓒ 와이즈앤와이드 엔터테인먼트

앞서 지적했듯이 영화 <테이큰>은 단순 액션 오락물이다. 영화는 계몽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며, 단순히 즐기기를 권장한다. 따라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기보다 이미 정설로 굳어져 있는 선입관에 기대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골치 아픈 고민들을 던지는 것보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마냥 웃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기에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화 <테이큰>에는 프랑스에 대한 편견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투박하고 안전하며 살기 좋은 미국과 달리 영화 속의 프랑스는 동아시아 구석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그 진위를 의심할 정도로 매우 음험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첫 섹스를 하기 좋은 도시, 파리'라는 여배우의 대사는 프랑스 파리에 대한 고전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영화 속 파리는 낭만은 고사하고 벌건 대낮에 납치가 버젓이 일어나고, 부패한 공권력을 등에 업은 채 인신매매가 만연한, 음탕하고 위험한 도시일 뿐이다.

 

인신매매 당한 여성들이 환각제 등을 투여당한 채 몸을 팔아도 그대로 방치되는 공간. 파리가 실제로 이와 같다면 17살 된 딸이 파리로 배낭여행을 떠나고자 할 때 저지하고 나선 주인공의 행위는 정당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낭만의 도시 파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을까? 영화는 이를 동유럽 이주민들 탓으로 돌린다. 결국 동유럽 이민자들이 늘어감에 따라 파리가 위험한 곳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끼리끼리 모여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를 쓰며, 인신매매와 마약판매 등을 통해 파리의 뒷골목을 주름잡는 그들.

 

물론 그들의 대한 묘사가 반은 진실, 반은 거짓일 테지만 이와 같은 편견을 영상에 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결국 영화를 통해 동유럽 이주민들을 나쁘게 보는 인식이 확대재생산 될 것이며, 오히려 이를 통해 영화에 들어있는 그릇된 편견이 현실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미디어의 힘이며, 편견이 두려운 이유 아니던가.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확대재생산. 영화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거리 하나를 던진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이민족에 대한 편견은 이젠 결코 남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제3국 노동자의 증가와 함께 급속도로 다민족화 되어가고 있지만 그에 따른 제도나 인식을 정비하지 않은 상황이다. 또 단일민족의 신화가 강해 그 어느 곳보다 타민족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따라서 영화와 같은 현실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아직까지 영화 <테이큰>은 순항 중이라 한다. 많은 이들이 현실의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보는 단순 액션 영화이지만, 그 속에서 점점 답답해지는 우리 사회의 단면도 발견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30 09:3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테이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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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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