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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전, 동네마다 어린이도서관 만들기 꿈을 키우던 엄마들이 요즘 여기 저기 일을 내고 있다. 달팽이, 어깨동무, 꿈터, 작은나무 같은 어린이도서관들은 개관을 앞두고 있다. 살림과 아이들로 바쁜 엄마들이지만 시도 때도 없이 도서관으로 모인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빨리 좋은 책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도서관의 처음은 서울 남산도서관이다. 중학교 때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야 했던 도서관. 그곳은 일요일에도 시험공부 때문에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사서에게 따뜻한 인사를 받았거나 책을 빌려 읽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학교에도 도서관에도 복도 어딘가에는 ‘정숙’이란 글자가 써 있었고 모두 무표정해 보였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조용히 교과서만 달달 외우던 단발머리 소녀들이 지금도 어느 도서관에는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의 ‘행복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면 아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마다 어린이도서관 한 개쯤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항상 책이 있던 어린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존 우드. 그의 어머니는 일요일마다 어린 존 우드를 위해 신문 만화란의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다. 그는 잠들기 전, 동화를 수없이 되풀이해서 읽었고 여행을 하거나 형과 누나가 다투는 동안에도 책 속에 빠져들었다. '룸 투 리드(Room to read)'를 설립하겠다고 결심한 그의 계획은 분명 어릴 적 책과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이 씨앗이 되었을 것이다.

 

존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잘 나가는’ 국제시장 전문가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세계 오지에 3천개의 도서관과 200개의 학교를 지을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그의 결심을 비웃기도 했지만 행동으로 실천하는 그의 열정은 그치지 않았다. ‘너는 죽어 무덤에서나 잠을 잘 수 있다’라는 속담을 떠올릴 정도로 그의 생활은 정신없이 바빴다.

 

그가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인과 이별까지 하면서 ‘룸투리드’에 올인 할 수 있었던 강력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건 네팔에 머무는 동안, 존 우드가 무언가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고 그가 언제나 ‘더욱 많이 베풀면서 살 것을 맹세’한 과거에 핑계대지 않은 것이었다.

 

개관을 준비하는 어린이도서관의 지킴이들은 이제 지역주민들과 회원들의 후원이 절실하다. 기금마련을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나누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대우 받게 하자고 설득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엄마들은 어린이도서관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자료로 모으고 영상으로 만든다. 그 과정을 바라보는 마음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리게 한다. 그러면서 정말 이 공간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굳굳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다지는 것이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도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도와주면서도 내 도움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크다. 존 우드의 이메일 서명파일에 실려 있는 글은 마을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우리에게 힘센 참고서가 된다. 

 

“우리는 현재까지 200개의 학교를 지었고, 2500곳이 넘는 도서관을 설립했으며, 1백만 2천 권의 도서를 기증했고, 1800명이 넘는 소녀들에게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세계적인 교육을 위해 당신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어린이도서관 만들기를 지역 주민과 함께 하면서 ‘혼자 꾸는 꿈은 그냥 꿈으로 끝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무슨 일인가를 하려면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한다. 하지만 생각과 고민 앞에 아무런 행동이 취해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어린이도서관에 엄마와 아이들이 찾아온다. 우리동네 이런 곳이 있었느냐고, 언제 생겼느냐고 궁금하고 신기해하면서 시간이 되는대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하는 엄마들도 있다. 이미 만들어진 마을어린이도서관은 시간별로 자원활동가들이 채우고 품앗이로 도서관을 지킨다. 새로 만들어질 도서관에는 그동안의 노하우를 제공하며 조언을 주고 있다.

 

“룸투리드는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욱 행복했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얻은 많은 것들을 룸투리드에 녹여내었다. 그래서 이전과 새로운 삶 사이에 연속성을 더 많이 발견했다.” (본문에서)

 

어린이도서관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들은 자신과 내 아이가 스스로 변하고 성장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 어린이도서관이 왜 꼭 필요한지를 안다. 존 우드가 하는 말은 이제 함께 도서관을 만들고 있는 엄마들의 말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히말라야 도서관>,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세종서적  책값 : 10,000원


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16,000개의 도서관 1,500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개정판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세종서적(2014)


#히말라야#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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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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