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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한 달이 지나면서, 현 정부의 친재벌적 정책이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강도높은 기업 관련 규제폐지 지시에,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앞다퉈 규제완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재벌개혁의 상징인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가 올 상반기에 폐지되는 것을 비롯해, 금산분리 완화로 기업들의 은행 지배의 길도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해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 이른바 경제검찰 3인방의 핵심 권한인 기업관련 각종 조사 기능도 대폭 축소된다. 엄정하게 집행해야 할 기업 세무조사나 부당 내부거래 조사가 '친기업적'으로 바뀌면서, 자칫 기업의 탈법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선 이들 '경제검찰'이 이명박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시장경제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규율도 스스로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공정위] 어느 직원의 하소연, "내가 해온 것을 부정해야 하니까..."

 

"어쩔수 없는 거 아녜요. 위에서 (규제)없애고, (조사)줄이라면 그렇게 해야지. 내가 그동안 해온 것을 부정해야 하니까…"

 

공정거래위원회 한 간부급 직원의 말이다. 지난 1일 낮에 만난 그는 씁쓸하다고 했다. 이어 "맘에 안들면 옷을 벗든가, 아니면 머리를 뜯어 고쳐야지"라며 "내색은 안해도, 힘들어 하는 사람들 많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이름이나 직책 어느 것도 기사에 넣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출총제 폐지보다 공정위의 기업에 대한 직권조사 축소 등에 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대통령이 대놓고 공정위가 그동안 잘못했다고 하고, 우리 수장이 고개를 숙이는데..."라며 "조사 안 나가면 우리도 편하겠지만, 그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공정위가 내놓은 정책은 올 상반기 중 출총제를 폐지하고, 대신 재벌 스스로 출자 현황을 공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어 상호출자·채무보증 제한제의 적용대상 재벌도 자산 2조원 이상에서 5조원 정도로 완화하고, 지주회사 전환요건 중에서 부채비율(200% 이내)과 비계열사 주식 5% 이상 보유금지 조항도 없애기로 했다.

 

특히 기업의 규제완화에 따른 부작용과 폐해를 막기위해 필요한 사후 감시와 위법 행위에 대한 제재도 완화하기로 했다.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시립대 교수)은 "공정한 시장경제의 룰(규칙)과 규제를 전혀 구분 못하고 있다"면서 "공정위의 역할은 특정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독점을 막는데 있으며, 이는 선진국에서도 하고 있는 기본적인 규칙"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 '기업의 은행지배 허용'이란 위험한 발상과 규제 완화

 

금융검찰인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31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밝힌 내용 역시 대폭적인 금융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그동안 기업의 은행 지배를 금지했던 금산분리(정확히 말하면, 은산분리가 옳다) 방침도 크게 후퇴해 사실상 폐지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신 단계적으로 기업들의 은행 소유 길을 열어줄 방침이다.

 

게다가 금융위가 앞으로 비은행 지주회사가 비금융회사(제조업)를 소유할 있도록 관련 제도를 바꾸겠다고 밝히자, 시민사회단체 등은 "특정 재벌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금융위가 자회사 소유규제를 등을 사실상 전면 폐지하는 등 금융지주회사의 제도 취지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어 "비은행지주회사의 제조업 허용은 사실상 삼성그룹을 위한 것"이라며 "삼성이 기존 규제를 피하면서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최근 삼성 비자금 사건을 보더라도, 국내 금융기관의 건전성이나 투명성 문제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같은 상황에서 금산분리 완화는 일부 소수 재벌에게만 은행 소유의 길을 열어줄 가능성이 크며, 이에 따른 폐해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세청] 친기업 세무조사와 함께 본청 조사국 축소 검토

 

또 하나의 '경제검찰'인 국세청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한상률 국세청장은 올 1월 신년사부터 "경제활성화를 위한 친기업적 세정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선 기업 투자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정기 세무조사를 대폭 줄이고, 세무조사 방식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현 정부가 내세운 '일자리 300만개 창출'을 위해 가능한 모든 세정 지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작년 11월 노무현정부 말기에 임명됐던 한 청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그대로 다시 기용됐다.

 

한 청장의 이같은 '이명박 정부 코드 맞추기'에 따라, 그동안 국세청의 핵심으로 여겨져 온 조사국의 위상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일부에선 본청 조사국을 크게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본청 조사국의 업무를 서울지방국세청 등 각 지방청의 조사국으로 임무를 대폭 넘길 것이라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본청 조사국은 그동안 세무조사 기획이나 대기업을 비롯한 각종 탈세정보를 수집해온 국세청의 핵심 조직이었다.

 

하지만 국세청의 이같은 친기업적 세무조사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그리 곱지 않다. 최영태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은 "세무조사는 '조세정의'를 위해 국세청이 불편부당하게 엄정하게 집행하면 된다"면서 "친기업적 세정이라는 이유로 자칫 기업들의 탈세 등 불법을 부추길 경우, 오히려 성실하게 세금을 낸 기업인들이 피해를 볼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국세청이 현 정부의 '친재벌' 코드에 맞춰 스스로 조세정의의 엄정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그:#이명박, #공정위, #금융위, #국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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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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