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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민자씨의 황금시대'에서 캬바레 '황금마차'의 남 실장(최명경)이 이곳서 노래를 부르는 사라(윤인조)를 뒤에서 껴안으며 귀엣말을 하고 있다.
 연극 '민자씨의 황금시대'에서 캬바레 '황금마차'의 남 실장(최명경)이 이곳서 노래를 부르는 사라(윤인조)를 뒤에서 껴안으며 귀엣말을 하고 있다.
ⓒ 다음 카페 '민자씨의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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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분명 '양희경'이었다. 하지만 90여 분 뒤, 상황은 180도 뒤바뀌었다. '국민 고모' 양희경이 자리 잡은 머릿속 공간에는, 어느새 낯선 두 배우가 자리를 꿰찼다.

바로 연극 <민자씨의 황금시대>(김태형 작, 김경익 연출)에서 캬바레 '황금마차' 커플인 남 실장(최명경)과 사라(윤인조). 둘은 모습을 보이는 시간은 다른 배우보다 '턱없이' 짧다. 하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야릇한 매력이 있다.

'은갈치' 옷 반짝이는 음흉 남(男)

최명경과의 만남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연극이 시작할 때쯤, 반짝거리는 '은갈치'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무대에 선다. 양쪽 어깨를 건들거리고, 느릿하게 한발짝씩 내딛으며 중앙으로 다가왔다. 말투도 숫제 건성이다. 말 끝부분에 힘을 빼며 어물쩍 흘린다. "부우~탁 해요오~"로 잘 알려진 배우 이덕화를 떠올리면 쉽다.

무대에 올라와 몇 마디 꺼내지도 않았는데, 객석은 금세 웃음바다가 된다.

"휴대전화는 꼭 진동으로 바꾸세요. 안 그럼 무대가 좁아 심하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맨 앞줄 앉으신 분들, 공연 때 '다리 출연' 좀 자제해 주세요. 힘들더라도 다리를 오므려 주는 센스! 헤헤~"

주의사항 두어 개를 늘어놓더니, 그러곤 다시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어깨를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거리면서. 그때까지 모습만으론 연극 스태프 같다. 하지만 10여분 뒤, 캬바레 '황금마차'에서 음흉스럽게 커플 사라의 몸을 더듬으며 다시 등장한다.

"아~ 인생 정말 페니스(penis) 같네."
"넌 왜 그렇게 꿈이 저렴하니?"

남 실장 최명경은 지루해진다 싶으면, 지상렬식 말투로 큰 웃음을 끌어낸다. 이런 여유로움을 찾기까지 최명경은 대학로에서 수년의 시간을 보냈다. 최명경은 연극 <혼자 사는 남자 배성우> <살아간다는 것> <산장의 여인> <문중록> <갈매기> 등에서 내공을 닦아 왔다.

사랑스러운 '싼 티' 녀(女)

'황금마차' 캬바레 가수인 사라 윤인조는 궁극의 '싼 티'로 느끼한 남 실장 최명경과 멋들어진 짝을 이룬다.

망사 스타킹을 허벅지 끝까지 올려 신고, 무대에 오를 땐 형광 빛이 나는 분홍색 가발을 쓴다. 육감적인 몸매는 뭇 남성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비록 모습은 3류 여배우지만, 꿈은 그 누구보다도 소박하다. 남실장과 함께 작은 세탁소 하나 얻어서, 사람들 빨래해주면서 오순도순 사는 것이다.

그녀가 정말 반짝이는 때는 극 후반부. "미래를 함께하자"던 남 실장이 돈을 갖고 도망간 것을 알았을 때, 양희경과 함께 하는 대목이다.

"나 미치겠어. 가슴이 그 새끼 옷자락에 묻어 어떻게 딸려갔나 봐"

돈보다 사랑에게 버림받은 상처에 더 아파하는 그녀의 절규는 너무나 애처롭다. 그 순간, 관객과 배우는 하나가 된다.

연극 '민자씨의 황금시대'에서 캬바레 '황금마차' 가수 민자(양희경)가 애인에게 배신당한 슬픔에 흐느끼는 사라(윤인조)를 꼭 껴안고 있다.
 연극 '민자씨의 황금시대'에서 캬바레 '황금마차' 가수 민자(양희경)가 애인에게 배신당한 슬픔에 흐느끼는 사라(윤인조)를 꼭 껴안고 있다.
ⓒ 다음 카페 '민자씨의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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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을 사로잡는 힘의 바탕에는 지난 세월이 있었다. 그녀는 연극 <그림자의 눈물> <명원이 만공산하니> <사랑은 아침햇살> <꼬방꼬방> <나는 꽃섬으로 향하리> <칠수와 만수> <라이어 1탄> 등에서 실력을 닦아 왔다. 주변에선 "정극에서 코믹 연기까지 멋지게 소화해내는 개성 있는 배우"로 통한다.

연극 '민자씨의 황금시대'는?

<민자씨의 황금시대>는 어떤 연극일까.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집 나간 엄마 박민자(양희경)는 10년 만에 불쑥 딸을 찾아온다. 딸 미아(심이영)는 반갑지만, 자기를 버리고 간 엄마가 못내 원망스럽다. 얼굴 맞대고 서로 부대끼면서, 결국 둘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까칠한 미아의 반항 연기, 철딱서니 없는 민자와 미아를 쫓아다니는 연하 남 철수(김영준)의 엉뚱하지만 귀여운 행동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극 마지막엔 놀라운 반전도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연극이 끝나고 이어지는 짤막한 '덤' 공연은 아쉬움을 달래준다.

극장을 빠져나온 뒤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맴돈다.

"이 작품은 순수 창작 공연입니다. 외국에 단 돈 1원도 안 줘요. 여러분이 많이 사랑해주셔야 해요. 그래야 우리 순수창작 예술이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많이들 소개해주세요."

<민자씨의 황금시대>는 5월31일(토)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 2관에서 공연된다. 관람료 3만5000원(모든 좌석). 문의 (02)747-2117~9.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민자씨의 황금시대, #최명경, #윤인조, #남실장,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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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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