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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서 유권자들과 악수하는 무소속 최연희 후보. 4선에 도전하는 그는 멀찌감치 1위를 달리고 있다.
▲ 최연희 후보 장터에서 유권자들과 악수하는 무소속 최연희 후보. 4선에 도전하는 그는 멀찌감치 1위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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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한나라당 정인억 후보. 한나라당 프리미엄을 그가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 정인억 후보 북평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한나라당 정인억 후보. 한나라당 프리미엄을 그가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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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 혹은 4개 이상 행정구역이 한 선거구로 묶여있는 지역은 선거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동해와 삼척은 2개 시가 한 선거구이고 영월·평창·정선·태백은 1개 시와 3개 군이 한 선거구로 묶였다. 철원·화천·양구·인제는 4개 군이 한 선거구, 속초·고성·양양은 3개 군이 한 선거구다.

유권자는 얼마 되지 않지만 면적은 대도시 선거구보다 크다. 그래서 어떤 지역은 방문하는데 8시간이나 든다. 대도시는 지나는 곳마다 번화가니 다니는 자체가 선거운동이 되지만 이들 지역은 한참을 가야 마을이 있고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동 거리와 투자시간 대비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 지역 선거운동은 장날이 대목이다. 장날에는 산골짜기 흩어져 살던 이들이 한곳에 모여 안부도 묻고 계도 한다. 3선의 최연희 후보와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정인억 후보 간 대결이 관심을 모으는 강원도 동해 삼척 선거구. 28일의 북평, 29일의 도계장날은 그 넓은 땅에 흩어져있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날이다. 묵호항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그 현장을 취재했다.

4명의 후보 출마... 시큰둥한 유권자들

묵호항 옆에서 대게와 가리비 등 수산물을 도소매로 팔고 있다.
▲ 대게와 가리비 건어물 도소매상 이유경씨 묵호항 옆에서 대게와 가리비 등 수산물을 도소매로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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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항 옆에서 대게와 바지락 건어물을 도매하는 이유경(41)씨를 만났다.

"누가 나왔는지도 잘 모른다"는 게 첫 마디다. 지금까지 투표는 다 했지만 이번에는 공천이 늦어져 어떤 사람이 출마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길을 가다 현수막 걸린 것 보면 처음 나온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소주방을 운영하는 정광수씨는 "연고 있는 사람은 금방 알겠는데 처음 보는 사람은 낯설다. 최연희 의원은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기자나 정치인들에게 동해 삼척 선거구는 관심거리일지 모르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동해 삼척 선거구에 등록한 후보는 모두 4명. 참여정부 국가균형발전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묵호항 재개발추진위원회 결성 등 지역현안해결에 앞장서온 통합민주당 한호연(42) 후보는 동해시와 삼척시의 통합을 외치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등 전통적 야당 지지세력을 모으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9대1의 경쟁끝에 공천장을 받은 정인억(55) 후보는 글로벌 경력을 갖춘 경제 전문가라는 것을 부각시키면서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민들의 표심 붙잡기와 공천과정에서 갈라진 한나라당세 결집에 주력하고 있다.

평화통일가정당 정문기(41) 후보는 해양문화 관광레저 도시 구현의 공약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무소속의 최연희(63) 후보는 12년간의 의정활동과 지역의 대소사를 빠짐없이 챙기면서 다진 지지를 기반으로, 중진의원이 지역발전을 계속해 이끌겠다는 재목론을 펴고 있다.

난데없는 비에 후보가 사라졌다

무소속 최연희, 한나라당 정인억, 통합민주당 한호연 후보 등 60명이 넘는 세 후보 진영 운동원들이 좁은 장터를 누비고 다녔다.
▲ 선거운동원들 무소속 최연희, 한나라당 정인억, 통합민주당 한호연 후보 등 60명이 넘는 세 후보 진영 운동원들이 좁은 장터를 누비고 다녔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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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북평장터. 가는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비가 오락가락한다. 장터 북쪽 입구에는 한나라당 정인억 후보의 유세차가 좋은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

유세차량의 확성기 소리가 커지면 값을 흥정하는 상인과 손님의 얼굴은 더욱 가까워지고 목소리가 커진다. 어떤 이들은 돈을 내보이면 제 값만큼 뽑아간다. "장사도 못하게 왜 하필 여기 와서 저 난리야" 하는 짜증석인 목소리도 튀어 나온다.

정 후보는 주변상인과 행인들에게 명함을 돌리고는 유세차량에 올라섰다.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경제를 살리겠다, 9대1의 경쟁에서 공천을 받은 능력있는 후보다, 경제전문가로서 지역발전을 앞당기겠다"고 소리를 높인다. 연설이 끝나갈 무렵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큰 비로 변했다. 상인들의 비가림 천막에서는 길바닥으로 물벼락이 떨어지고 우산끼리 부대낀다.

장터 남쪽 끝에 있다는 무소속 최연희 후보를 향해 빠른 걸음을 옮겼다. 없다. 장터를 반 바뀌 돌아도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했더니 비가 많이 와서 철수 중이란다. 선거운동 하는 사진을 찍었으면 한다고 했더니 사무실에 들어가 방송토론회를 준비해야 한단다. 어쩔 수 없다. 내일은 도계장터를 방문할 예정이란다. 동해 시가지로 들어서니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비가 많이 온 흔적도 없다. 다른 후보자들에게 전화하니 한결 같이 케이블과 지역방송 토론준비로 바쁘다고 한다.

도계읍 사무소 다리 왼쪽에 9일 장이 선다. 한호연 후보와 최연희 후보가 봉고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유세차량을 펼쳤다. 읍사무소 앞에는 평화통일가정당 유세차량이 제일 먼저 자리를 잡았다.
▲ 도계장터 도계읍 사무소 다리 왼쪽에 9일 장이 선다. 한호연 후보와 최연희 후보가 봉고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유세차량을 펼쳤다. 읍사무소 앞에는 평화통일가정당 유세차량이 제일 먼저 자리를 잡았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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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9시 강릉에서 도계로 출발했다. 빗줄기가 제법 거세다. 망상에서 최연희 후보자에게 확인전화를 했다.

"비가 많이 오는데 일정은 변함없습니까?"
"비가 와도 가야죠."

오후 1시 30분에 유세를 한단다. 동해시를 거쳐 삼척시 도계읍을 가는 길은 구불구불 2차선 도로다. 산이나 강을 한 구비 돌아야 마을이 있는 곳. 다니는 차마저도 뜸하다. 도계는 삼척시와 태백시의 경계가 되는 통리재 밑에 있는 읍이다.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릴 때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곳이다.

장터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에 서둘러 도착하니 통합민주당 한호연, 평화통일가정당 정문기후보의 유세차량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다. 최연희 후보의 운동원도 무리를 지어 다닌다. 60명이 넘는 선거운동원이 총동원되어 장터를 누비니 행인보다 많다.

"이혼율이 가장 높은 나라, 노인들 자살률이 가장 높은 대한민국. 가정이 잘 돼야 나라가 바로 선다."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가벼운 나라, 1%의 잘사는 사람만을 위한 정당. 오징어 20마리를 썰어야 1만원 번다."

운동원들의 율동에 흥이 난 할머니. 장사를 하다 말고 일어서서 춤을 춘다.
▲ 운동원의 율동에 신이 난 할머니 운동원들의 율동에 흥이 난 할머니. 장사를 하다 말고 일어서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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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가정당과 통합민주당의 선거방송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깡통에 불을 피워두고 둘러 앉아 토란과 란·달래 쑥을 파는 세 할머니가 있다. 89세 이씨 할머니는 선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누구 싸움 붙일 일 있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사람 있을 거 아니요"라며 속내를 터놓으라니 버럭 소리를 지른다.

좁은 지역에서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이라 누가 좋다 나쁘다 드러내놓고 말 할 수 없단다. 사돈의 팔촌이라도 연고를 찾아야 지지해 달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낮선 객한테 호불호를 할 수는 없는 일. 상인들의 입은 더 굳게 잠겼다.

동해 삼척에서는 최연희가 여당 후보?

소일을 위해 장터를 찾는다. 선거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 통리에 사는 89세의 이씨 할머니 소일을 위해 장터를 찾는다. 선거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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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희 후보가 주자장 입구에 들어섰다. 경찰차도 눈에 띈다. 선관위직원 교통경찰 사복차림의 정보과 직원. 우산을 든 사람들이 반갑게 악수를 하며 모여든다.

연설원이 'SBS와 조선일보의 여론조사 결과와 지역신문의 여론 조사를 비교해 최연희 의원이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말마다 지역에 내려와 경조사를 챙기는 등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고 소리를 높인다.

25일 조선일보와 SBS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4.4% 포인트. 평균응답률은 22.4%.)에 따르면 최연희(무) 후보가 35.4%로 정인억(한) 19.8% 한호연(민) 5.6%에 앞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 제17대 총선에서 최연희 의원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안호성(열린우리당), 곽병렬(자유민주연합), 김진주(민주노동당) 후보와 대결에서 얻은 득표율 54.7%에는 크게 못미치는 지지율이다.

17대 총선 득표율 54.7%에서 이번에 조사된 지지율 35.4%를 빼면 19.3%로 한나라당 정인억 한나라당후보의 지지율 19.8%와 0.5% 차이가 난다. 이를 두고 지역 정가에서는 최연희 후보에 대한 고정적 지지층과 한나라당 지지층이 명확히 갈라졌다는 평가와 지역 유권자가 13만2757명(17대국회의원선거 기준) 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벌어지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마이크를 잡은 최연희 후보는 "도계에 오면 마음이 푸근하다, 막장에 세 번 들어갔다 나왔다, 성추행 문제는 방송토론에서 충분히 해명했다, 강원대학교 도계갬퍼스 유치와 LNG인수기지 유치를 했으니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다시 선택해달라"고 말한다.

연설을 끝낸뒤 연단에 다시올라가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선거운동으로 불편을 겪었을 상인들을 위해 물건을 좀 사가지고 가라"고 해 박수를 받았다. 자신은 수행원에게 점퍼를 사줬다.

동해 삼척 선거구에서는 최연희 후보가 여당 후보다. 연설이 끝나자 교통경찰도 선관위도 정보과 형사도 자리를 떴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이가 찾아와서 인사를 한다.
▲ 한호연 후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이가 찾아와서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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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희 후보 운동원들이 떠나자 통합민주당 한호연 후보가 연설을 시작했다. 최 후보의 연설을 모두 들었다고 말문을 연 뒤 석탄산업이 활황이던 때 자신의 처가 이 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고 연고를 강조했다.

"4선을 해도 무소속인 최 의원은 일을 할 수 없다, 한나라당 복당도 안 된다, 여기자 성추행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것인 만큼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이어서 "정치는 젊은 자신에게 맡기고 집에서 쉬라"고 쓴소리를 했다.

"생선이 한 무더기에 오천원, 오~천원." 생선 장수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야채를 팔던 아주머니는 난로를 손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깔고 앉았던 깡통의 뚜껑을 열고 초를 새로 넣었다. 깡통 옆에 몇 개의 구멍을 뚫고 철판을 씌우고 박스조각을 얹으면 따뜻한 난로가 된다.

선거운동원과 유세차량이 모두 떠난 장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덧붙이는 글 | 최원석 기자는 자전거포(http://www.bike1004.com)를 운영하며 강원 영동지방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태그:#격전지, #최연희, #동해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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