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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개원을 했으니 어느덧 38년입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점잖게 생긴 노신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부평로 부평서초등학교 입구에서 38년째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임소아과' 임남재 원장(70)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부평을 떠난 적이 없는 부평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함경도 원산이 고향인 임남재 선생은 1948년 인천에 정착해, 57년 인천고를 졸업하고 6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과 동시에 71년 2월 지금 자리에 소아과를 개원 했다. 임 선생이 개원할 당시 부평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아닌 경기도 인천시 북구였다. 그때는 지금의 부평·계양·서구가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인구가 9만 정도였다.

 

"나를 포함해서 부평에만 모두 16명의 개원의가 있었어요. 당시 계양에는 의사가 없어 무의촌이라 불렀습니다. 소아과가 하나 밖에 없다보니 부평뿐 아니라, 계양, 서구 심지어는 강화, 부천에서도 찾아왔어요. 지금은 생활수준과 위생과 영양상태 등이 나아지고, 예방접종 확대 실시 등 의료혜택 범위가 넓어져 전염성 소아질환이 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태어나서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임 선생의 회고는 더 이어졌다.

 

"봄 되면 홍역이 훑고 지나가고, 여름이면 장티푸스, 콜레라, 가을에는 또 무슨 바이러스 해서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대부분의 가정집에서는 갓난아기를 병원에 데려가기를 꺼려하던 때라 다급한 상황이 많았습니다. 저녁이 돼도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오밤중에도 아이를 업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의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환자를 돌보는 일이라 돌려보낼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도 부평과 계양에서 태어나 현재 불혹을 넘긴 사람 중 임소아과를 안 거친 이가 있을까? 적어도 70년대 초 어린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던 이들은 임소아과를 기억한다. 부평만 해도 서초등학교, 동초등학교, 산곡초등학교 등 몇 학교 안 되던 시절, 임남재 선생은 아파서 병원을 찾던 아이들을 어루만졌다. 그 아이들이 커서 이제는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을 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

 

병원을 찾는 부모들에게 임 선생이 잊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아이가 어디가 아파서 그런 것이니 이렇게 하면 되고, 아픈 것은 무엇 때문이다"라는 말과 함께 임 선생이 덧붙이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의사로서 전하는 진찰과 예방에 관한 것뿐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겪게 될 일들과 그때그때 부모로서 해야 할 일 등을 일러주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지금 부평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의료기관이 많다. 예나 지금이나 빈부격차로 인한 의료혜택의 차이는 있으나, 분명한 것은 의료기관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를 계기로 임 선생은 몇 년 뒤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도 갖고 있다.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후원회장과 인천적십자사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후배 의료인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이제 다른 일을 해볼까 합니다. 우리 후배 의료인들이 의사가 된 이상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랍니다"라며 "사심을 앞세우게 되면 참된 의료행위는 멀어지게 되니 의사로서 환자들이 안심하고 진료 받을 수 있는 분위를 만들어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선배의료인답게 지금의 의료계의 현실에 대해서도 임 선생은 걱정이 많다. 그는 의료의 주요 분야라 할 수 있는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에 지원하는 후배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국가의 심각한 위기라고 진단한다. 이 분야의 일이 다른 분야의 일에 비해 힘든데다 같은 의료계 내에서는 소득격차도 발생해 지원자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임 선생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가장 핵심은 의료보장입니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한 것이지요. 한편에서는 주요 의료분야에 지원자가 사라지는 기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지라 대책마련이 시급합니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함경도 원산이 고향인지라 임 선생은 북녘에도 관심이 많다. 의사를 그만두면 해외 봉사활동을 마음먹고 있긴 하지만 임 선생의 가장 큰 소원은 북과의 의술 교류다. 북측의 적십자사와 몇 번 회담을 하기도 했다. 남측의 의술과 의료장비를 북녘에 전하고자 하는 그의 바람은 아직 성사되지 못했다. 정부가 바뀌어 더욱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임 선생은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원산을 떠나 인천에 정착해 묵묵히 부평의 아픈 아이들에게 건강과 웃음을 찾아준 점잖은 한 노신사의 가장 큰 바람이 이뤄질 날을 기다려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30년 부평지킴이 , #임남재 원장, #임소아과, #의사, #부평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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