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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나주시민 2천여 명이 정부의 '혁신도시 재검토' 를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했다.
 지난 22일 나주시민 2천여 명이 정부의 '혁신도시 재검토' 를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했다.
ⓒ 나주사랑시민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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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지방 살리려 노력했는데 이명박은 자기가 했던 약속도 뭉개버린다"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만난 전남 나주 주민들은 혁신도시의 'ㅎ'자만 나와도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벌써부터 "구관이 명관"이라면서 새로운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가득한 말들을 멈추지 않았다. 혁신도시 재검토 논란은 배꽃처럼 순한 전남 나주 사람들을 이처럼 투사로 만들어가고 있다.

임채권(49)씨는 전남 나주시 금천면 광암리에 살고 있다. 임씨는 "요즘 열불 나서 못살겠다"고 입을 열었다.

"배 농사를 지으며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데 혁신도시 건설 예정지라며 느닷없이 나가라고 해서 막막했지만 '주민들이 조금만 희생하면 지역이 발전된다'기에 보상에 합의해줬는데 이제 와서 재검토하겠다니 어처구니없고 황당하다."

임씨는 "마을 사랑방에 모여서 주민들이 하는 말이 '구관이 명관'이라며 '노무현은 그래도 지방 살리려고 노력했는데 이명박은 자기가 했던 약속도 선거 끝나자마자 뭉개버린다'고 뭐라 한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김 아무개(36)씨의 처지는 더욱 답답한 상황. 김씨는 세입자여서 특별한 보상금은 없고 이사비만 받게 돼있다. 하지만 김씨는 "혁신도시 재검토 논란으로 이사 가고 싶어도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한숨을 쉬었다. "혁신도시가 제대로 추진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관계 당국 업무가 마비돼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막막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느냐"며 "주민들이 이명박 정부 하는 일이 마을 반상회만도 못하다고 비꼰다"고 쓰게 웃었다. 7년 동안 금천면에서 세입자로 살아온 김씨는 "이사비도 못 받고 살던 집을 떠나야할지 말아야 할지 누가 시원하게 말 좀 해주면 좋겠다"고 정부당국에 책임있는 답변을 요구했다.

나주 혁신도시는 광주와 전남이 공동으로 신청해서 유치한 곳으로, 건설예정지는 나주시 금천면과 산포면 일대다. 편입예정지역엔 480여 가구 약 16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4월 25일 현재 보상완료율은 95%로 약 3천6백억 원이 토지, 주택 등 보상금으로 주민들에게 지급됐다.

"지방에서 폭동 일어나지 않도록 대통령이 직접 견해 발표하라"

박경석 주민보상대책위 정책국장은 "사기 당한 기분"이라고 잘라 말했다.

"평당 15만 원 보상받았는데 주변에 살 곳은 평당 40만 원에서 50만 원을 한다. 이 피해를 감수하면서 주민들은 지역발전시키자는 마음 하나로 협조해줬는데 없던 일처럼 하자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이 대통령이 미국 가서 쇠고기 수입해놓고 '참여정부 이어받았다'고 했는데 똑같이 묻고 싶다. 왜 쇠고기는 노무현 이어 받고 혁신도시는 이어 받지 않나? 왜 사람들이 욕하는 건 이어받고 좋아하는 건 이어받지 않나?"

박 국장은 "만약 정부가 혁신도시 추진을 이런 식으로 계속 질질 끌면 전국 혁신도시 주민보상대책위 연합회 차원에서 청와대 상경투쟁을 벌이겠다"라며 "지방에서 폭동 일어나지 않도록 대통령이 직접 견해를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혁신도시 예정지 주민들의 반발은 물론 나주지역 시민들의 반발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난 22일엔 시민 2천여 명이 나주시내에 모여 '혁신도시 건설 촉구를 위한 나주시민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결의대회를 주최한 곳은 '혁신도시 건설 나주시민대책위'. 이 대책 위엔 진보와 보수진영을 막론하고 100여 개 나주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안희만 나주사랑시민회 상임대표는 "한마디로 미쳤다"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안 대표는 "정부 정책은 연속성과 지속성이 핵심인데 이명박 정부는 그건 다 없애버리고  혁신도시 재검토·쇠고기 수입·학교자율화 등 자신들의 코드에 맞는 정책만을 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안 대표는 "자족력을 잃어가고 있는 지방에 그나마 희망을 주자고 추진한 정책이 혁신도시 건설이었다"며 "이 희망이 물거품 되려고 하니 어떤 시민이 분노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안 대표는 향후 투쟁방향과 관련해 "광주전남 결의대회와 서울에서 전국 혁신도시 예정지 주민결의대회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새 정부가 국민의 저항에 부딪치는 불행이 없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나주시의회 김성재, 김종운, 김세곤 의원. 김성재, 김종운 의원은 삭발까지 마다않고 '혁신도시 재검토 무효화'를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나주시의회 김성재, 김종운, 김세곤 의원. 김성재, 김종운 의원은 삭발까지 마다않고 '혁신도시 재검토 무효화'를 요구하고 있다.
ⓒ 나주시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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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의회 의원들, 삭발하고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

나주시의회의 반발도 거세다. 김성재·김종운 의원은 '혁신도시 재검토 백지화'를 요구하며 지난 22일 결의대회에서 삭발을 했다. 두 의원은 곧바로 서울로 상경해 청와대 앞에서 김세곤 의원과 함께 아침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성재 의원은 26일 <오마이뉴스>와 전화 인터뷰를 하고 "총선이 끝나자마자 '혁신도시를 재검토한다', '공기업 민영화한다'는 것은 국민적 토론과 합의를 거친 지방과 수도권의 함께 살기정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우리 지역에 혁신도시 들어온다고 해서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도 내놓고, 심지어 몇 백년 동안 모셔온  조상 묘까지 옮겼는데 재검토라니 이치에 맞지 않다"며 재검토 백지화를 정부에 요구했다.

김 의원은 "이달 말까지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계획하고 왔는데 정부 방침이 변화하지 않으면 (1인 시위를) 더 연장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정권 바뀐다고 정책을 마구 바꿔버리면 현 정부 정책도 다음 정부에서 뒤집어질 것"이라며 "이런 국가적 손해와 국민들의 신뢰를 깨는 일은 더 이상 없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혁신도시 재검토 논란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어떤 방침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태그:#혁신도시,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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