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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산 산꼭대기 아이스케키 행상 선운산 천마봉과 낙조대 사이 산꼭대기에서 아이스케키를 파는 문씨, 그는 밝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목소리도 구성지게 "아이스케키!" 하고 외치는 소리가 정말 정겹고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모습이었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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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 아니 선운산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우와! 놀랍다, 여긴 옛날에 신선이 살았던 곳인가?"

 

일행들이 감탄과 함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진흥굴, 장사송과 도솔암을 지나 내원궁에 오르면서부터였다.

 

모두 선운사에는 몇 번씩 다녀간 경험이 있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선운사까지만 들렀다 간 것이 대여섯 번은 될 것이다. 그런데 이곳 도솔암과 내원궁은 하나같이 모두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난 21일 부안 변산을 등산하고 내소사를 들러 선운사 입구 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지낸 우리 일행은 지난 22일 아침 일찍 선운산을 찾았다. 전에 몇 번씩 둘러보았던 선운사는 내려올 때 둘러보기로 하고 먼저 산에 오르기로 한 것이다.

 

일주문 앞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은 "그냥 곧장 올라갔다가 내려오라"고 아주 쉽게 길을 가르쳐 준다. 그가 가르쳐 준 길이 제1코스였다. 나머지 2, 3, 4 코스는 모두 봄철 입산금지 구역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운사 돌담길을 지나치자 곧 녹차밭이 나타났다. 오른편 산비탈의 밭은 별로 보잘 것 없는 작은 밭이었다. 그러나 왼편 개울 건너 녹차밭은 제법 넓은 면적에 가지런하게 가꾸어 놓은 풍경이 여간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 산길은 길옆이 온통 꽃무릇 천지다. 저 꽃무릇들이 꽃을 피우면 선운산 골짜기는 온통 붉은 꽃으로 뒤덮일 것이다. 개울가에는 수백 년씩 늙은 고목들이 뿌리를 온통 드러내 놓고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빗물에 씻겨나간 둑길이 파여 나가서 나무들 뿌리가 드러난 것이다.

 

개울둑을 보수하여 뿌리를 덮어주지 않으면 오래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다른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귀엽게 생긴 딸과 함께 우리보다 먼저 올랐다가 내려오는 40대 남자가 우리들에게 자세한 길 안내를 해주고 내려간다.

 

도솔암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전에 몇 번 왔을 때는 이 길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저 선운사까지만 들렀다 갔으니 말이다. 개울을 왔다갔다 두 번 건너자 눈앞에 정자가 나타났다. 도솔정이다.

 

그런데 그 앞길 건너에 정말 귀공자처럼 보이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우리에게 손짓한다. 다가가 보니 천연기념물 354호인 장사송이다. 수령이 600년이 넘었다는 이 장사송은 일반 소나무가 아닌 반송이었다. 이 나무에는 남편을 기다리다 숨진 한 여인의 슬픈 전설이 깃든 나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 장사송 참 대단하다. 나이가 600년이 넘었다는데 아직도 청년나무처럼 싱싱하고 씩씩한 모습이잖아?"

 

정말 그랬다. 600년이 넘었으면 분명히 고목인데 이 나무는 너무 건강하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청년나무라는 말이 정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 옆 산자락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는 모습이 신기한 모습이다. 신라 진흥왕의 전설이 숨어 있는 진흥굴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작은 불단이 차려져 있었다. 굴의 모습은 천연동굴이 아닌 인공굴처럼 보였다.

 

밖으로 나오자 앞쪽 언덕에 기와집 한 채가 바라보인다. 도솔암인가 하고 부지런히 올라가 보니 도솔암 찻집이다. 그런데 집 앞에 알쏭달쏭한 글 한 구절이 발길을 붙잡는다.

 

"오, 자네 왔는가.

이 무정한 사람아.

청풍에 날려 왔나. 현학을 타고 왔나.

자네는 먹이나 갈게, 나는 차나 끓임세."

 

정과 낭만이 뚝뚝 묻어나는 글이어서 금방 발길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다른 일행들이 앞서 걷고 있으니 뒤따를 수밖에.

 

도솔암은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암자라고는 해도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극락보전은 조용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안을 살펴보니 불교신자인 일행 한 사람이 어느새 안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있었다.

 

마당 가운데는 두 그루의 낯선 나무가 서 있어서 마침 마주친 보살에게 무슨 나무냐고 물으니 이름표를 보란다. 그런데 나무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발길을 돌렸다. 들어올 때 보았던 왼편의 날아갈 듯 멋진 작은 건물이 자꾸만 손짓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건물은 역시 도솔암의 부속건물인 나한전이었다. 나한전 뒤쪽의 붉은색이 도는 바위절벽에는 미륵장륙마애불이 새겨져 있었다. 그 옆에는 아름다운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서 마치 마애불지킴이처럼 보인다.

 

다시 돌아 나오니 나한전 뒤쪽의 절벽으로 오르는 입구에 장난감처럼 예쁜 모습인 문 하나가 서 있다. 내원궁 입구 문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허위허위 올라서는 순간 아! 이런 멋진 경치가 어디 또 있을까?

 

"우와! 이 절벽 위에 이런 경치가 숨어 있었다니."

"여긴 옛날 신선이 살던 곳인가 봐?"

 

뒤따라온 일행들이 놀라운 탄성을 터뜨린다, 내원궁의 경치는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운 절경이었다.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내원궁의 풍경은 말할 것도 없고, 골짜기 건너 맞은편의 천마봉과 골짜기의 기암괴석 단애가 누가 뭐래도 천하의 절경이라는 말에 손색이 전혀 없는 풍경이었다. 이런 곳을 이제야 와 보다니, 모두 지난 몇 번의 선운사만 보고 간 것이 후회가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그 황홀한 경치에 취해 내원궁에서 20여 분을 머무른 다음에야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골짜기를 따라 용문굴로 향했다. 골짜기를 따라 오르며 바라보는 풍경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길가의 바위절벽은 변산 바닷가의 채석강을 연상시키는 모습도 있었다.

 

용문굴은 용처럼 생긴 바위가 기다랗게 드러누운 밑으로 길이 뚫려 있었다. 용문굴을 통과하여 천마봉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고 쉬웠다. 능선을 오르며 바라본 풍경이 시원하다. 전망이 탁 트여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막을 잠깐 오르자 낙조대다. 낙조대 바위 앞에는 드라마 <대장금> 촬영장소라는 안내문과 함께 '최상궁이 뛰어내려 자살한 곳'이라는 글도 쓰여 있었다. 낙조대를 조금 벗어나자 저 앞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스케끼!"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소리가 분명해졌다. 그런데 이 산꼭대기에서 아이스케키라니. 주인공은 미남형의 깔끔한 얼굴을 한 남자였다. 우리가 다가가자 그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선운산에 대한 안내를 한다.

 

나이가 53세라는 문아무개씨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선뜻 밝히며 사진도 찍으라고 선선히 응한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그는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다. 따뜻하고 친절한 문씨 모습에 반하여 일행들이 모두 아이스케키를 한 개씩 사서 입에 문다. 이날 날씨가 포근하여 맛이 매우 좋다고 한마디씩 떠들어대는 일행들과 함께 웃음꽃을 피우는 천마봉 산 위의 아이케키 행상 문씨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천마봉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가히 절경이다. 맞은편의 내원궁과 산 아래 도솔암, 그리고 용문굴 쪽의 바위산과 절벽이 환상적인 풍경으로 다가왔다. 멀리 바라보이는 뾰족한 봉우리도 그렇고, 낙조대 건너편의 배멘바위로 가는 봉우리의 기다란 사다리의 모습도 아주 특별한 풍경이었다.

 

내려오는 길도 사다리와 계단길이어서 어렵지 않았다. 다시 도솔암을 거쳐 선운사로 내려가는 길가의 안내판도 색다르다.

 

화살표지와 함께 '차 다니는 길, 사람 다니는 길' 얼마나 정다운 표지 글인가. 대개 차도, 인도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차 다니는 길, 사람 다니는 길' 이라니 작은 표지판 하나가 사람들의 정다움을 더해주는 모습이었다.

 

내려오는 길에서는 마주 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토요일이어서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수없이 골짜기를 따라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운사에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 모두 위로 산을 향하여 오르기만 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한 선운사는 뒤편 산자락의 수천그루 동백나무들도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아 푸른 빛깔만 더했다. 대웅전 양옆 처마 밑에 서 있는 배롱나무는 매끈한 몸매가 제멋대로 뒤틀린 모습이 또 다른 멋진 모습이었다.

 

동백나무보다 먼저 꽃을 활짝 피운 산수유 몇 그루가 오히려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모습도 정다웠다. 산사를 돌아나와 주차장에 이르니 관광버스 30여 대가 대형차량 주차장을 메우고, 승용차 수백 대도 역시 소형차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내원궁, #도솔암, #천마봉,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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