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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25전쟁' '한국동란' 등 전쟁 이름에서부터 전쟁 발발 책임자(남침이냐, 북침

이냐)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은 수많은 논란을 거듭해왔다. 이런 논란은 대부분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과 사실이라는 객관성보다는 좌우이념이 먼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비극의 정점인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서 발포 책임자 규명이 중요한 만큼 어떤 전쟁이든지 전쟁 발발 원인, 준비과정, 대비 과정과 침략 행위자를 증명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전쟁에서 이를 증명하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난 배경과 전쟁진행 과정의 실증자료와 역사기록보다는 이념이라는 잣대가 먼저 개입됨으로써 남북 양측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데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실증자료와 역사 기록이 대한민국이 많이 남아있지 않고, 구 소련과 미국에 있었다는 이유가 가장 중요한 원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밝혀진 자료만으로 사실 증명을 하는데 미흡했다.

 

그럼 점에서 박태균의 <한국전쟁-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은 매우 적절한 한국전쟁을 연구한 책이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남침과 북침 원인자를 단순히 단순한 접근으로 이념과 사상, 정치논리를 배격해여 해묵은 접근 방법을 지양하고, 실증,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전쟁의 발발원인과 배경, 성격, 전개과정을 800쪽이 넘은 분량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원래 전쟁이란 선전포고를 통하여 개전되지만 한국전쟁은 '선전포고' 없이 시작 전개된 전쟁이다. 북침을 주장하는 북한도, 남침을 주장하는 남한도 침략만 당했을 뿐이다. 이는 남북상호간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 참전을 결정한 미국 트루먼 대통령도 전쟁개입을 '경찰활동'(police action)으로 명명했다. 중국 역시 인민 '지원'군의 개입이었을 뿐이다.

 

그는 한국전쟁은 1948년 이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국제적 원인이 입각한 내전으로 정의한다. 국제적 내전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있다. 38선의 사소한 분쟁이 국지전, 전면전, 남북한 양국의 서로 간에 불신과 불안, 북침과 남침을 서로 주장하면서 전쟁은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그는 전쟁발발 책임자에서는 명확하다. "북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막강한 화력과 잘 훈련 · 편제된 병력을 갖고 전면적으로 38선 전역을 돌파 · 남진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본문 71쪽)고 함으로써 북한 남침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념이 아니라 한국전쟁의 역사실증자료를 통하여 증명한 것으로 매우 타당성 있다.

 

한국 전쟁 성격을 북한 지금까지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했다. 남한은 6 · 25 동란, 한국동란으로 불러 '내란' 또는 내전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보았다. 서방 소련 전문가들은 국제전으로 보았다. 부르스 커밍스 같은 학자는 한국전쟁은 1950년 발발했지만, 이미 해방 이후 또는 1948년 이후 내부혁명투쟁, 내전, 소규모 재래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된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나가이 요노스케 같은 경우는 한국전쟁이 내전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국제 냉전이라는 복합 속에서 일어난 국제전적 내전으로 규정했다.

 

정병준은 이런 전쟁 성격 규정에 대하여 1948년 문화인 108인이 한국전쟁의 성격을 선구적이고 날카롭게 예언한 것을 통해 한국전쟁의 성격을 규정한다. 108인(이순탁, 이갑섭, 설의식, 정구영, 손진태, 이양하, 이병기, 신남철, 정지용, 박용구) 등은 이렇게 썼다.

 

"그후로(분단정부 수립-인용자)오는 사태는 저절로 민족상호간의 혈투(血鬪)가 있을 뿐이요 냉전 같은 국제전이요 외전 같은 동족전쟁이다." 말을 인용하여 "한국전쟁은 내전이나 국제전으로 발화했거나, 혹은 내전으로 발화해서 국제전으로 비화한 것이 아니라, 1950년 발발 시점에서 이미 내전이자 국제전으로서의 성격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는 한국전쟁이 내전적 형태로 출발했지만, 이미 개전 당시부터 국제전으로서의 본질적 특징들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제하는, 이 책의 기본 관점이기도 하다."(본문 82쪽)

 

한국전쟁 발발자를 북한에 두고, 한국전쟁 성격을 내전적 형태와 국제전이 복합적으로 얽힌 전쟁을 규정한 것은 매우 유익한 성과로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은 국내 역사학자가 쓴 최초의 본격적인 한국전쟁 연구서이다.

 

정병준은 한국 전쟁 성격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기존 한국전쟁에 관한 기전 연구들이 비판적으로 검토되며, 전쟁사 연구의 기본에 해당하는 1948년 이래 남북한군 병력 현황, 1948~50년 38선 충돌 현황들을 정리했다. 한국 전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실증자료들로 등장하는 신·구노획문서는 대부분 처음 소개되는 것들로, '1947년 이래 소련의 웅기·청진항 30년 조차 관련 기록', '웅진을 공격한 북한군 관련 문서' '인민군 총참보장 강건의 폭사 관련 문서' 등의 개별문건 만으로도 중요한 기록들이다.

 

정병준은 연구 핵심 관심사를 1949~1950년의 38선 충돌에 두고 있다. 38선 충돌에서 지금까지 연구는 38선 충돌이 한국전쟁과 상관이 없다는 주장과 38선 충돌이 한국전쟁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두 견해가 존재하는 가운데 정병준은 1949~50년의 38선 충돌이 북한 최고지도부의 한국 전쟁 계획에 미친 영향, 한국 전쟁 계획의 형성과정을 검토하여 북한은 1949년 38선 충돌을 통해 병력 증강 · 훈련 · 무장 강화를 이루었으며, 또한 옹진반도 국지전에서 전면전으로의 전화(轉化), 도발 받은 정의의 반공격전이라는 개전 형식의 창출 등 핵심적인 전갱계획과 전쟁관을 수립하여 Ⅲ에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전쟁의 형성'이 1949년~50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한국의 관점은 '전정한 불의의 기습남침'이다.

 

한국전쟁은 1949년~50년의 38선상의 군사적 충돌과 긴밀한 연관이 있었다. 1949년~50년의 충돌은 발화자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고, 남한이 주도한 인상이 강했던 반면, 1950년 전쟁은 북한이 전면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시작되었다."(본문 94쪽)

 

북한에게 한국전쟁은 '도발받은 정의의 반공격전'이다. 북한의 이런 한국전쟁관에 대하여 정병준은 1949년 초반 한국군의 대대적인 38선상 군사충돌 및 대북 공격은 북한에게 두려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기회를 제공했으며, 북한 한국군의 공세를 빌미로 병력과 무장을 강화했고, 동시에 대남공격을 위한 스탈린의 허가를 얻으려 했고 말한다. 스탈린은 1949년 2~3월 김일성과 박헌영에게 38선상에서 남한이 공격해오면 반격한다는 '도발받은 정의의 반공격전' 시나리오를 교시했고, 이는 이후 북한의 한국전쟁 계획 및 한국전쟁관의 기초를 형성했다고 주장한다.(96쪽)

 

이것은 남한은 국지적 도발은 북한보다 많이 감행했지만 북한을 전면적으로 공격할 능력이 없음을 말하고 있으며 오히려 북한이 전면 남침을 위한 준비를 했음을 밝히고 있다.

 

미국에게 한국전쟁은 '정보의 실패'로 요약된다고 그는 말한다. 미국은 북한 소련의 괴뢰이며, 소련이 미국을 향한 전면전을 시도할 의도와 계획,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 정보의 실패라고 그는 주장한다.

 

개전과 전개과정을 미국, 소련, 북한 자료를 교차 분석한 치밀한 연구서로서 한국전쟁 전체적인 맥락, 구체적인 사건, 충돌의 세부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게 했다. 어느 한 나라만의 자료를 통한 시각형성이 아니라 미국, 소련, 북한 자료를 편협한 시각에서 보지 않고 객관성을 가지고 연구한 성과물로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58년이 지난 오늘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정립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전쟁-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정병준 지음 ㅣ 돌베개 ㅣ 38,000원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정병준 지음, 돌베개(2006)


태그:#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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