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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 3필이 배를 끌고가는 모습.
 노새 3필이 배를 끌고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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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와 다를 바 없는 폐쇄된 운하
 습지와 다를 바 없는 폐쇄된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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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박물관에서 본 '노새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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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장의 흑백사진이 있다. 추억의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는 100여년 전 미국 오하이오-이리운하의 한 장면이다. 채찍을 든 마부가 노새 세 필을 끌고가고 있다. 자세히 보면 노새와 운하에 떠 있는 배가 밧줄로 연결돼 있다. 말 1마리가 최대 4마력의 힘을 낸다고 하니, 당시 운하를 오갔던 바지선들은 12마력 정도의 엔진을 장착한 셈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아래쪽에 위치한 쿠야호가 계곡(Cuyahoga Vally) 국립공원은 관광명소이다. 연간 300만명이 이 곳을 찾는다. 지난해에 미국 390여개의 국립공원 중 9번째로 많은 관광객이 몰렸다고 한다. 이 곳의 대표적 명물은 오하이오-이리 운하길(Canalway)이다. 국내의 운하 찬성론자들이 이 말을 들으면 '관광운하'의 모델쯤으로 여기면서 반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곳이 관광명소가 된 것은 '살아있는 운하'가 아니라 '죽은 운하'를 보기 위해서다. '친환경 운하'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썩은 물이 흐르는 운하를 사실상 폐쇄한 뒤에야 비로소 되살아나고 있는 자연 생태 환경을 보기 위해서다.    

오하이오-이리운하는 '관광운하'의 모델?

왼쪽은 운하, 오른쪽은 쿠야호가 강
 왼쪽은 운하, 오른쪽은 쿠야호가 강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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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6일, 박진섭 생태지평 부소장과 기자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윌리엄 미치 교수를 인터뷰한 뒤 3시간을 차로 달려 클리브랜드에서 하루 밤을 묵은 뒤에 이 곳을 찾았다.

"이 운하는 1825년에 착공해 1848년에 완공됐습니다. 1913년까지 이용했죠.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농산물과 목재·돌 등을 운반하는 데 쓰였는데, 1913년 큰 홍수로 무너지고 난 뒤에는 그대로 놔뒀습니다. 지금은 폐쇄된 상태죠. 철도나 다른 대체 운송 수단이 있는 데 굳이 재건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공원관리공단에서 토지매매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다는 데니스 햄의 말이다. '관광 운하'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유람선이라도 탈 요량으로 방문했는데, 처음부터 낭패였다. 고속도로에서 잠깐 과속을 하는 바람에 벌금까지 물어가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인가는 건져야겠기에 '국립공원 서비스본부'에서 그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공원관리공단 데니스 햄씨
 공원관리공단 데니스 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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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은 언제 공원화됐는가.
"74년이다. 자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다시 재건하기 시작해 국립공원화 작업을 시작했다."

- 운하는 왜 만들었나.
"오하이오강과 미시시피강을 연결해 목재와 돌 같은 것들을 운반하기 위해서다. 인근에 있는 쿠야호가 강의 여러군데를 막아서 그 물을 인공 운하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 운하의 물은 깨끗한가.
"환경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이 곳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댐으로 인근 강을 막으니, 그 강 수질이 나빠졌고, 깨끗하지 않은 물을 끌어다 사용하니 운하의 물도 나빴다.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질은 아니다. 레크리에이션을 권장하지도 않는다.

현재 운하에 배는 다니지 않지만, 일부 구간의 경우 물을 원래 방식대로 공급하고 있다. 오하이오주는 수질개선을 위해 댐을 없애려고 하지만, 운하의 역사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물을 계속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왜 강을 이용하지 않고 운하를 판 것인가.
"강에는 장애물이 많고, 수심이 수시로 변할 수 있다. 노새가 배를 끌고가는 운하인데 나무와 바위가 많아 일정하게 길을 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강을 따라 운하를 팠다."

- 그럼 왜 운하를 공원으로 만들었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운하 역사관'같은 것이다. 교육적 목적 때문이다. 이곳에 운하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하려고 하는 것이다. 산책로로도 많이 이용된다."

- 땅을 구입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는데, 왜 땅을 구입하는가.
"충분한 공원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사유지를 사서 오래된 건물은 보존하고, 현대식 건물은 없애버린다."

- 가령 역사박물관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가.
"그렇다."

방문자 센터에 걸려있는 운하 모형
 방문자 센터에 걸려있는 운하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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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이리 운하길은 지난 2006년 미 상원에 의해 27개 '국가 역사지역'의 하나로 지정됐다. 뉴필라델피아 북쪽에 위치한 클리브랜드의 이리호에서 오하이오 남쪽까지 175㎞. 이 운하는 4개의 카운티와 48개의 마을을 지난다.

"오하이오-이리 운하는 미국 경제개발의 상징이다."

햄이 건네준 국립공원 홍보물의 한 구절이다. 운하운송 시스템은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뒤 미국 경제를 대체했던 목화산업과 농업 등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햄의 말대로 지금 이곳의 운하는 한 때 찬란했던 물길을 보여주는 '역사박물관'에 불과했다. 그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운하를 따라 철길이 나 있었다.

'죽은 운하' 투어에 나서다

그와 헤어진 뒤 우리 일행은 공원 투어에 나섰다. 공원을 왕복하는 기차역인 '브렉빌 역'(Breckville Station)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운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과거 노새가 배를 끌고 다녔던 길이다. 길 옆의 아름드리 나무 위에서는 어제 쌓였던 눈이 녹아 비오듯하고, 눈쌓인 비포장 길에는 동물 발자욱과 사람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다. 숨을 깊게 들이쉬니 금세 온몸이 신선한 공기가 가득찼다.  

그의 말처럼 이 곳의 운하에는 배가 다니지 않았다. 배 대신 청둥오리가 쌍을 이뤄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곳곳에 쓰러진 나무들. 운하를 가로질러 물길을 막고 있는 나무들은 이 곳이 폐쇄된 운하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운하 길 곳곳에는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는 팻말이 붙어있다. 노새가 배를 끄는 장면 밑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주석처럼 붙어있다. 소위 야외 역사교육의 현장인 셈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운하의 깊이는 대체로 '무릎 수심'. 폭은 30~35m쯤 돼 보였다. 바로 옆쪽의 쿠야호가 강은 거칠게 흘렀다. 하지만 운하의 물은 거의 정지된 듯 했다. 10여분 걸어가니 강에서 운하에 물을 대는 데 사용되는 조그마한 갑문(Pinery Dam and Gate)이 보였다. 갑문의 폭은 2m남짓. 여기에도 어김없이 갑문의 쓰임새가 적힌 팻말이 서 있다.  

그나마 이곳은 운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1시간여동안 눈 덮인 운하 길을 걷다가 다시 돌아와 반대편으로 가니 물길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무와 풀로 뒤덮여 있어서 습지와 다를 바 없었다.

운하와 강 투어를 위해 마련된 철도.
 운하와 강 투어를 위해 마련된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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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번 갑문
 39번 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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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 방문자센터에서 목격한 '미국운하의 현재'

우리 일행은 질척해진 신발을 이끌고 '운하 방문자 센터'(Canal Visitor Center)로 향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방문자센터 앞쪽에 위치한 39번 갑문. 폭 3m, 길이 30m 정도되는 나무 갑문의 안쪽은 꽁꽁 얼었다. 운하를 통행하는 배들은 이곳에서 1~2m 정도 수직상승하거나 하강한 뒤에 계속 제 갈길을 갔을 것이다.

나중에 센터 안쪽의 동영상을 보고 안 사실인데 이 갑문은 수동이다. 갑문을 열려면 핸들같은 것을 사람이 마구 돌려야 한다. 또 배가 갑문 안쪽으로 들어오면 갈고리같이 생긴 도구를 이용해 사람이 배를 끌고 갑문을 통과해야 한다.       

방문자 센터는 흰색 2층 건물이다. 1층에 놓여있는 낡은 가죽 사진첩과 액자에는 1800년대의 '운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09마일의 거리를 80시간에 운행한다는 광고전단지도 눈에 띄었다. 오하이오-이리 운하가 40여개의 갑문을 거쳐 395피트의 고도차를 극복하는 모형도 만들어져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벽면 위쪽에 연도별로 운하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보여주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령 '1825년'이라고 적힌 글씨 위에는 운하에 정박한 배에 짐을 싣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1880년'에는 커다란 기차가 운하를 대체하고, '1900년'에는 텅빈 운하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한가롭게 다니고 있다. 이 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74년'에는 자전거에 아이들을 싣고 운하 주변을 다니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담겨있다. 미국운하의 과거와 현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연대기다.

이 운하 '역사 박물관'을 나오면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한반도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운하가 만들어지면 물류혁명을 통해 제2의 국운융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2100km에 달하는 남쪽운하 구간 곳곳에 내륙항이 생기면 지역 경제가 되살아나고, 각 지역의 효자 관광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미국 오하이오-이리 운하는 100년전에 그 수명을 다해 사실상 폐기처분됐다. 반면 1세기가 지난 지금 '역사박물관'에 들어간 운하를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인 양 외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심하게 표현하면 노새를 끌고 선진국의 문턱을 넘자고 외치는 꼴이다.

'운하 찬성론자', 선진국의 운하를 보고 배워라

미국은 폐기처분된 운하를 신주단지 모시듯 유물로 보존하기 위해 수많은 돈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한강과 낙동강 등 4대강 유역에 산재한 수많은 선사시대 유적들을 수장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실용주의 경제일까?

"선진국의 운하를 봐라."

운하 찬성론자들이 논리적 반론에 말문이 막히면 항상 해왔던 말이다. 하지만 정작 선진국의 운하를 봐야할 사람은 운하 찬성론자들이라는 것을 오하이오-이리 운하 역사박물관은 말해주고 있었다. 

운하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 연대기
 운하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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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사진첩
 가죽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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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경부운하, #미국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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