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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오마이뉴스>는 '이론과 현장이 만나는 생태지평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독일과 네덜란드를 방문해 운하를 현지조사한 뒤 이를 10여 차례에 걸쳐 기획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는 '제1 공약' 경부운하를 내세워 물류혁명을 이루겠다고 주장했으나, 현지 취재 결과 그 허구성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그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그간 경부운하의 허실을 집중적으로 취재해온 김병기 기자를 미국 현지에 파견, '생태지평' 전문가와 함께 미국 주요 운하들의 현재 상황을 조명해보는 2차 해외탐사보도 '미국운하를 가다'를 기획했다 [편집자말]
끝없이 이어진 기차
 끝없이 이어진 기차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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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다섯….

건널목 앞에 서서 기차의 칸 수를 세기 시작했다. 회색빛 탱크에 석유를 실은 칸이 지나가고, 곧바로 화학물질을 실은 탱크 칸이 레일 위에서 서서히 이동했다. 대형 쇠파이프와 컨테이너, 석탄을 실은 칸이 이어졌다. 곡류라고 적힌 칸도 있었다. 앞을 봐도 끝이 보이지 않았고, 뒤쪽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건널목에서 기차를 만나 자동차를 세워두고 칸 수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100칸 정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건널목 앞에서 10여분도 넘게 기다렸죠."

양영석 루이지애나 주립대 허리케인센터 연구조교의 말이다. 우리 일행은 지난 2월 29일 미시시피 강변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미국 육군 공병단 뉴올리언즈 지부의 사업부 책임자 리처드 엔트휘슬(Richard C. Entwisle)씨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쉴 새 없이 도로를 질주하는 컨테이너 트럭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트럭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트럭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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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헤어진 뒤 곧바로 미시시피 강변 쪽으로 가려다가 뉴올리언즈 항구에서 출발한 낯선 기차를 만난 것이다. 우리 일행은 이날 하루동안 이런 진풍경 앞에서 두차례나 멈춰서야 했다.

세계에서 4번째로 긴 강인 미시시피강 하구의 항구도시 뉴올리언즈. 상류에서 미조리 강과 오하이오 강 등이 합류하면서 수량이 풍부하고, 육지가 바다보다 낮은 이곳은 '운하의 나라'인 네덜란드처럼 배를 통해 물류를 운송하기에 적합한 자연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미시시피강으로 물류를 운반하고, 멕시코만과 뉴올리언즈를 잇는 122km의 MRGO(Mississippi River Gulf Outlet:미스터고) 운하 등 물류운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운하가 많다.

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치로 내걸고 건설된 각종 운하가 폐쇄되거나, 원래 상태로의 복원을 위해 막대한 혈세를 쏟아붓는 현장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뉴올리언즈항까지 기차가 줄지어 늘어섰고,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트럭들은 오르막 길도 없이 쭉 뻗은 도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무섭게 질주했다. 대체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이명박 대통령은 운하를 건설해 경제 부흥을 이뤄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겠다고 호언장담해왔다. 하지만 뉴올리언즈의 운하는 이 대통령의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58년부터 65년까지 8년여에 걸쳐 920억원을 들여 건설한 미스터고 운하는 내년에 완전 폐쇄될 운명에 처했다.(지난 기사 참조). 선주와 건설업자 등의 집요한 정치 로비에 의해 건설된 이 운하는 초기 4m 수심을 유지했으나, 보다 큰 배가 다니게 하려고 수심을 11m까지 깊게 팠다. 물론 폭도 계속 넓혔다. 수면의 강폭의 220m, 강 바닥쪽은 150m이다.

미국에는 운하 건설 계획이 있나? "아마도 없을 것이다"

미국 육군 공병단 뉴올리언즈 지부 리처드 엔트휘슬씨
 미국 육군 공병단 뉴올리언즈 지부 리처드 엔트휘슬씨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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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구불구불한 미시시피강을 따라 해안에 도착했는데, 뉴올리언즈에서 직선으로 해안까지 연결된 미스터고 운하를 뚫은 뒤에 40마일(64km)이나 단축됐습니다."

미국 육군 공병단 뉴올리언즈 지부 리처드 엔트휘슬씨의 말이다. 뱃길을 단축했으니, 경제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 99년 경제성에 대한 재평가를 했는데 운영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과가 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2009년까지 2500만불-3000만불을 투입해 미스터고 운하 중간에 방조제를 만들 예정"이라며 "완전히 폐쇄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스터고 운하를 통해 짠물이 유입되다보니 주변 습지가 죽었다"면서 "미시시피강물 돌리기 사업을 통해 토사를 공급하거나 염도를 줄여 습지를 복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막대한 '혈세'를 퍼부어 122km에 달하는 운하를 만든 지 40여년만에 당시 건설비보다 더한 돈을 들여 폐쇄하고, 그것도 모자라 운하로 인해 파괴된 습지를 되살리기 위해 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는 얘기다.

엔트휘슬씨는 "미스터고를 통과하는 컨테이너선은 하루에 1-2척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갑문이 작아서 큰  배들은 통과하지 못했다, 그래서 갑문을 교체할 계획도 세웠는데, 이제는 운하 자체를 완전히 막기 때문에 그 계획도 접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미스터고 운하가 경제적 효용성이 없기 때문에 폐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짠물 유입으로 인해 습지가 죽어가기 때문이란다. 이런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미국의 운하를 관장하는 육군 공병단은 이 지역의 운하를 죽이고, 습지를 살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막대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그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국은 1800년대에 운하를 많이 건설했는데, 앞으로도 운하 건설 계획이 있는가."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답변했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레이터뉴올리언즈 다리를 통과하는 컨테이너선.
 그레이터뉴올리언즈 다리를 통과하는 컨테이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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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계획을 포기한 산업운하 갑문. 이 갑문은 미스터고 운하와 연결되어 있다.
 확장계획을 포기한 산업운하 갑문. 이 갑문은 미스터고 운하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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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가 지역경제 발전? "네버!"

그와 헤어진 뒤 우리 일행은 미시시피강이나 미스터고 운하 근처에 접근하려고 한참을 헤맸다. 하지만 대부분 철책이나 높은 방벽에 가로막혀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가까스로 찾은 한 항구의 입구에서도 우리를 차를 되돌려야 했다. 미시시피강이나 운하를 관리하는 미 공병대에 사전 허락을 받은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시간 이상 헤매다가 찾아간 뉴올리언즈 항구. 박진섭 생태지평 부소장과 기자는 쉴새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미 공병단이 언제 또 들이닥쳐 제재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통역을 밭았던 양 조교 등 우리 일행은 30여분동안 제방과 인근의 그레이터뉴올리언즈 다리 등의 구조물을 조사했다.

강 건너편에 불꺼진 유람선과 멀리 정박해 있는 바지선들을 간혹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운항하는 배는 4단으로 컨테이너를 적재한 수만톤급 컨테이너선 한 척에 불과했다. 철도와 도로 운송 수단에 밀려 정체하거나 쇠락해가는 미국 운하의 현주소를 보는 듯했다.

현지인들의 운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의외로 컸다. 우선 1957년 미스터고 운하가 만들어질 즈음 발표된 한 언론의 보도내용을 보자.

"미스터고는 st. Bernard 군에 산업 발전의 기회로, 인접한 뉴올리언즈 산업 발전에 보조 역할을 할 것이다."<뉴올리언즈 신문(New Orleans States News)>

호수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칼튼 듀프리초(Carton Dufrechou) 대표
 호수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칼튼 듀프리초(Carton Dufrechou)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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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뉴올리언즈에서도 최근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이 그토록 강조해 온 운하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들먹였던 것이다. 하지만 미육군 공병단이 발표한 2000년 수상통계에는 다음과 같이 적시되어 있다. 

"운하가 건설된 1963년 이래로 해운사업에 의한 사용은 지역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현저히 적었으며 교통량도 애초의 예측보다 훨씬 적었다. MRGO가 지역 바지선에 수송로를 제공했음에도, 루이지애나주 남동부의 해운사업에서는 미시시피강 하류가 연간 적재 톤수의 40% 이상을 담당하면서 더 앞서고 있다. MRGO는 1997년에 570만톤에 머물러 해운사업의 3%에 머물렀다."

3월 1일 폰차트레인 호수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칼튼 듀프리초(Carton Dufrechou) 대표는 한술 더 떴다.

"미스터고 운하가 지역경제의 발전을 가져왔다고요? '네버'. 주민들은 오히려 운하를 싫어했습니다. 특히 카트리나 피해가 운하 때문에 가중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2005년 카트리나 한번으로 20에이커가 넘는 습지가 사라졌다"면서 "연간 이 지역에서 20제곱마일의 습지가 사라지는데, 4년간 잃을 습지를 불과 하루만에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바다와 연결된 운하가 카트리나 폭풍해일을 육지로 실어나르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운하 건설과 복원의 최대 수혜자는 건설업자

그는 "미스터고를 폐쇄하는 데 2500만불이 소요되고, 걸프만 연안수로 앞쪽에 방파제를 세우는 데도 비슷한 비용이 들어간다"면서 "이런 비용을 포함해 운하로 파괴된 미시시피강 동쪽 지역의 습지 복원에 100억불이 들어간다"고 개탄했다. "복원에 필요한 초기 사업비만 따져보면 운하 건설비의 10배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조 섞인 말투로 다음과 같이 맺었다. 

"고기잡이 어선과 선주, 주운업자, 건설업자가 미스터고 운하 건설에서의 최대 수혜자입니다. 그런데 건설업자들이 복원공사(방조제로 운하를 폐쇄시키는 공사)에서도 최대의 혜택을 받습니다. 아이러니지요. 건설과 복원 비용은 시민들이 낸 세금이지요. 결국 자연 상태의 수계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미스터고 운하의 최대 교훈입니다."

'한반도대운하'의 최대 수혜자는 건설족과 투기꾼들일 것이라는 국내 운하 반대론자들의 우려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누구일까? 

 카트리나의 최대 피해지역, 루이자 스트리트(Louisa Street)의 파괴된 집.
 카트리나의 최대 피해지역, 루이자 스트리트(Louisa Street)의 파괴된 집.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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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우리 일행은 루지애나주 배튼루즈 시에서 출발해 LA3642번 도로를 타고 1시간여동안 달려 뉴올리언즈에 도착했다. 자동차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고속으로 질주하는 수많은 컨테이너 트럭과 곳곳에서 목격한 사이프레스 나무의 주검. 물류를 운송할 목적으로 건설된 미스터고 운하는 제기능을 못하고 있고, 대신 운하로 인해 짠물이 유입되는 바람에 습지가 죽어가는 현장을 목도한 것이다. 

실제 미 공병단의 뉴올리언스 관할 부대가 이 지역에서 토지의 손실을 추정한 결과(1999, MRGO의 건설이 서식지에 미친 영향)는 다음과 같다.

"3400 에이커의 담수 및 중간습지, 1만300에이커 이상의 기수습지, 4200에이커의 염습지, 1500에이커의 사이프러스 습지, 그리고 산림 제방들이 파괴되거나 심각하게 나빠졌다."

그렇다면 인간은 안전할까? 폭풍해일 모델링의 세계적 권위자인 하산 마시리키 미 루이지애나 주립대 교수는 지난 2005년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카트리나에 의한 피해가 증폭된 것은 '운하'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1일 오후에 방문한 카트리나의 최대 피해지역, 루이자 스트리트(Louisa Street). 흑인 밀집지역이었던 이곳의 다 쓰러져가는 건물 벽면엔 온통 붉은 색과 노란색 등으로 'X'자가 새겨져 있다. 골격만 앙상한 빈집과 이곳이 집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시멘트 기초가 휑하니 놓여있는 곳도 있었다. 잡초만 우거진 채…. 

수많은 영혼, 검은 얼굴을 한 원혼들이 아직도 그 위를 떠돌고 있었다. 운하는 개발이냐, 환경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생명의 문제라는 사실을 이 주검의 현장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미국운하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이 한장의 도표


미국운하의 쇠퇴를 보여주는 표.
 미국운하의 쇠퇴를 보여주는 표.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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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통국의 운송수단별 성장률을 보여주는 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항공운송의 비약적 발전과 내륙 수운의 쇠퇴. 지난해 대선에 출마하면서 경부운하를 통해 4만불 시대의 미래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이명박 대통령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통계수치이다. 결국 운하라는 '낡은 엔진'을 장착해 선진국으로 진입하겠다는 주장, 그걸 장밋빛 청사진인양 포장해 국민들에게 제시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태그:#경부운하, #미국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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