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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를 일러 '초선 같지 않은 초선 의원'이라고 했다. 국세청장·행정자치부 장관·건설교통부 장관이라는 화려한 그의 공직 이력 때문일 것이다. 과거야 어찌됐든 이제 그는 '초선'이 되어 '견제받는' 처지가 아닌 '견제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용섭(광주 광산을, 통합민주당) 당선자는 참여정부에서 소위 '잘 나가는' 장관이었다. 국세청장을 거쳐 청와대 혁신관리수석을 지냈으며, 행정자치부 장관을 하고 있다가 공석이 된 건교부 장관으로 거침없이 이동했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는 얘기다.

 

관료로서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것과 정치인으로서 인기없는 전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그는 총선 출마를 결심한 직후인 지난 2월 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참여정부를 죄악시하지 말라"라며 스스로 '노무현의 사람'임을 강조했다. 그는 또 당선되자마자 봉하마을로 노 전 대통령을 찾아가 당선 인사를 했다. 20일과 21일엔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첫 광주 나들이를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참여정부 장관이 다른 당 가서 출마한 건 아름답지 않은 일"

 

22일 저녁 광주 첨단지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이 당선자를 만났다. "새내기 정치인으로서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부담을 느끼진 않은가"라고 물었다. 그는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나는 노 전 대통령께서 퇴임 후 사랑받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봉하마을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라.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더 좋아질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오늘 일보다는 내일 일을 중시했고, 눈앞에 이득보다 가치있는 일에 집중했다. 국가발전사 측면에서 대단한 성과를 남긴 것이다.

 

그런 걸 차치하더라도 난 노 전 대통령을 모시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자린 몰라도 장관은 그 정부와 철학이 같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비난받지 말아야 하지만 설령 비난을 받더라도 끝까지 모시는 게 도리다."

 

그러나 참여정부 장관 출신 중 몇몇은 노무현에게 등을 돌리고 상대편 당의 후보가 되어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들도 있다. "한때 동료였고 동지였던 이들의 '배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이 질문을 매우 곤혹스러워 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정치를 하든, 공무원을 하든 인간은 도리와 지조·의리가 있어야 한다. 우연찮게도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내신 분들이 다른 당 후보로 나가 모두 떨어졌는데 국민들께서 나름의 기준을 갖고 심판하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국민들이 어떤 심판을 했다는 말인지 다시 물었다) 이익에 따라 당을 바꾸는, 참여정부 장관하던 이가 다른 당에 가서 나오면 아름답지 않다는 그런 점을 평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의 조언 "대의와 명분을 중시해라"

 

이제 새내기 정치인이 된 이 당선자에게 노 전 대통령은 어떤 충고를 해주었을까.

 

"'대의와 명분을 중시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조그만 이익에 휩쓸려 다니다 보면 작은 정치밖에 못하니까 어렵더라도 대의와 원칙 쫓아서 하라'고 조언해주셨다. 또 '지나치게 정치적인 행보를 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정부에 대한 협조보다는 견제를 우선시해야 하는 '야당 초선의원'이 됐다. 하지만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 모순인 상황에 대한 이 당선자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는 또 '견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지역 현안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가장 야당답게 해야 얻어낼 수 있다. 견제를 잘해야 지역사업을 잘 할 수 있다. 장관할 때도 보니까 그렇더라(웃음). 아무리 선한 권력도 5년은 편할지 모르지만 건강한 견제세력이 없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옛날엔 견제론을 앞세워 무조건 발목을 잡았다. 이번 총선에서 견제론이 안 통한 것은 국민들의 뇌리에 과거 야당의 발목잡기식 견제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견제는 합리적 논의를 통해 합리적 대안과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합리적 대안으로 정부가 일 잘할 수 있도록 돕고 견제하는 강한 야당은 국민을 위해서도 정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견제는 다수 의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마음이 떠나버리고 내분이 있으면 다수 의석이라도 제대로 된 견제를 할 수 없다. 국민의 마음을 얻고 적은 수라도 똘똘 뭉치면 훌륭히 견제할 수 있다. 그리고 81석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 당선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비행기 타고 가도 시원찮을 판국에 빈 고속도로도 버리고 배로 가겠다는 꼴"이라고 혹평했다. "산업화시대엔 물류가 톤(t) 단위로 이동하며 상품성을 지녔지만 지식정보사회에서 상품은 그램(gr) 속도로 빠르게 이동해야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시대 흐름에 오만하면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속도와 변화를 중시하는 시대에 산업사회에나 맞을 법한 정책이 나와 아쉽다"고 꼬집었다.

 

최근 혁신도시 추진여부 검토 등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일련의 국가균형발전정책들이 후퇴조짐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이 당선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정부가 정부차원의 정책과 국가차원의 정책조차 구분을 못하고, 변수로 상수를 지우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책에는 정부차원의 정책과 국가차원의 정책이 있다. 정부차원의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차원에서 국가적 과제로 세운 정책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바뀌면 안된다. 국가백년대계를 전임 정부가 세운 정책이라고 부정해버리면 결국 국가정책에 대한 국민불신을 자초하는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은 국가적 과제다. 산업화시대엔 모든 나라가 수도권·대도시 위주로 발전전략을 짰다. 하지만 국가간 경쟁에서 도시간 경쟁시대로 바뀐 지금은 전 국토를 특성있게 개발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수도권 규제를 풀겠다는 것은 수도권을 한국의 블랙홀로 만들어 지방을 다 죽이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수도권은 비우고 지방은 채워야 한다.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건설정책은 지방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마중물정책이었다."

 

"선거운동하다보면 어떤 정치해야 하는지 답 안다"

 

공직자에서 정치인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 이 당선자에게 어떤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선거운동 해보면 답을 안다"고 했다.

 

"선거운동하면서 주민들을 뵈면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 '선거철에만 돌아다니지 말고 평소에 돌아다녀라'라고 하신다. 평소에 국민을 섬기라는 말이다. 섬김의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다. 또 하시는 말씀들이 '잊어먹을 거면서 공약은 뭣하러 하느냐'라고 하신다. 약속 지키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 '싸움질 그만하고 이득 그만 챙겨라'라고 하신다. 정직하고 깨끗한 정치하라는 뜻이다.

 

모두 과거정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지적하는 말씀들이다. 사욕이 없으면 많은 일이 해결된다. 사욕이 없으면 국민 속상하게 하는 일이 없다. 사욕이 없으면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게 되고, 사욕이 없으면 이권에 눈멀 이유가 없다. 꼭 그렇게만 하고 싶다. 주민들께서 말씀해주신 것만 지켜도 새로운 정치 실천하는 것이다."

 

이 당선자는 행정부에서 '잘 나가는' 장관이었다. 그는 입법부에서도 '대안으로 견제하는' 훌륭한 국회의원, 말이 아닌 실천으로 '국민을 섬기는'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 그 답은 자신에게 있다.    


태그:#이용섭, #총선,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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