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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의 초강세와 진보진영의 실력부족’으로 판가름난 총선 이후 지역구별로는 당락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제18대 국회 입성에 실패한 민주당 386출신들과 진보정당 인사들이 미래에 대한 우려와 역부족이란 현실인식 속에 환골탈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대전의 중심으로 알려진 서구(을)에서 낙선한 박범계 후보(통합민주당)가 10일 오후 5시 경에 그의 선거사무소에서 해단식을 가졌다. 그는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최연소로 참여했고 법무비서관으로 대통령비서실에 근무하면서 사법개혁을 주도하는 등 전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맥으로 분류된다. 실패한 캠프의 분위기야 보지 않아도 뻔하겠지만 성공보다 실패한 끝마무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해단식이 진행되는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대전 서구을은 애당초 17대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던 자유선진당 심대평 의원이 출마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던 곳으로, 그 당시 상대적인 경쟁력으로 볼 때 박 후보에게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였다.

 

그러나 심 의원이 충남에서의 자유선진당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지역구를 공주-연기로 변경하고 한나라당 공천에 실패한 이재선 후보를 대신 내세우면서 판세가 비슷하게 어우러지기 시작한 곳이다. 한나라당에서는 나경수 변호사가 공천을 받았다. 최종결과는 자유선진당의 이재선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동안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지지자들이 대부분 참여한 해단식에서 박 후보는 실패의 원인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를 언급했다. ‘실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했던가?

 

첫째, 투표율이 저조했다. 특히 박 후보의 지지기반인 20~30대 젊은이들의 투표율이 낮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둘째, 자유선진당 바람이 충남처럼 거세지는 않았지만 그 영향이 대전 서구을에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량적으로는 대략 5%~8% 정도의 득표율 차이를 자유선진당 바람 탓으로 보고 있다.

 

셋째, 조직의 열세를 들고 있다. 특정 아파트 단지가 속한 투표지역에서 몰표가 나온 것은대전 지역에 뿌리를 둔 학연과 지연이 취약한 약점에 기인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직의 열세에 의한 능력의 부족으로 자평하고 있는 것이다.

 

 

발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시발점으로 볼 수 있는 해단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이후의 거취에 관한 얘기다. 그동안 후원했던 지지자들에게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밝혀야 하는 것이 도리겠지만, 이렇게 밝히기까지는 가까운 가족들의 생각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선거 다음 날 조간 신문을 펼쳐 든 박 후보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는 얘기를 서두에 꺼냈다. 지역구별 후보들의 득표율을 정리한 지면을 보다가 유독 자신의 선거구인 대전 서구을의 내용만 잘려 나간 것을 보게 되었고, 잠시 후에 막내 아이의 소행(?)이란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 아이 말인 즉,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떨어졌는데 무슨 자랑이냐고 다그치자 ‘그래도 2등 했잖아요?’라고 큰 소리로 대답하는 아이가 한마디 덧붙였단다. ‘3등 할 줄 알았거든요….’ 이 말에 만감이 교차했다고.

 

실상은 이랬다. 아빠의 선거 운동을 제 나름대로 돕기 위해 막내 아이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박 후보의 명함을 나눠 주고 각자의 부모님에게 전달하면서 찍어 달라고 말해 줄 것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명함을 갖고 간 친구들이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막내 아이에게 전한 말들이 아래와 같이 부정적인 것들이 많아 내심 낙선은 물론이고 3등 하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단다.

 

 - 통합민주당이라 마음에 안 들어

 - 왼쪽으로 치우친 붉은 색이라서…

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앞잡이….

 - 힘 있을 때 잘했어야 하는데….

 

선거 운동기간 초반에 지역구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부모님 생각을 통해 생생한 판세를 읽고 있었던 막내가 선거결과를 보고는 생각보다 잘 했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내친 김에 다음에 또 도전해 보라고 격려까지 하는 마음은 큰 아이까지 비슷하게 이어졌다. 그러나 장모님과 아내는 ‘아이들이 뭘 알까?’하며 정치를 계속하는 것을 극구 말린다.

 

이후 거취에 관해 찬반이 2:2로 갈리자 마지막으로 누님의 의견이 중요한 변수가 된 셈이다. 기본적으로 누님은 반대의사를 표하고 싶지만 4군데서 점을 본 얘기를 하면서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여운을 남겨 두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단다.

 

가족들의 찬반 양론을 소개하면서 지지자들에게 밝힌 박 후보 본인의 생각은 이랬다. 다음 총선에 또 다시 나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기는 어렵지만 곧 다가올 통합민주당 전당대회서부터 뭔가 정치적인 역할을 찾아 기여를 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작은 미미하지만 장대한 끝을 보고 싶은 정치인의 길을 걸어가는 그가 발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밝은 모습 뒤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가족들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린다.

 

  ‘2등, 잘 했잖아요?’


태그:#박범계, #이상지, #대전서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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