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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비탈진 공터 층층계단서 뛰놀던 애들을..."

 

지하철 1호선 명학역에서 수리산을 바라보고 도보로 15분. 커다란 빵집과 작은 꽃집·복덕방과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어린이집을 지나 몇 개의 골목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예슬(8)이와 혜진(10)이가 살던 동네가 나온다.

 

일반주택을 개조해 여러 개로 방을 늘린 다가구주택과 연립주택·단독주택들이 어우러진 구도심 안양8동은 사람들이 죄다 빠져나간 것처럼 허전하고 쓸쓸했다. 썰물 때의 바닷가처럼 조용하고 차분했다. 골목길은 깨끗했고, 오래된 2층집 계단에 앉은 흰둥이는 기자가 셔터를 누르자 재깍 왈왈댔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고처럼 들렸다. 

 

한동안 골목길에 서 있어도 이 동네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가물에 콩 나듯 이따금씩 노인들이 눈에 띌 뿐이었다.

 

이 주변을 맴도는 인기척은 대개 기자들. 지난 18일 군자천 일대에서 예슬이의 주검 일부가 발견된 뒤로 이 동네를 가장 많이 찾는 손님은 기자들이 됐다. 지난 19일에도 신문과 방송기자들은 예슬이 부모님을 카메라 렌즈에 담기 위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마침 한 노인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이 노인은 허망한 눈빛으로 70도 각도로 길게 뻗은 층층계단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동네 아이들이 자주 이 곳에서 '가위 바위 보'를 하며 한 계단씩 뛰어오르는 놀이를 했다"며 더운 김을 섞어 긴 한숨을 토해냈다.

 

금테안경에 분홍색 점퍼를 입고 몇 가지 고지서를 들고 서있던 할머니는 "작은 아이들이 계단에서 왔다갔다 뛰노는 모습을 자주 봤다"며 "웬 아이들이 이 곳에서 시끄럽게 떠드나 하고 고개를 높이 쳐들어 본 일이 있다"고 말했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홀로 살고 있다는 이 할머니는 "우리 동네 사람이 애들을 끔찍하게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겁이 나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며 "2년째 이 동네에 살고 있지만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기가 막힌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씨 집] 자장면 그릇·술병만 수북... 주민 "나쁜 놈"

 

뒷짐을 진 채 할머니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할아버지는 "바로 저 윗계단 왼쪽에 범인이 살았다"며 "그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려 말문이 쉽게 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동안 계단을 응시하던 할아버지는 "나쁜 놈"이라고 말하고 혀를 끌끌 찬 뒤,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피의자 정씨가 살던 곳은 이 노인의 말대로 두 언덕을 시멘트로 이어 계단을 만든 4층 높이의 위치에 있었다. 산비탈에 지은 이 집 주변에는 39개의 계단을 밟고 서면 위로 또 그만큼의 계단이 뻗어 있었다. 언덕과 언덕을 시멘트로 이어 발라 계단을 만든 이 집은 다른 집들과 다닥다닥 붙어 마치 '구로동 벌집'을 연상케 했다. 얼핏 보면 쪽방인가 싶기도 하다. 

 

정씨가 살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앞엔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줄을 친 상태였다. 정씨의 방문 오른쪽엔 작은 간이밭이 있었지만 겨우내 관리를 하지 않아 비닐 쓰레기도 군데군데 보였다. 흙이 있었지만 못 쓰는 비탈진 공터였다.

 

그가 살던 방문 앞에는 언제부터 모았는지 알 수 없는 맥주병과 소주병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술병 위에는 먼지무덤이 하얗게 앉아 있었다. 비닐 랩이 반쯤 벗겨진 자장면 그릇도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방문을 앞에 두고 왼편에는 정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남색 트레이닝복 바지가 뒹굴고 있었다. 몇 개의 대형 플라스틱 바구니도 시야에 잡혔다.

 

정씨 집 주변에는 경찰이 없어 동네주민들도 이따금씩 구경을 나오기도 했다.

 

동네주민 이광열(41)씨는 "예슬이와 우리 딸이 같은 학원에 다녔다"며 "정말 실감나지 않는 끔찍한 범죄"라고 개탄했다. 그는 "너무 놀라 매일 아침 등·하교 길을 아이와 함께 하고 있다"며 "한 동안 이 마을에는 전경들이 빼곡히 깔려 있었으며 헬기가 왱왱 하늘을 날며 수색작업을 벌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씨에 따르면 이 마을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돼 곧 헐릴 예정이다. 그래서 안양에서도 이름난 '위험지역'이라고 했다. 워낙 오래되고 낡은 연립주택들이 많아 붕괴위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이 동네를 취재하는 동안 우연히 길을 나선 예슬이 엄마와 마주쳤다. 동네주민들은 예슬이 엄마가 워낙 마른 체구이기는 하나 그래도 평소보다 훨씬 핼쓱해졌다고 걱정했다. 

 

동네사람들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예슬이를 잃어버린 뒤로 지금까지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자들이 그 집의 수면시간까지 방해해서 얼마 전에는 큰 소동도 벌어졌다"고 언질했다.

 

또 다른 동네사람은 "예슬이 아빠가 남은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그 엄마가 지금 온전한 자기 마음이겠느냐"며 걱정했다. 

 

[이웃] 엄마들 사이에 고개드는 '사형부활론'

 

명학초등학교 일대도 공포 분위기가 휩쓸고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엄마들은 학교 정문 앞까지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 앞으로 나왔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학원차가 미리 학교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 태워 쏜살같이 사라졌다.

 

명학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무서워서 아이들을 밖에 내보낼 수가 없다"며 "조용히 살던 동네가 끔찍한 범죄로 한 순간에 쑥대밭이 됐다"고 개탄했다. 또 다른 엄마는 "사형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당한대로 똑같이 범인에게 해줘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분개했다.

 

특히 딸을 둔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성추행이나 성폭행·강간·유괴 사건 범죄자들은 무조건 중형에 처해야 한다"며 "세상이 점점 흉흉해져서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어떤 엄마는 "안양이 자꾸 매스컴에 등장해 이사를 가야겠다"고 인터뷰를 피하기도 했다.

 

요즘 이 동네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는 사람이 엄마·아빠 교통사고 났다고 해도 절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라는 것. 그러면서도 이들은 "민심이 흉흉해지고 동네아저씨들을 자꾸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된다"고 걱정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급히 애를 데리러 온 '회사원 아빠'도 있었다. 이춘석(42)씨는 "예전에는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범인이 잡히고 나니까 더 불안해졌다"며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에 잠깐 나왔다는 이씨는 세무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빨리 아이를 인계하고 급히 일하러 가야 한다며 돌아섰다. 갓 돌이 된 아이를 등에 업고 초등학생 손녀를 데리러 학교 앞에 나온 할머니도 있었다. 끝내 인터뷰를 사양한 이 할머니는 "세상이 무섭다"고만 말했다.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데리러 나온 학원교사들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슬이가 다니던 태권도 도장 원장은 "나는 할 말이 없다"며 "1년 7개월간 우리 도장에 나오는 동안 정말 나무랄 데 없이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원장은 "아이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학원강사들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며 "누구에게나 안전한 사회가 돼야 할텐데 걱정"이라고 한숨을 토해냈다.

 

[학교] 교사들의 귀가 지도 "차조심! 길조심! 사람조심!"

 

학교도 분위기가 말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였다. 혜진이와 예슬이의 무사귀환을 빌던 84일간 학교 담벼락에 내걸렸던 노란색 리본도 범인이 잡힌 뒤로 떼어냈다. 학생들의 귀가지도에 나선 교사는 팻말에 '차조심! 길조심! 사람조심!'이라고 쓰고, 안전하게 아이들이 보호자에게 인계됐는지 확인하고 학교로 올라갔다. 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다며 사양했다.

 

당분간은 음악시간에도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겨울방학에는 아이들을 상대로 유괴예방교육도 실시했다. 귀가길 안전지도에는 더 힘을 쓰고 있다. 교사들도 근조 리본을 달고 대개 검정색 옷을 입고 다녔다. 명학초등학교는 애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종희 명학초등학교 교감은 "지금 노래를 부르겠느냐"며 "우리는 지금 모두 애도하는 분위기"라고 침울하게 말했다. 이 교감은 또 "예절교육 할 때는 '항상 인사 잘하고 어려운 노인을 만나면 도와드리라'고 가르치고, 유괴예방교육 할 때는 '반대로 사람 조심하라'고 가르친다"며 "양면적인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인데 이런 현실이 참 슬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제는 이웃집 아저씨도 마음놓고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에 '이웃끼리 돕고 살아야 한다'는 교육을 할 때도 '늘 부모님과 함께'라는 단서를 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명학초등학교는 귀가지도 때 아이들이 무리지어 갈 수 있도록 하고, 청소당번도 같은 동네 아이들끼리 묶어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교감은 "지금은 시한폭탄을 쥐고 사는 느낌"이라며 "또 다른 사건이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교사로서 참 민감해져 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교사책임인데 아이들을 일일이 데려다줄 수도 없고, 정말 미국처럼 부모가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데려가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하는 건지 참담한 심경"이라며 "아이들이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공백시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시작종과 끝나는 종이 울릴 때마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학교 밖까지 울려퍼지며 시끄러웠지만, 귀가지도가 끝난 학교는 절간처럼 조용했다. 취재를 마치고 터덜터덜 학교 정문을 나서는데 혜진이가 평상시 자주 들렀다는 문방구가 보였다.

 

홈런문구 주인 아저씨는 "혜진이가 학교 끝나면 300원짜리 슬러시를 자주 사먹었다"며 "책가방 메고 도화지를 사서 학교로 올라가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습장과 공책·연필과 크레파스를 파는 작은 문방구 안에는 두 개의 슬러시 기계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쉼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슬러시 기계는 쉼 없이 돌아가는데, 혜진이의 밝은 얼굴은 다시 볼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태그:#안양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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