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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총통으로 당선한 마잉주 후보의 선거 유세 모습.
 대만 총통으로 당선한 마잉주 후보의 선거 유세 모습.
ⓒ 연합뉴스 정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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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의 마잉주 후보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한국 언론들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마잉주 당선인이 많이 닮았다는 보도가 많았다. '마잉주는 대만판 이명박'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있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보면 이 대통령과 마잉주 당선인은 닮은 면도 있고 되레 정반대인 면도 있다. 쌍둥이라고 하지만 얼굴 모습과 성별이 다른 이란성 쌍둥이 또는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같기도' 노래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휘트니 휴스턴의 팝송  'I Wll Always Love You'의 한 부분이 한국말로 언뜻 '웬 다이아~' 이런 식으로 들리는 것)

우선 닮은 점을 보면 둘 다 보수 정치인들로 진보 세력들로부터 정권을 다시 빼앗아왔다.

마잉주 당선인은 8년만에 정권 교체를 이룩했는데 58.4%의 득표율로 41.6%에 그친 민진당의 셰창팅 후보를 압도했다. 이는 대만 총통 선거 역사상 최대의 표차다. 이명박 대통령도 정동영 후보를 엄청난 차이로 눌렀다.

또 대만 총통 선거 내내 가장 핵심은 경제 문제였고 마잉주 후보는 집권 민진당의 경제 실정을 공격해 승리했는데 이는 한국과 판박이다.

이명박과 마잉주 모두 영어에 아주 친숙하다. 이 대통령은 한 때 영어몰입교육을 내세웠고 마잉주는 미국 유학파 출신에 1980년대 초 장징궈(蔣經國) 당시 총통의 영어 통역 및 비서로 활동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마 당선인은 외신 기자들의 영어 질문에 통역없이 유창한 영어로 답한다.

마잉주 당선인의 핵심 공약은 6·3·3(연간 경제성장률 6%, 8년후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 4년 내에 실업률 3% 이하)이었는데 원 저작권이 이명박 대통령의 7·4·7에 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1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내걸고 당선되자 당시 한창 격전중이던 대만 국민당의 마잉주 후보와 민진당의 셰창팅 후보가 서로 "내가 대만의 이명박이 되겠다"고 논쟁을 벌었다.

사실 대만 정치권의 '한국 따라하기'는 오래됐다. 한 예로 지난 2000년 민진당의 천수이벤 총통이 대만 역사상 첫 정권 교체에 도전했을 때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한국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모델로 삼았다.

심지어 서울시의 쓰레기 종량제를 타이베이 시에서 도입할 때 양국 음식문화의 차이를 들어 반대가 심하자 "한국은 하는데 왜 대만이 못하냐"는 말까지 나왔다. 

대만은 지난 1월 12일 입법원(국회) 선거를 했는데 당시 야당인 국민당이 72%인 81석을 차지했고 집권 민진당은 24%인 27석에 그쳤다. 만약 한국의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현재 예상대로 170석 이상을 차지하면 이명박과 마잉주의 닮은꼴에 한 항목이 더 추가될 것이다.

마잉주는 '미스터 클린', 이명박은?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차이, 더 나아가 정반대인 면도 많다.

일단 마잉주 당선인의 별명은 '미스터 클린'이다. '테플론 맨(Teflon-man)'이라는 별명도 있다. 테플론 코팅을 한 프라이팬에는 음식이 눌어붙지 않는 것처럼 부패 스캔들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여기에 잘생긴 외모, 미국 유학파 출신 학력과 타이베이 시장 재직 때 보여준 능력 등이 어우러져 마잉주 당선인은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클린'과는 거리가 멀다. 마잉주가 법치를 강조하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이명박이 법치를 강조하면 한국 네티즌들은 "너나 잘 하세요"라고 야유를 보낸다.

마잉주는 우유부단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성격이 온화하고 말을 가려서 하지만 이 대통령은 '불도저'요, 직설적인 언변은 보수 진영이 그토록 비판하던 전임 노무현 대통령과 닮았다.

경제 살리기 효과 부문에서도 아직까지는 두 사람 사이에 차이가 상당하다.

대만에서는 '마잉주 효과'가 확실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이명박 효과'는 볼 수 없다.

마잉주가 총통으로 당선된 첫번째 맞이한 24일 대만 증시는 3.99% 폭등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날인 2007년 12월20일 한국 증시는 0.92% 내렸다.

단지 하루의 증시만 그런 게 아니다.

출처 : 블룸버그 통신
▲ 지난 3개월간 대만 주가 추이 출처 : 블룸버그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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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블룸버그 통신
▲ 지난 3개월간 한국 주가 추이 출처 : 블룸버그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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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한 그림은 블룸버그 통신 홈페이지에서 캡쳐한 지난 3개월간의 한국과 대만의 주가 지수다. 지난 3개월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는 모두 약세였고 한국 역시 이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대만은 되레 주가가 올랐다. 전 세계 증시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대만 주가를 끌어올린 마잉주야말로 진짜 '효과'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내가 당선만 되면…"이라고 큰소리 쳤던 이명박 대통령은 별 '효과'가 없었다.

하나대투증권 조용현 연구위원은 24일 오전 보고서를 통해 "지난 주 대만증시가 4.5% 상승하면서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지난해 연말대비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며 "이러한 대만증시의 선전은 총통선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4/4분기에 대만증시는 총통선거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가파르게 조정을 받으며 7월의 전저점을 하향이탈한 바 있다"며 "반면 올해 들어서는 국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불확실성 해소는 물론 양안관계 개선 기대감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 보기: [매경] 전년연말比 높아진 대만증시 왜 그런가 했더니)

10년만에 한국이 대만의 모델이 됐는데...

과거 민진당의 천수이볜 정권은 대만 독립을 추구하면서 중국과 크게 대립했고 이런 지정학적 불안정성 때문에 대만 증시가 낮게 평가받았다. 그러나 양안 평화를 추구하는 마잉주의 당선이 가시화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통일부를 없애려 했었고 과거 10년간의 남북화해협력 정책을 '퍼주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마잉주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없애려고 하지만 이명박은 되레 늘리려는 모양새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는데 이게 '재벌 프렌들리'인지 구분이 잘 안간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한국 기업의 투명성을 크게 해치고 1970·80년대식 관치 경제로 갈 우려가 커지고 있고 이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다시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관련기사 보기 [머니투데이] "新정부 '올드패션' 코리아 디스카운트 재현, 홍콩 증권전문가 신정부 "무리한 시장개입, 시대역행적" 비판 )

외국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도 한국 주식을 계속 팔고 있는데 이는 한국 비중을 줄였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머니투데이] 외국인, 연초부터 왜 파나 했더니..)

지난 23일 마잉주 당선인은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대만은 아시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한국의 경제성과와 경험을 참고해 대만을 이끌어가겠다"고 밝혔다.

"대만은 또 아시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한국에게 배울 점이 많다. 한국이 지난 10년간 이룩한 경제 성과와 경험을 참고해 나라를 꾸려나갈 것이다. 문화 산업에 눈떠 멀티미디어, 애니메이션 등과 결합시키고 한류 문화를 아시아에 유행시킨 점이나 자동차, 반도체, TFT-LCD 등의 완벽한 산업 구조, LG, 삼성, 현대 등 브랜드의 육성은 우리가 참고할 만한 것들이다."

이번 대만 총통 선거에서는 "어떻게 해서 대만이 한국에게 추월당했느냐"가 큰 논쟁거리였다.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만 해도 1만4426달러로 한국(1만891달러)보다 32%나 많았지만 지난해에는 1만6768달러로 한국(2만100달러ㆍ잠정 추계)보다 19.9% 적었다.

지난해 9월 대만 국민당은 한 한국인 무역업자를 등장시켜 민진당을 비판하는 정치 광고를 내보냈다.

이 한국인은 광고에서 "대만은 언제나 한국이 경쟁하고 연구했던 대상이었지만 지난 몇년간 지나치게 정치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며 "경제가 가장 중요한데, 대만 정부는 그 점을 모른다"고 말했다.

이 광고가 대만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자 천수이볜 총통이 직접 나서서 반박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난 24일 <한국일보>의 베이징 특파원의 칼럼인 '대만, 이젠 한국경제 따라잡을 때'도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로 침몰했을 때도 대만은 끄덕없었고 되레 한국에 100억달러를 빌려주겠다고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대만은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본받아야 할 대상이었지만 이른바 '잃어버린 10년'간 역전돼 이제 한국이 대만의 모델이 됐다.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을 심판하겠다며 정권을 잡았는데 정작 이명박과 닮은꼴이라는 마잉주는 한국의 잃어버린 10년을 본받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니 이게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태그:#마잉주, #대만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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