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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세탁솜씨는 좋기로 유명핟.
 할아버지의 세탁솜씨는 좋기로 유명핟.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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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탁소'가 뜬다. 연극에서, 드라마 같은 가상 현실 속에서 겁나게 뜬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사건> <엄마가 뿔이 났다> 등에선 세탁소 주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품 속의 무대가 되는 '세탁소'들과 달리 현실 속의 세탁소들은 '추락하는 날개'나 다름 없다.

동네 소형 옛날 세탁소들은 대부분 세탁물을 맡긴 사람들이 세탁물을 찾아가지 않아서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다. 정말 연극 속에서처럼 "누가 세탁소를 습격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 세탁소들의 입장일 정도.

해운대 중2동에 위치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옛날 세탁소. 밖에서 봐도 안에서 봐도, 세탁물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 낡고 허름한 동네 세탁소의 나이는 35년이 휠씬 넘었다고 한다. "치익칙~" 수증기 내뿜는 스팀다리미를 쓰고 있다.

나도 꽤 오래 전에 이 세탁소에 맡겨 둔 세탁물이 몇 가지 있어 세탁소 앞을 지날 때마다, 할아버지께 야단 맞을까봐 조마조마 하곤 한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우물쭈물 하면서, "다음에 찾아갈게요"라고 웃으며 이야기 한다.

너무 오래된 동네 세탁소지만 그래도 정겹다.
 너무 오래된 동네 세탁소지만 그래도 정겹다.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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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세탁소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아, 느긋하게 '다음 계절에 찾아야지"했던 것인데, 근처 철거 아파트 때문에 세탁소 자리를 옮겨야 한단다.

그래서 요즘 할아버지께선 고민이 많다. 맡길 때는 "당장 빨리"를 외치면서 몇 년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런 세탁물들을 버리기도, 간직하기도 힘든 입장에 놓인 세탁소는 비단 할아버지 세탁소만이 아니다. 동네 세탁소들의 입장이 거의 비슷비슷했다.

5000원, 1만원 하는 싼옷들이 쏟아져 나와 세탁비로 옷을 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러 이런 현상이 빚어진 것이란 사람들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옷도 일회용으로 대체되지 않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재밌는 '연극' 속이나, 건조한 우리의 삶이나 동전 뒤집기처럼 같은 듯한데...

찾아가지 않는 세탁물이 점점 쌓여 고민인, 옛날 세탁소
 찾아가지 않는 세탁물이 점점 쌓여 고민인, 옛날 세탁소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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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밌는 '연극' 속이나, 건조한 우리의 삶이나, 동전 뒤집기처럼 같은 듯하다. 어쨌거나 자신의 소중한 옷을 맡긴 이상 되찾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어떤 세탁물의 경우는 세탁물 기한인 2년 이상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는다고. 그럴 땐 보관하기 힘들어 아까워도 버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오아시스 세탁소' 주인공 강태국이 세탁소에 맡긴 옷가지 속에 든 보물을 찾기 위해 세탁소를 습격한 사람들을 모두 세탁통 속에 넣어서 세탁하듯이, 세탁소는 우리의 옷을 세탁하는 의미만 뜻하지 않는 듯하다. 옷은 우리의 날개다. 자신의 날개를 맡겨 둔 세탁물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자신의 날개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닐까.

30년 세탁 쟁이 연극 속의 강태국이 "우리가 진짜 세탁해야 되는 것은 말이야 옷이 아니야, 바로 이 옷들의 주인 마음이야"라며 사람들을 파란하늘에 하얗게 널어놓고 웃음 짓는듯이, 세탁소 할아버지 마음도 그와 같을 것이다. 그나 저나 오늘은 꼭 할아버지에게 맡긴 오래된 세탁물을 꼭 찾아야 한다…. 잃어버린 내 마음의 날개 한짝을….

아침이면 미사의 종소리
미루나무 잎새로 깔려오고
분주한 꿈들이 세수를 하고 의상을 입고
햇살 따라 출근 길을 나선다.
풀잎의 이슬을 깨우는
동네 아낙들의 물소리들
밤새 아이가 오줌으로 그린
섬 조각 하나 하얀 낮달을 닮아간다.
언 손으로 남루를 빨던
어머니의 가난한 겨울이
어깨 낮은 담장에 펄럭거리고
늙은 아버지 벗어 놓은 
검은 작업복 빨다보면
잉크빛 바다가 손끝에 물든다.
먼 길을 걸어온 때묻은 노래들이
푸른 봄빛에 헹구어져
싱싱한 콩나물 음표들
빨랫줄에 나붓낀다.

- 자작시, '빨래'


태그:#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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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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