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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경리가 쓰러졌다.
▲ 작가 박경리 작가 박경리가 쓰러졌다.
ⓒ 나남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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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나는 <토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지겨웠고 부담스런 짐을 부리고 싶었다. 심지어 <토지문화관>에 관해서도 소설과는 무관하며 '토지공사'에서 지었으니 토지라, 신경질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또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어느 특정한 작가의 몫이 전혀 아니며 예술가, 학문하는 분들이 활용하는, 다만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그해, 그러니까 토지를 끝낸 1994년 8월 15일, 그때도 나는 해방감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멍청히 앉아있었다. 방향조차 잡을 수 없었고 막막했던 길 위에서, 폭풍이 몰고 간 세월이 끔찍하여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토지>의 운명도 기구했다. 25년 동안 여러 지면(紙面)을 전전했고 4부까지 출간되었으나 3년 동안 출판정지, 절필한 일이 있었다.

완간이 된 뒤에도 출판계약이 끝나면서 3년간 책을 내지 않고 절판상태를 애써 외면했다. 작품이 나간 이상 독자에게는 읽을 권리가 있고 이미 작가 손에서 떠난 거라며, 꾸지람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구세대에 속하고 편협한 나로서는 문학작품이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오늘의 후세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 2002년판 <토지> 서문

<토지>가 쓰러졌다. 한국문학이 쓰러졌다. 대하소설 <토지>(21권)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지난 4일 뇌졸중과 지병악화로 원주에서 쓰러져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다. 박 선생은 폐종양에다 오른쪽 하반신 마비에 따른 뇌졸중 증세로 이 병원에서 중환자실과 집중치료실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  

박 선생은 지난 23일 밤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의식불명 상태가 돼 고비를 맞기도 했으나 겨우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가족의 요청으로 면회가 가능한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인공호흡기로 숨을 이어가고 있다.

박 선생은 지난해 7월께 폐에서 종양이 발견됐으나 스스로 치료를 거부한 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요양하며 지내다 병세가 악화됐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독한 상황임에도 일반병실로 옮긴 것은 마지막을 함께 하고자 하는 가족의 바람에 따른 것"이라며 "지금 환자의 상태는 고령의 나이에다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여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박 선생은 최근 월간 <현대문학> 4월호에 '까치 설', '어머니', '옛날의 그 집' 등 신작시 3편을 8여년 만에 발표하며, 새로운 작품 창작에 의욕을 보여왔다.

21권으로 완간된 토지
▲ 토지 21권으로 완간된 토지
ⓒ 나남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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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가 쓰러졌다, 한국문학이 쓰러졌다

한국문단은 초상집 분위기에 휩싸였다.

비보를 접한 문단 한 관계자는 "안타깝다, 박 선생이 어서 쾌차해 <토지>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토지>는 그동안 우리 문학을 대표한 작품임에도 방대한 규모, 다의적인 서사 구조 등의 이유로 본격적인 연구가 드물었다"며 "박 선생이 어서 일어나 <토지> 연구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안쓰러워했다.

언론인이자 시인 윤재걸(61)씨는 "<토지>는 펄벅의 <대지>와 더불어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며 "우리나라에 박경리와 같은 뛰어난 작가가 있다는 것만 해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뭇 생명을 키워내는 저 토지처럼 박 선생이 어서 일어나 우리 문학의 토지를 다시 일궈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토지>는 1897년에서 1945년까지 약 50여 년에 이르는 우리 민족의 삶을 총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박경리 선생은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만주와 일본 동경까지, 700여명에 달하는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 역사를 차근차근 복원해내는 한편 판소리, 설화, 민요 등을 통해 우리 문학의 전통의 맥을 이어나가고자 했다. 

나는 <토지>를 읽으면서 박경리 선생이 '대지의 어머니'라고 믿었다. 박 선생은 뭇 생명을 길러내는 저 토지처럼 영원히 우리 문학의 어머니로 살 것이라 여겼다. 박 선생이 내 고향 창원과 가까운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같이 식사를 하거나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박 선생의 강연이 있으면 달려가 그저 먼발치에서 선생의 강연을 들었다. 선생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아니 선생의 목소리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것만 같았다. 선생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서 또 한 권의 <토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 토지 속에 글쓴이가 연초록빛 문학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일제시대를 20년 간 살아온 나는 그 시대의 실상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핍박과 억압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우리의 것을 지키려 했고 잃은 강산을 찾으려고 저항했던 그 시절, 잊을 수 없다"던 박경리 선생. 선생의 말 속에는 우리의 역사를 소설에 그려냄으로써 우리 민족혼을 지키고자 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박 선생은 <토지>에 대한 강연에서 "단순히 그 시절을 전하기 위해, 일깨우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 박은 바 있다. 또 "인류와 이 세상에 생을 받아 나온 모든 생명들의 삶의 부조리, 그것에 대응하여 살아남는 모습, 존재의 본질적 추구를 같이 생각해 보자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최참판댁
▲ 경남 하동 평사리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최참판댁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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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금자탑 <토지>, 21권이 완성되기 까지

박 선생은 1926년 10월 28일(음력) 초저녁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띠는 호랑이. 박 선생은 몇 해 전 독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사주에 대해 "초저녁은 호랑이가 한창 먹잇감을 찾으러 다닐 때여서 기가 센 사주"라며 "팔자대로 살았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선생은 한국전쟁 때 남편과 아들까지 잃었다. 선생의 딸(60)도 남편(시인 김지하) 옥바라지로 큰 고통을 치렀다.

박 선생은 대하소설 <토지>를 무려 26여 년 동안 썼다. <토지>는 1969년 9월 <현대문학>에 처음 연재된 뒤 1972년 10월 <문학사상>, 1977년 1월 <주부생활>, 1981년 9월 <마당>, 1983년 7월 <정경문화>, 1987년 <월간 경향>, 1992년 9월 <문화일보>로 지면을 옮겨가며 모두 5부 21권으로 완성됐다.

<토지>는 1973년 <문학사상사>에서 단행본으로 처음 나온 뒤 삼성출판사, 지식산업사, 학원출판공사 등 10여 차례에 걸쳐 판본이 바뀌었다. 1994년에는 솔출판사(대표 임우기)에서 이 책이 새롭게 나왔으나 1998년 솔출판사가 출판권을 반납하면서 3~4년 동안 절판되기도 했다. 그 뒤 나남출판사(2002년 1월)가 <토지>의 판형을 바꿔 펴낸 뒤 지난 3년 동안 100만부 가량 팔렸다.

작가 박경리는 1955년 <현대문학>에 작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57년에는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했으며, 1962년에는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波市) 등 사회와 현실 비판이 강한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 1994년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土地)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의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로 번역돼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받았으며,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에 뽑혔다.

문학평론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는 "박경리는 해방 이후 한국의 소설 세계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라며 "박경리의 문화사적 위치는 그녀가 발표해 온 많은 문학작품과 더불어 독특한 생명주의적, 정신주의적 신념에 의거해서 오랫동안 강원도 원주에 칩거, 몸소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해 온 사실에 의해서 확보되어 온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대하소설 <토지>는 지난 2004년 11월 27일부터 2005년 5월 22일까지 SBS (이종한 연출, 이홍구, 김명호, 이혜선 극본)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한국문학의 금자탑 <토지>를 완간한 박경리 선생. 박 선생이 <토지> 서문에 쓴 글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면서 선생의 빠른 쾌차를 빈다.

<토지>는 어떤 책?
<토지> 제1부(1,2,3,4권)는 1897년 한가위부터 1908년까지 약 10년 동안 경남 하동의 평사리를 무대로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최참판댁과 소작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2부(5,6,7,8권)는 1910년부터 7∼8년 동안 간도에 정착한 최서희 일행의 이야기를, 제3부(9.10.11,12권)는 서희 일행이 간도에서 귀국한 다음 해인 1919년 가을부터 1929년 광주학생운동까지 10년여의 세월을 다루고 있다.

제4부(13,14,15,16권)는 1929년의 원산 노동자 파업에서부터 만주사변, 남경대학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상황이 지식인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증언되면서 1930년대 일제의 폭압과 혼란상이 여러 인물들의 삶을 통해 펼쳐진다.

마지막 제5부는(17,18,19,20,21권) 1940년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억압을 견뎌내야 했던 우리 민족의 한 맺힌 삶을 다루었다.

"상인과 작가의 차이는 무엇이며 기술자와 작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차이가 없다면 결국 문학은 죽어갈 수밖에 없다. 의미를 상실한 문학, 맹목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삶,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책이 다시 나가게 되니 마음이 석연찮다. 자기연민이랄까, 자조적이며 투항한 패잔병 같은 비애를 느낀다.

나는 왜 작가가 되었을까. 얼마 전에 하동 평사리에 최참판댁을 복원해놓고 <토지문학제>라는 행사가 있었다. 허리를 다쳐 운신이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뒷전이 내 편안한 자리로 늘 치부했던 숫기 없는 기질 탓도 있어 잔치에 참가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딸아이의 부축을 받으며 하동으로 내려갔다."


태그:#박경리,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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