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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시민들 반응이 어떻습니까?

이재오 후보 : (활짝 웃으며) 좋지!

기자 : 후보님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불호가 분명한 것 같은데요?

이 후보 : (멋쩍은 표정으로) 선거라는 게 다 그렇지, 뭐….

 

당 내분의 소용돌이를 거쳐 결국 18대 총선에 출마한 이명박 정권의 '실세'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선거운동이 시작된 27일 오전 6호선 연신내역에서 만난 그는 여유를 보이려고 애썼다.

 

이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은 선거운동 첫날부터 후보들의 유세 열기로 불을 뿜었다.

 

그에게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3주 전 도전장을 낼 때만 해도 이 후보의 우세를 점치는 기류가 강했지만, 거듭되는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이 후보를 큰 격차로 앞서자 은평을이 순식간에 화제의 지역구로 떠올랐다.

 

오전 5시 성일감리교회 새벽기도회를 시작으로 선거운동에 돌입한 이 후보가 손을 내밀자 대다수 시민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기자가 몇몇 사람을 쫓아가서 이 후보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니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요즘 오만해졌다는 소리 듣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 동안 야당의원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는데, 이제 여당의원 됐으니 한번 밀어줘야 되지 않나 싶어요."

 

"한나라당이 여당 되고 나니 저분도 영 아니더라. ('당이 문제냐, 후보가 문제냐?'고 묻자) 지금 한나라당이 이재오 아니냐? 대통령 바꿔놨더니 다 똑같은 놈들이더라."

 

이 의원이 연서시장 내의 한 침구점에 들어서자 한 유권자가 당내 현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평소 이 후보는 기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얼굴을 찌푸리고 입을 꾹 다무는 시늉을 하는데,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 유권자에게 똑같은 대접을 할 수는 없다.

 

- 왜 하필 당신이 악역을 맡은 거요? '이재오 의원에게 실망했다'는 얘기가 많이 나와요.

"아니, 내가 공천심사 위원도 아니었는데 왜 자꾸 내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의원의 얘기는 이어졌다.

 

"우리 쪽(이명박계)을 보세요. 박희태·이재창·안택수·권철현·정형근·권오을 등 이렇게 쟁쟁한 3선 의원들이 줄줄이 나갔잖아요? 저쪽(박근혜계)은 김무성 하나 밖에 없어요."

 

- 매스컴에는 이 의원이 그런 일을 다 했다고 나오니까….

"언론에도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수없이 나갔죠! 그렇게 보도돼도 사람들이 안 믿으니까…."

 

이 의원은 "좀 도와주소. 은평뉴타운이 하늘에서 떨어졌소? 이재오가 다 하지 않았소?"라며 거듭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연신내 사거리 유세에서도 "제가 이 거리를 2100번 다닌 사람"이라며 "집권여당의 힘 있는 이재오만이 지역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고 '토박이론'을 설파했다. 지역구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문국현 후보에 대한 공격도 빼놓지 않았다.

 

"이 지역을 모르는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면 지명 외우다가 4년을 다 보낼 겁니다. 그 사람은 이명박 대운하만 반대하면 당선될 것으로 착각하는데, 대운하는 은평구의 공약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친환경 친인간의 문화도시를 만들겠습니다."

 

대선 때 그 많던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러나 이 의원을 취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선거운동에 방해가 된다"는 핑계로 기자들을 물리쳤다.

 

"선거라는 게 유권자의 시선이 후보에게 집중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다니면 도움이 안 돼요. 사진도 충분히 찍은 것 같으니 이제 돌아가게."

 

시장 침구점에서 유권자들과 얘기하는 동안 기자들이 밖에서 기다리자 그는 보좌진에게 "기자분들에게 커피 한 잔씩 주고 오늘 취재는 여기서 끝내라고 하라"고 지시하는 등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 의원 측이 전날 배포한 유세일정을 보고 현장 취재를 나온 기자들로서는 그의 '프레스 언프렌들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사자가 취재를 반기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할만 하다. 서울시는 작년 12월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에게 53.2% 대 24.5%의 격차로 완승을 거둔 곳인데, 이번 총선에서는 이 후보가 자신의 선거구에서 문국현 후보에게 열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이재오계'로 불리는 정치신인들이 서울에서 대거 공천을 받았는데, 정작 그 자신이 낙선의 위기에 몰린 대목이 흥미롭다.

 

여론조사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 의원은 최후의 승리를 자신하고 있지만,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그의 '포용력 부재'를 질타하는 사람들이 지지 의사를 유보하고 있다.

 

침구점에서 이 의원에게 까다로운 질문을 했던 이경연(부동산 컨설던트)씨는 기자를 만나 지역구의 미묘한 표심을 이렇게 전했다.

 

"은평을은 15~16대 총선만 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마하더라도 이기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이 후보 지지세가 강한 동네였어요. 17대 총선에서는 이 후보가 탄핵 역풍 때문에 열린우리당 송미화 후보에게 거의 질 뻔 했는데, 박근혜 전 대표가 3차례나 찾아온 덕에 간신히 이길 수 있었죠.

 

내가 '이 의원이 도움을 받았던 만큼 박근혜쪽 사람들을 품었어야 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이 후보는 '나는 그쪽 사람들에에 할 만큼 했다'고 합디다. 하지만 당의 화합이 안 되는 걸 보니 전통적인 지지자들도 '정치가 아무리 아사리판이라도 너무 의리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동석한 전진환(은퇴)씨도 "한나라당이 다시 살아나려면 박근혜 전 대표가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문국현 "서울에서 한 지역에 오래 살았다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

 

한편,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문국현 후보는 차분하게 바닥 표심 훑기에 나섰다.

 

문 후보측은 출마선언 3주 만에 '문국현 바람'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지만, 막강한 조직력을 갖춘 이 후보의 맹추격을 예상하고 있다.

 

문 후보의 김동규 대변인은 이 의원의 '지역구 토박이론'에 대해 "서울에서 한 지역에 오래 살았다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 서울 27개 구중에서 가장 낙후된 은평구에는 지금 문국현 같은 '히딩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국현 캠프의 한 관계자는 "대선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여당 실세와의 대결인 만큼 '제2의 대선'을 치르는 심정으로 뛰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문 후보는 "변화에 대한 열망, 특권층 배 불리는 경제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가 있다"며 "총선 승리로 밀어붙이기 정책의 대표작인 대운하를 심판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은평을 선거가 양대 거물의 각축전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통합민주당 송미화 후보도 뒤늦게 추격전에 들어갔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오 후보에게 2.1% 차이로 분패한 송 후보(43.1%)는 23일 KBS와 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서는 불과 3.9%의 지지율을 올리고 있다. (문국현 48.5%, 이재오 28.6%,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 포인트)

 

지난 총선에서 송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반(反)한나라당 성향 유권자들 상당수가 일단 문국현 후보로 돌아선 상황에서 송 후보가 불리한 선거 구도를 바꿔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불광동 대조시장에서 기자를 만난 송 후보는 "공천도 늦었고, 총선 기획단장을 맡았던 신계륜씨가 마치 후보 단일화가 있을 것 같은 얘기를 언론에 흘려서 피해를 많이 봤다"며 "문국현씨가 반(反)이재오 정서를 진공청소기처럼 흡수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이 많지만, 중도 포기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완주' 의사를 분명히 했다.


태그:#이재오, #문국현, #송미화, #은평을, #격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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