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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요즘 어느 시장께서, 어느 당 소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보들의 공약을 번복하는 사례가 있는데, 앞으로는 그 사람의 소속이 어디인지 이제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가 왔다"(22일 한나라당 당선자 워크숍에서 송광호 의원)

 

"'뉴타운을 추가 지정하지 않겠다'는 오세훈 시장 말이 옳다. 뉴타운 사업을 재검토하고, 추진 속도를 늦춰야 한다. 오세훈 일병 구하기를 해야 한다." (23일 환경정의·참여연대 주최 토론회에서 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생경제위원장)

 

방금 인용한 두 발언은 요즘 오세훈 서울 시장이 처한 묘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소속당 의원들한테는 물어뜯기지만 진보적인 시민단체들 쪽에서는 응원하는 분위기다. 잘알려져있다시피 오 시장은 민변 회원이기도 했다. 뉴타운 때문에 거의 동네북 신세가 됐던 오 시장에게 이제 고향 사람들(?)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당에서 따 당하고 고향에서 박수받는 오세훈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뉴타운 논란과 관련해 "서울시는 정치적으로 말려들 필요가 없다, 서울시에는 이미 원칙이 다 있기 때문에 원칙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은 이 대통령이 오 시장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되는데 개인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이 그냥 원론적으로 얘기한 것을 우리 언론들이 너무 과대해석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자꾸 든다.

 

오 시장은 첫째,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고 둘째, 기존 1·2·3차 뉴타운이 상당히 진척된 뒤에 추가 뉴타운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 뉴타운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지난 1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값이 상승 안하면 뉴타운 뭣하러 하느냐"고 일갈했듯이 뉴타운의 '알파'요 '오메가'는 집값 상승이다.

 

뉴타운은 지구 지정 등은 서울시가 관여하지만 실제 사업 진행은 민간조합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들 집 소유주들 가운데 단지 주변 환경을 깨끗이 하는 데 수억원씩 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집값이 올라 투자액 대비 상당한 수익을 거두는 게 목표다.

 

그러니까 돈 한푼 없는 서민들도 '뉴타운 로또'에 열광한다. 금리가 싼 은행돈 빌려서 뉴타운 아파트 지은 뒤 나중에 팔면 금융 비용 제하고는 돈이 남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되어야 한다? 뉴타운 안 하겠다는 말

 

서울 시내의 경우 지역별로 조건이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이른바 30평대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는 지분 구입비용·건설비 부담액·금융비용 등 합쳐서 6억원 정도는 들어야 한다. 6억원 들여서 은행 금리 이상의 수익을 보려면 뉴타운에 건설된 아파트 가격이 8억원 안팎은 되어야 한다.

 

즉 뉴타운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아파트는 강북 주민들에게 '꿈'만 같았던 수준, 즉 강남과 같은 평당 3000만원대 아파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뉴타운 지정설만 나와도 해당 지역 부동산 값은 물론 옆 동네까지 폭등하는 상황이 뉴타운의 '물리적 전제 조건'인데 오 시장이 부동산 시장 안정을 '조건'으로 내걸어 '물리적 전제 조건'을 무력화시킨 것은 결국 뉴타운을 못하겠다는 뜻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오 시장이 뉴타운에 관심이 별로 없다는 증거는 또 있다. 오 시장은 한강 르네상스와 장기전세주택 '시프트'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18일 "이제 '집은 사는 것이 아니고 사는 곳'이라는 개념을 가져야 한다. 집을 사서 재산을 불릴 생각을 버려야 한다"면서 "장기전세주택(시프트) 공급정책이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값 아파트'를 언급하면서 "아파트를 반값에 공급해 시민들이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반 값 아파트을 주창했던 홍준표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뉴타운을 아무리 잘 해봐야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공으로 돌아갈 뿐이니 자신만의 독특한 공적을 쌓아 대권에 도전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이게 바로 한강 르네상스와 장기전세주택(시프트)라는 해석도 한다.

 

오세훈 정책, 이명박 뉴타운과 별 관계 없어

 

 

뉴타운 말 바꾸기로 비난을 받자 오 시장은 지난 21일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적극적으로 해명을 했는데 이런 내용이 있다.

 

"저는 취임 이후부터 줄곧 서민주거 안정과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일관된 목표를 향해 서울시의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을 이끌어왔습니다. 그 같은 정책 기조 아래 장기전세주택 '시프트' 공급, 후분양제 도입 및 서울시 산하 SH공사 공급 주택의 분양원가 공개 등 전향적인 주택정책을 선도해왔습니다.

 

특히 주변 전세 시세의 60~80% 가격에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는 장기전세 '시프트'를 공급해 많은 시민과 언론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주택 문화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고 감히 자평합니다. 이처럼 저와 서울시는 집값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시민들이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는 주택을 꾸준히 공급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 편지를 보면 오 시장의 뉴타운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부정적이며, 결코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생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뉴타운 지정설만 나와도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이 폭등한 가격 때문에 사업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업비 부담 때문에 원주민은 밀려나고 투기 목적의 외지인이 밀려온다(원주민 재정착률 30%) ▲뉴타운은 아파트 일색이다, 이대로가면 5년 뒤 서울시내 주거형태의 80%가 아파트가 된다 ▲뉴타운 자체가 새로 주택을 공급하는 효과가 거의 없다, 최근 3년 동안 강북에서만 5만호 가량의 소형주택이 철거된 반면 신축된 소형주택은 1만4000여호에 불과하다는 것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뉴타운, 공급확대 능력 거의 없다'는 <이데일리>의 기사도 서울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서울시의 자료를 보면 뉴타운은 집 값만 폭등시키고 신규 주택 공급 능력도 없다.

 

24일 환경정의·참여연대 토론회에서 민변의 김남근 변호사는 "뉴타운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원주민의 주거환경개선'이 아닌 강남대체형 강북개발의 '정치적 브랜드'로 탄생한 게 문제"라고 맹비난했다.

 

이런 김 변호사가 '오세훈 일병 구하기'를 외친 것은 오 시장의 정책이 결코 이명박 뉴타운의 '계승·발전'과는 관계가 없다는 방증이다.

 

다음번 대권 도전? 이미 투쟁에 떠밀려진 오세훈

 

오 시장은 2010년 서울 시장을 재선하고 그 다음번에 대권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벌써부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대권 투쟁에 떠밀려진 느낌이다.

 

예를 들어 24일 <조선일보>에 실린 '정몽준 오세훈 뉴타운 신경전 가열'이라는 기사가 한 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뉴타운 공방으로 오 시장이 부담한 '정치적 비용'이 크다"며 "서울 40곳이 한나라당 의원인데 이 가운데 24곳이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던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그가 당장 2010년 서울 시장 재선에 도전할 때 다시 공천을 받을지부터가 불분명하다"며 "단 오 시장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있게 원칙적으로 일을 처리했다는 그런 이미지를 남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뉴타운돌이'라는 말도 나오고 '욕망의 정치'라는 말도 나온다. 아무튼 본인이 원했듯 아니했든 오 시장은 '욕망의 정치'에 반기를 든 셈이다. 그러나 이게 쉽지는 않다.

 

요 며칠간 몇몇 신문들은 사설로 오 시장을 공격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준엄하게 꾸짖으면서 오 시장 편을 들었다. 그러나 같은 신문의 부동산 면에는 "뉴타운 부동산 투자 어디가 좋을까"라는 기사가 실린다.

 

<오마이뉴스>가 23일 토지정의·참여연대의 '뉴타운 사업 이대로 좋은가?'라는 토론회를 생중계했다. 다른 생중계에 비해 독자 댓글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거의 유일하게 달린 댓글 내용이 이랬다.

 

"만약 오늘 토론회가 뉴타운이 어디에 지정되어야 하는가라는 주제였다면 관심이 폭발적이고 댓글 홍수를 이뤘을 것이다"


태그:#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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