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경기해라" 인천 유나이티드 2군과의 경기 전 경찰청 축구단 박대제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경기해라" 인천 유나이티드 2군과의 경기 전 경찰청 축구단 박대제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 이성필


출전 선수 명단을 손에 쥔 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들었다. 뽀얀 연기가 허공으로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국민과 가까워지는 경찰이라는 이유로 주변지역 조기축구회 등에는 운동장을 빌려주면서 정작 우리는 단 한 번도 잔디를 밟아보지 못했어요. 맨땅을 전전하며 연습하는데 모든 경기는 잔디에서 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경기를 치르면 선수들이 너무나 힘들어하더군요."

'병역 의무' 해결, 경찰청 축구단의 존재 이유

1980년대 중반 한일은행 축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경찰청 축구단 박대제(50) 감독의 목소리는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조금이라도 선수들에게 더 신경 써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지난 27일 오후 인천 문학월드컵보조경기장,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프로축구 2군 리그 경기에서 박대제 감독은 경찰청 축구단이 처한 현실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K리그에 참가하는 광주 상무처럼 1년에 절반의 선수가 교체되는 관계로 팀워크가 잘 맞지 않는다"면서 "군 복무 해결을 위한 팀의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조금만 더 좋은 여건이면 즐겁게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경찰청 축구단은 지난 1996년 3월 '선수들의 군 복무 해결', '우수선수 발굴', '국민에 친근한 경찰 이미지 제고'라는 목적으로 창단했다. 이 중 군 복무 해결은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의무경찰로 입대해 4주간의 군사기초훈련과 3주간의 경찰 기본교육을 수료한 뒤 선수로 배치, 2년간 복무 후 전역하게 된다.

창단 2년 만에 경찰청 축구단은 추계 실업축구연맹전에서 준우승을 하며 강팀으로 급부상했다. 이후 2002년 현재 내셔널리그 부회장으로 있는 김기복 전 감독과 코치로 있던 박대제 감독의 지도력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같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 가지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청 축구단은 경찰대학 산하에 '무궁화 체육단'이라는 부설기관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숙소도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경찰대학 내에 있다. 선수들의 관리는 경찰청에서 하고 프로축구연맹에서는 감독, 코치를 임명해 '파견'하고 각종 용품을 지원해준다. 선수는 스물다섯 명 정도를 유지한다.

경찰대학 내에는 잔디구장과 맨땅구장 각 1면이 있다. 하지만, 잔디관리와 대민서비스 차원에서 운동장을 관리해 경찰청 축구단은 주로 맨땅에서 훈련한다. 이 때문에 2군 리그에서는 항상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기 일쑤였다. 다른 전·의경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특별 휴가나 포상은 없다.

그래도 평생 운동만 해 온 선수들에게 경찰청 축구단 창단은 단비 같은 일이었다. 현역으로 입대하는 것은 경기 감각을 잃는 것과 동시에 목숨 걸고 운동에 매진한 인생을 접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내셔널리그 수원시청 소속이었던 경찰청의 김동진 선수는 "선수로 복무하면서 축구를 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는 소감을 털어놨다.

썰렁한 2군 경기의 활력소 경찰청 축구단 파란색 유니폼 상의의 경찰청 축구단이 인천 유나이티드 2군과 경기를 하고있다.

▲ 썰렁한 2군 경기의 활력소 경찰청 축구단 파란색 유니폼 상의의 경찰청 축구단이 인천 유나이티드 2군과 경기를 하고있다. ⓒ 이성필


전·의경제도 폐지 계획으로 경찰청 축구단의 미래는 흐림

병역비리로 몸살을 앓던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축구단을 모델 삼아 지난 2006년 경찰청 야구단을 창단을 지원해 선수들의 군 복무를 해결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경찰청 축구단을 만들었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며 "프로 2군 리그에 참가해 경기감각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선수들의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국군체육부대(광주 상무)로 한정됐던 통로를 넓힌 것이 축구계 전체를 봐도 큰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7년 2월 참여정부의 '비전 2030 인적자원 활용' 계획에 따라 전·의경, 경비교도, 의무 소방 등 대체복무제도를 201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발표는 경찰청 축구단 존립에 위기를 불러왔다.

경찰청의 이러한 상황은 올해로 광주광역시와 연고지 계약이 만료되는 광주 상무의 문제와도 맞물린다. '병역 이행'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팀들의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면 선수들의 병역문제 해결 자체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모 프로구단 관계자는 "광주 상무야 어떻게든 K리그에 유지되겠지만 경찰청 축구단이 폐지되면 우수 선수들이 사장 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상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통 3대 1 정도의 경쟁률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탈락한 선수들 중 원소속팀에서 최소 60% 이상의 경기소화를 기준으로 인·적성 검사, 면접 등을 거쳐 경찰청 축구단에 입대하게 된다. 프로선수 위주로 뽑는 상무와 달리 경찰청은 대학, 실업, 프로 등 군 복무를 해결하는 선수들에게 모두 개방되어 있어 더욱 치열하다. 폐지되면 아마 선수들의 병역해결 통로까지도 봉쇄되게 된다.

현재 내셔널리그, K3리그 등에 병역특례구단에 산업기능요원 형식으로 복무할 수 있는 구단들이 있지만 일과 운동을 동시에 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대표급 내지는 잠재적 가능성이 큰 선수들을 발굴하는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

박대제 감독 "선수들에게는 경기를 하는 것 자체가 좋은 일"

박대제 감독  8년 간 경찰청 축구단의 감독으로 수 많은 선수들 보듬었던 박대제 감독은 선수들의 병역 의무 통로로 축구단이 계속 존재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 박대제 감독 8년 간 경찰청 축구단의 감독으로 수 많은 선수들 보듬었던 박대제 감독은 선수들의 병역 의무 통로로 축구단이 계속 존재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 이성필

한 가지 희망은 새로 경찰청장에 임명된 어청수 청장이 전·의경 제도의 폐지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청수 청장은 지난 1월 경찰청장 내정자 신분으로 임명제청 동의안 처리를 위한 경찰위원회 임시회의에 출석해 "전·의경을 완전히 폐지하기보다 향후 치안 수요를 감안해 1만5000∼2만 명 정도는 남겨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박 감독은 "제도 변화에 대해 뭐라고 할 위치가 아니다"면서 "하지만, 분명하게 말해 둘 것은 입대한 선수들은 한 단계만 올라서면 좋은 선수들이다. 1군에 못 뛰어 좌절하고 온 선수들이라 조금만 힘을 불어넣어 주면 복무하고 나가서 큰 활약을 할 수 있다"며 경찰청 축구단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올 시즌 대전시티즌 김호 감독의 조련으로 전북과의 경기에서 첫 골을 터트린 장신 공격수 박성호나 고종수와 함께 미드필드의 핵으로 자리한 이여성, 이성운 등은 박대제 감독이 자랑하는 선수들이다. 이들 외에도 김병지, 이운재에 가려 자주 출전하지 못하지만 다른 팀에 가면 바로 주전이 가능한 FC서울의 원종덕, 수원 삼성의 김대환 골키퍼도 경찰청을 거쳐갔다.

이날 인천 2군과의 경기는 거칠게 이어진 끝에 2-1, 경찰청의 승리로 돌아갔다. 프로구단처럼 승리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무처럼 승리 시 특별외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승리에 대한 기쁨은 똑같았다.

박대제 감독은 "성남, 수원, 서울 등 강팀에 같이 껴서 좋은 성적을 노릴 처지는 아니지만 선수들에게는 경기를 하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라고 표현한 뒤 인근 목욕탕으로 선수들을 이끌고 운동장을 떠났다. 8년째 군 복무를 해결하는 선수들을 지켜봤을 그의 머릿속에 경찰청 축구단의 미래가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해진다.

경찰청 축구단 박대제 감독 병역 의무 K리그 이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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