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쿠하네 아빠는 바쁩니다. 아침 일곱시에 출근하지만, 집으로 오는 시간은 매일 다릅니다. 일찍 오는 날은 함께 저녁밥을 먹을 수 있고, 쿠하와 가위 놀이나 그림 그리기를 할 수 있지만 대개는 아이가 잠든 뒤에 도착합니다. 그림도 그려주고, 엄마가 귀찮아하는 가위 놀이도 마다않고 흔쾌히 해주는 아빠를 쿠하는 해질 무렵부터 찾곤 합니다. 그럴 때, 바쁜 아빠를 대신해 그림책 속에 나오는 다른 아빠들을 보여줍니다.

 

쿠하가 붙인 아빠 별명은 '잠보'입니다(쿠하는 먹보, 임신 7개월인 엄마는 배보). 어쩌다 쉬는 날이면 오전 늦게까지 푹 자는 아빠가 잠자는 아빠로 각인된 탓이지요. 쿠하가 아빠를 주저 없이 '잠보'라 부르는 것처럼 그림책에 등장하는 아빠들은 낮잠 자는 아빠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 세 권의 아빠 그림책은 '잠보 아빠' 대신 아이들에게 '우리 아빠가 최고'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고마운 책들입니다.

 

재치 만점의 그림책, <우리 아빠가 최고야>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사실적인 일상과 그 또래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을 듯한 환상적인 내용을 재치 있는 그림으로 잘 묘사하고 있어 엄마인 제가 더 좋아하는 책입니다. 

 

<우리 엄마>나 <돼지책>을 통해 엄마의 위상을 제대로 심어준 작가의 아빠 그림책 <우리 아빠가 최고야>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아이가 보기에 아빠는 집채만큼 크지만 곰인형처럼 귀엽고 부드러운 존재입니다. 커다랗고 험상궂은 늑대도 안 무서워하고, 달을 훌쩍 뛰어 넘을 수도 있고, 외줄 빨랫줄 위를 떨어지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습니요. 운동회 날 다른 아빠들이랑 달리기 시합을 해도 문제없고, 거인들이랑 레슬링을 해도 이기지요. 

 

물고기처럼 수영을 잘 한다고 말하면 그림 속 아빠는 표지에서 보이는 체크무늬 비늘을 가진 물고기로 변신하고, 곰인형 같다고 생각할 때면 체크무늬 옷을 입은 작은 곰인형으로 변신합니다. 단어와 이미지가 일치되는 그림책은 어린 아이들에게 빠르게 상상과 현실을 오가게 하는 변환 장치가 되어 줄 것 같습니다.

 

혈연 못지 않은 가족애를 엿볼 수 있는 <고 녀석 맛있겠다>

 

알에서 막 깨어난 초식 공룡 안킬로사우르스는 "고 녀석 맛있겠다" 하며 잡아먹으려는 육식 공룡 티라노사우르스에게 "아빠!" 하며 정겹게 다가갑니다. "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까 우리 아빠지!"라고 말하며 순식간에 부자지간의 인연을 맺어버립니다.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는 안킬로사우르스를 잡아먹으려 다가오는 육식 공룡 키란타이사우르스를 상대로 아빠 티라노사우르스는 등허리를 물리는 고통을 참으며 안킬로사우르스를 지켜줍니다.

 

제가 낳은 새끼는 아니지만 아빠라고 부르며 따르는 아기 공룡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쿠하도 느끼는지, "엄마 티라'누'사우르스가 많이 아야해?" 하고 되묻곤 합니다. 

 

얼른 커서 아빠처럼 되고 싶다는 초식 공룡에게 육식 공룡 아빠는 박치기며, 꼬리 쓰기, 소리치며 싸우는 기술을 전수해 줍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다 가르친 어느 날, 티라노사우르스는 안킬로사우르스에게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맛있는 빨간 열매를 아빠에게 따다주던 아기 안킬로사우르스는 헤어질 수 없다고 울지만, 티라노사우르스는 안킬로사우르스들이 사는 곳으로 아기를 보내주려고 마음 먹습니다. 저기 먼 산까지 달리기 내기를 해서 아기 공룡이 이기면 계속 같이 살겠다고 조건을 걸자, 아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갑니다.

 

아기 안킬로사우르스와 똑같이 생긴 큰 공룡 두 마리와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 티라노사우르스는 꼬리를 흔들며 빨간 열매를 하나 먹습니다. "잘 가라. 맛있겠다야" 하면서 말이지요.

 

우리네 아빠와 가장 흡사한 <고릴라>

 

이 책도 앤서니 브라운이 지은 아빠 그림책 입니다. 고릴라를 좋아하는 소녀는 아빠와 고릴라 이야기도 하고 싶고, 동물원에 가서 진짜 고릴라도 보고 싶지만, 창백한 피부의 아빠는 늘 바빠서 한나와 놀아줄 시간이 없습니다. 주말이 돼도 아빠는 밀린 일들을 해야 하거든요. 4월 내내 일이 많아서 휴일도 반납하고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쿠하 아빠와 가장 닮은 아빠가 등장하는 책입니다.

 

고릴라를 좋아해 고릴라 책을 좋아하고 비디오를 보고, 고릴라를 그리며 노는 한나에게 아빠는 생일 전날, 선물로 작은 고릴라 인형을 선물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평범한 고릴라 인형이 점점 커집니다. 고릴라와 함께 동물원에도 가고, 극장에서 고릴라판 수퍼맨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춤도 춥니다.

 

 

생일 아침. 아빠에게 간밤의 사건을 자랑하러 뛰어오는 한나에게 아빠는 함께 동물원에 가자고 말합니다. 아빠가 입은 청바지 뒷주머니에 바나나 한 개가 끼워져 있는 모습이 간밤의 일을 짐작하게 하지요.   

 

<고릴라>를 비롯해 아빠와 아이를 소재로 한 그림책들로, 아빠들이 너무 바빠서 그렇지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거나 함께 놀아주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빠가 최고야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최윤정 옮김, 킨더랜드(킨더주니어)(2007)


태그:#아빠, #그림책, #쿠하, #고릴라, #앤서니 브라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