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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 시랑헌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제 4월이 지나고 5월이 오면 
3월부터 심은 나무의 싹들이 자라 신들의 축복인 초록의 빛으로 
갈아 입을 것이다.
▲ 4월의 사랑헌 4월 초, 시랑헌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제 4월이 지나고 5월이 오면 3월부터 심은 나무의 싹들이 자라 신들의 축복인 초록의 빛으로 갈아 입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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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인한 달 4월

인간의 삶의 실체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티 에스 엘리엇(T.S. Eliot: 1888~1965)은 그의 장편시인<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지론에 의하면 ‘20세기 현대인들은 신이 원래 인간에게 내린 축복을 저버렸고,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고 발전시켜온 문명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들은 세상을 생명이 서식 할 수 없는 불모의 땅인 황무지로 만들었다. 따라서 현대인의 삶은 살아 있으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가사(假死) 상태를 오히려 원하는 현대의 주민들에게는 모든 것을 일깨우는 사월이 가장 잔인한달이라는 것이다.’ 그의 표현의 많은 부분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감나무를 갖고 싶었던 어린시절

내가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하고 장가갈 때까지 살았던 나의 집의 주소는 광주시 농성동 39번지이다. 우리집에는 과일나무가 한그루도 없었다. 집터는 68평으로 기억한다. 어려서는 그렇게 좁거나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찌 됐던 다른 과일 나무는커녕 감나무 한 구루도 집에 없었다.

우리집과 이웃하는 남길이네 집에는 단감나무가 몇 구루 있었고 9월이 되면 우리집 담을 넘어온 가지에 잘 익어 먹음직스런 단감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어린 동심을 유혹하였다. 남길이는 단감을 줄 테니 자기 집에 와서 놀자고 하였고 오후 늦게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단감을 내놓고 가라고 하면서 자기가 원할 때 까지 놀자고 억지를 부리면 할 수 없이 그 때까지 같이 놀아줘야만 했다.

어릴 때 아린 추억은 자연스럽게 나도 집을 갖게 되면 과일나무, 특히 감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소원(素願)을 갖게 되었다. 그 동안 아파트에서 살게 되어 그 꿈을 못 이루다 7년 전 계룡산 자락으로 이사 오면서 2그루 감나무(대봉)를 심어 5년이 지난 재작년에 30여개 따서 홍시가 되도록 겨울까지 기다렸다가 생각날 때마다 한 개씩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작년에는 아쉽게도 한 개도 달리지 않았다.

꿈을 실현하기 위한 늦은 출발

지리산 시랑헌에 몇 백 평 터를 만들 때부터 우선한 문제가 각종 과일나무를 심어 어릴 때부터 가져온 소원을 이루자는 생각이었다. 3월 하순 인터넷 종묘회사를 통해 부루베리, 오디, 감, 다래, 대추, 밤, 배, 복숭아, 비타민나무, 사과, 살구, 서양배, 으름, 복분자, 보리수, 체리, 유자 ,자두, 석류, 은행, 호두, 키위, 매실, 포도, 머루, 무화과, 앵두, 차나무를 주문하여 고루 갖춰 심었다. 반송과 주목 등 정원수로 필요한 여러 가지 나무와 장미, 목단, 작약, 붓꽃 등 구할 수 있는 화초도 함께 심었다.

식목일이 지구의 온난화 때문에 3월 말 정도로 앞당겨 져야한다는 말에 
3월 마지막 주말에 시랑헌 주변에 나무심기를 시작하였다.
▲ 나무심기 식목일이 지구의 온난화 때문에 3월 말 정도로 앞당겨 져야한다는 말에 3월 마지막 주말에 시랑헌 주변에 나무심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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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지막 주말에 심은 각종과일나무
적은 묘목들은 잘보이지 않지만 잔인한 달 4월도 
중순이 지나면 싹이터 신의 축복을 노래할 것이다.
▲ 과일나무 심기 3월의 마지막 주말에 심은 각종과일나무 적은 묘목들은 잘보이지 않지만 잔인한 달 4월도 중순이 지나면 싹이터 신의 축복을 노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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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집사람을 알고 있는 누구도 우리가 제대로 성숙시킨 과일 생산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집사람도 과일나무를 제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계룡산자락에서 3년 동안 수박과 참외를 생산해보고자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단 한개도 따먹지 못한 사실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와 집사람에게는 상품성 있는 과일을 수확하는 일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집터의 정원에 꽃이 피고 과일이 익어 가면 되는 것이고 우리는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해 나름대로 성의를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우리가 관여할 바도 또 관여해서도 안 되는 신의 영역쯤으로 치부해둔다. 우선은 그럴 것이다.

전 주말 토요일은 4월 5일 식목일이었다. 죽은 나무를 거꾸로 꽂아놔도 싹이 난다는 식목일이 지구 온난화 때문에 앞 당겨져야 한단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당면 과제가 가장 우선이고 자기 설움이 가장 크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구의 온난화에 따른 일기의 변화 때문에 우리도 피해를 입었다.

작년 10월 말까지 내리는 비 때문에 오두막을 지으면서 금전적 피해와 많은 심적 고통을 당했고, 고로쇠 수액을 채취해보겠다고 재료비와 인건비를 포함해서 75만 원 가량 투자했다. 경칩 전 후 환절기 날씨(일교차 15정도, 저녁에는 -4~-5도, 낮에는 10~15도)가 없이 하루 사이에 바로 따뜻한 봄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100말 정도 예상했던 고로쇠수액 채취량은 1/6 정도 되는 15말 정도 밖에 받질 못했다.

지인들에게 우리들의 농장에서 직접 채취한 고로쇠수액을 선물하겠다는 약속은 대부분 형식적이거나 공수표로 끝나고 말았다.

시랑헌 입구의 포장 공사를 다음 주 중에 시작할 계획이다. 전선이 도로를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고용한 권씨 아저씨와 지하 매설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 동기인 순천대학교에서 근무하는 노 교수가 그의 친구와 같이 시랑헌을 방문하였다. 저녁이면 대전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하던 작업을 중단할 수 없다. 점심이나 같이할 요량으로 집사람에게 그들의 차 대접을 맡겨 놓고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전선을 땅에 매설하기 위해서는 누전과 감전의 가능성을
고려해야한다. 그러므로 전선을 방수된 프라스틱 케이블에 
넣어 완전 방수 작업을 하고난 후 매설해야 한다.
▲ 매설용 전선 전선을 땅에 매설하기 위해서는 누전과 감전의 가능성을 고려해야한다. 그러므로 전선을 방수된 프라스틱 케이블에 넣어 완전 방수 작업을 하고난 후 매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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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교수는 그의 친구와 같이 시랑헌 터와 주변을 둘러보고는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는지 점심을 같이하자는 나의 권유를 굳이 사양하면서 서둘러 되돌아갈 차비를 차린다. 나의 손을 꼭 잡고 노교수는 “너무 많은 고생을 한다, 무리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인사말을 건네왔다.

나는 노교수의 “고생 한다”는 말에는 대답을 보류했으며, “무리하지 말라”는 말에는 “고맙다”고 답변했고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말에는 “행복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점심시간에 집사람은 나에게 노교수가 신신당부한 말을 전한다. 주말 별장용 오두막이라면 몰라도 이곳에 살집은 절대로 짓지 말라는 진정어린 충고를 해줬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노교수 생각에 동의한다고 했다.

시랑헌에는 앞으로 집을 짓는 일을 제처 놓고라도 도로포장을 비롯하여 아직 못 다한 석축, 성토, 배수로, 나무심기 등 추가로 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집사람을 비롯한 대부분 사람들의 눈에는 돈이요, 고생이고, 해볼 엄두가 안 나는 골치 아픈 문제들이다.

신의 축복을 지향하는 마음

그러나 나는 요즈음 읽고 있는 <가르왈 히말라야> 저자인 임현담씨의 '자연을 통하지 않고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갈 수 없다.'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T.S.에리엇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의 의미를 되새김 하면서 내가 지향하는 삶을 통해 신이 인간에게 내린 원래 축복의 실체를 경험하고 싶다. 그리하여 신의 축복 속에서 살고 싶다.

아침 출근길에 FM 라디오에서 우리들이 축복받은 시절에 즐겨 불렀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동요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곡을 들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내 어찌 산적해 있는 일들을 고생이라고 생각하면서 꽃동네를 만들 수 있으며, 참모습의 나를 찾아가는 일을 등한히 할 수 있겠는가? 이승에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나날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말이다.

3월 마지막 주말에 심었던 마가목 싹이 신의 축복을 받아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그 상을 바꿨다.
▲ 마가목 새싹 3월 마지막 주말에 심었던 마가목 싹이 신의 축복을 받아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그 상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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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골에서 살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을 소개합니다.



태그:#4월, #나무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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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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