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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나를 이곳에 가져다 버렸다. 숨을 거두는 부모의 곁을 지키지도 못했다. 부인은 도망갔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은 어찌 사는지도 모른다. 장애를 갖게 된 순간, 죄인처럼 쫓겨서 시설에 들어와 수십 년을 보냈다. 몸뚱이가 늙어도 우린 어린애 취급을 당한다."

 

장애인의 날이라고 모든 장애인이 행복하거나 대접받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여러 장애인 단체들은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집회와 시위를 열고 "시혜와 동정만 있는 장애인의 날을 폐지하라"고 외쳤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장애인 생존권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는 장애인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약 4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장애인 생존권을 위한 10대 요구로 ▲장애인연금제 도입 ▲장애인 가족 지원정책 마련 ▲활동보조권리 보장 ▲장애인 주거권 보장 ▲장애인 노동권 보장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성(性)인지적 관점의 장애여성정책 시행 ▲장애인의 방송통신 접근권 보장 ▲난치병 장애인 권리보장 특별법 제정 ▲보조기기 지원정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특히 이날 집회에서는 석암재단이 운영하는 베데스다요양원에서 생활했던 중증 장애인이 대거 참석, 재단 비리를 주장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이들 장애인들은 지난 3월 25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중 11명은 단상에 올라 집단 삭발을 하며 비리 재단의 설립 허가를 취소해줄 것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이들은 "그동안 갇혀 사는 게 억울했지만 우리의 몸뚱이를 의지할 데는 시설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며 "하지만 시설장은 우리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재산을 불려갔다"고 주장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장애여성 곽정숙씨는 이날 행사에 참석해 "최소한 오늘만큼은 정부 당국자와 대통령이 장애인을 국민으로 대접하지 못한 죄를 빌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도 "지난 4월 9일 총선에서 낙선했을 때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오늘 장애인들이 삭발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난다"며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해서 노력해 온 모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서울시청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고 장애인 생존권 보장과 차별 철폐를 외쳤다.

 

또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20여명은 오후 4시께 강변북로를 기습 점거하기도 했다. 이들은 원효대교 부근에서 일산방면 4개 차로를 막고 비리 재단의 장애인 시설 운영 허가 취소 등을 주장했다.

 

문애린(29)씨는 "우리도 똑같은 국민인데 서울시와 국가는 왜 장애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느냐"며 "장애인 시설 비리를 척결해 장애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서울시와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장애인들의 강변북로 점거는 경찰의 제지로 약 30분만에 끝났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가두행진을 요구하며 오랫동안 강변북로 갓길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태그:#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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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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