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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use Baby 2MB 그만하자" 19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학교자율화 반대 청소년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 김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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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교시,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그리고 우열반…. 익숙한 이야기다. 기자도 10여 년 전 그런 삶을 살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등교해 책상에 다시 엎드려 자고 그리고 밤 10시에 교문을 나서 집에 돌아오면 새벽 2시까진 '눈치' 때문에 공부하는 '척'을 했다. 새벽 댓바람에 눈을 뜬 밥통은 급식 시간까지 못 기다리고 나 더러 어서 매점으로 달려가라 재촉했고 쉬는 시간에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가 흘러나왔다.

 

사회로 나오고 나서 누군가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을 때 난 기겁을 했다. 내게는 '지옥'만큼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부담스러웠고 아팠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계 바늘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15일 '학교자율화'를 외치며 복고를 명했다. 19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인 아이들은 그것을 당당히 거부했다. 그리고 외쳤다.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학생들] "이건 내 미래에 대한 투자. 우리가 바꾸겠다!"

 

 

이날 촛불문화제는 약 3시간에 걸쳐서 열렸다. 그 젊음만큼이나 다양한 끼들을 엿볼 수 있었다. 랩으로 교육정책을 비판하는가 하면, 유행어에 힘을 실어 구호를 외치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곳에 온 학생들은 가슴에 한 마디씩 뼈 있는 말들을 품고 있었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인 박정은씨는 "지금도 아침 7시면 일어나 아침도 못 먹고 학교에 간다"고 했다. "Mouse Baby 2MB 그만하자"라고 손수 적은 피켓을 든 그는 학교 선생님이 이런 행사가 있다고 알려줘서 참석하게 됐단다.

 

박씨는 "아마 0교시가 부활하면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그러면 학교에서 잠만 자게 될 것 같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게)'이제 그만하자. 학생들이 너무 힘들어요'라고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박씨의 학교는 수학 수업을 3개의 우열반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박씨는 "지금도 한 반의 친구들이 수학 시간마다 찢어져서 수업을 받는데 우열반으로 나눠지면 공부 못하는 애들은 정말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열반으로 아이들을 갈라놓은 것은 박씨의 학교만이 아니었다. 임희영(고2)씨는 "얼마 전에는 급식 순서를 성적 순으로 나누더니, 이제는 공부를 못하면 밥도 못 먹겠다"며 우열반 편성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부천에 사는 김태희(고2)씨는 "학생도 학교의 주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이 현재 불법이니깐 교실에서 동의서를 나눠주고 참여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불참하면 동의서를 쓰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그렇게 해서 어떻게 이 세상 살아가겠느냐"며 동의서를 쓰라고 재촉했단다. 결국 김씨의 반 학생들은 단 1명을 제외하고는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하게 됐다.

 

익명을 요청한 경기도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고등학교 때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며 자괴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사진 촬영도, 인터뷰도 부담스러워 했다. 얼마 전 친구가 '학교자율화'를 반대하는 문서를 학교에서 돌렸다가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일을 하다가 들킬 때는) 최소한 사회봉사 명령과 벌점을 함께 받는다"고 전했다.

 

중·고등학생이 속에 쌓인 이야기를 푸는 그곳에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현재 강서구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정필재군은 당당하게 "이건 내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말했다. 그는 1년 전 학교에서 '핸드폰 금지령'을 내려 이것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두발자유화 등 학생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1~2년, 길게는 3~4년 후면 제 이야기잖아요. 지금부터 미래를 바꾸기 시작하면 저나 제 친구들이 즐겁게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른들] "미안하고 대견하다.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물론 '어른'들도 그곳에 있었다. 촛불문화제를 지나쳐 가던 시민 1명은 "아이들이 수고한다"며 초코파이를 주기도 했다. 또 어른들이 먼저 '학교자율화' 시도를 막아내지 못한 것을 미안해 했다.

 

대전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이모씨는 행사장에서 약간 떨어진 세종문화회관 계단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볼 때 수동적이고 심지어 생각이 없다고도 여겼는데 역시 아이들은 희망을 갖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고3 학생 1명이 창 밖에 몸을 내밀고 발악하듯이 '봄봄봄'을 부르는 것을 봤다. '봄, 봄, 봄, 봄이 왔어요'라고 하는 동요 있지 않나. 그런데 다른 애들도 웃기는커녕 무덤덤하더라. 실제로 그 아이들이 억압되고 숨 죽이고 있는 거다. 이 좋은 봄날에… 교사들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데 짠하다."

 

'학벌 없는 사회'의 홍세화 공동대표는 아이들의 뒤쪽에 앉아 있었다. 홍 대표는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자율화 조치에 대해 "미친 말의 질주"라고 혹평했다. 그는 "교육, 인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며 "30명 중 네가 30등이니 너는 열등하다고 주입하는 것은 반교육적·반인권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교육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인성을 기르는 작업"이라며 "청소년들이 스스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저항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런 판단력과 비판력이 있다는 것이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연대사에서 "어른들이 이 정부와 국회의원들을 뽑아줬는데 여러분들이 고통 당하게 돼서 부끄럽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더불어 "지금도 학교가 학생을 죽이는 일이 7백여 건이나 발생하는데 이참에 애들 다 죽일 것인가"라며 과거로 회귀하는 교육과학기술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정진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은 "교육부 장관은 무려 7명이나 되는 교장과 교육 관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학교자율화 정책을 세웠다"며 "이제 이런 잘못된 정책을 어른들이 먼저 나서서 바로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녁 8시 30분. 날이 어두워지면서 학생들이 든 촛불은 점점 밝아졌다. 그리고 학생들은 더 높게 외쳤다.

 

"교육정책들은 왜 우리들의 주장과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겁니까? 제발 우리들의 외침을 들어주세요!"

 


태그:#학교자율화계획, #0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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