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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교의 전설을 아시나요?

지나가는 기차의 머리를 밟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

'요즘 그런 얘길 누가 믿어?' 하면서도 한 번쯤은 기차를 기다려서라도 해보고 싶던 캠퍼스의 낭만. 하지만 내가 입학하던 2004년 봄, 학교 어디에서도 이화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그 캠퍼스의 로망은 영영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학교는 지하캠퍼스 건설을 목적으로 경의선 철도 복개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상상하던 대학교는 으리으리한 정문이 있고 길을 따라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져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건 웬걸. 올해로 5년째 학교에 머물고 있지만 나는 학교의 정문을 본 적이 없다. 대학교 정문답지 않게 작고 좁지만 운치가 있었다던 그 문은 과거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엽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까?

널찍하고 웅장한 교문을 만들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고 생각했던 1학년, 공사가 길어진다고 믿었던 2학년, 내 키만하던 울타리가 교문을 대신하던 3학년, 그리고 2008년 현재까지도 우리 학교는 여전히 공사중이다.

이화여대 정문은 아직도 공사중이다.
 이화여대 정문은 아직도 공사중이다.
ⓒ 황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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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캠퍼스밸리 주변은 아직도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화 캠퍼스밸리 주변은 아직도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 황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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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학교 정문뿐만이 아니다. 이화여대는 2004년 지하캠퍼스 건설을 목표로 하는 Ewha Campus Center(이하 ECC)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학교 곳곳은 공사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체육대학 학생들의 배움터인 운동장은 사라졌고 그들과 상관없는 위치에 달리기 트랙만이 덩그러니 자리잡았다. 대학교회는 정문에서 직선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였지만 공사 덕분에 학생들은 구두 굽이 폭폭 빠지는 철판과 나무판자 위를 걸으며 빙 둘러 돌아가야 했다. 공사의 진행 정도에 따라 매년 그 루트도 바뀌곤 했다.

이화여대 04(공사)학번=공사판 학번?

이화여대에서 04학번은 '공사판 학번'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닌, 우리 04학번들이 일찌감치 눈치채야 했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음을 ECC가 완공된 올해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2004년을 시작으로 2007년 말 공사를 마친 ECC 프로젝트. 그리고 그것의 결과물 이화 캠퍼스밸리(Ewha Campus Valley).

이화 캠퍼스밸리(Ewha Campus Valley)의 전경
 이화 캠퍼스밸리(Ewha Campus Valley)의 전경
ⓒ 황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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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캠퍼스밸리 전면은 유리로 만들어져 내부가 들여다보인다.
 이화 캠퍼스밸리 전면은 유리로 만들어져 내부가 들여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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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휴학기간도 없이 이른바 스트레이트 졸업을 한 04학번들은 이화 역사상 가장 허무한 학번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재학기간 내내 정문도 없이 흙먼지 날리는 공사판인 캠퍼스만 보다 졸업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내가 ECC에 쏟아 부은 등록금이 아까워서라도 저거 완공하고 질리도록 이용한 후에 졸업할꺼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지만 나는 은근 '꿈의 캠퍼스'를 만들어주겠다는 학교의 약속을 믿고 있었나보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이화 캠퍼스밸리 내부.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이화 캠퍼스밸리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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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8 새 학기와 동시에 공개된 이화 캠퍼스밸리(Ewha Campus Valley)라고 불리는 이 건축물은 2004년부터 4년이라는 기간 동안 04학번들이 캠퍼스의 낭만을 희생한 대가라고 하기엔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칙칙한 회색빛의 캠퍼스밸리는 마치 암흑의 지하기지를 연상케했고, 환경친화는커녕 너른 시멘트 벌판에 움푹 패인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그나마 햇볕이 비치는 밝은 날에는 유리창에 빛이 반사되어 사정이 낫지만 말이다. 또 건물 내부에 여전히 널부러져 있는 나무판자와 건축자재들은 여전히 공사중이라는 미완성의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이미 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캠퍼스 밸리 내에는 학생들의 의사와 상관없는 몇몇 상업시설들이 먼저 문을 열었다. 새로운 교육공간의 창출이라는 본 목적을 성취하기도 전에 말이다. 이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공간의 상업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오해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학교와 학생 모두가 기대했던 ECC 프로젝트는 이것이 완성된 지금 오히려 갈등만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화 캠퍼스밸리 내 입점한 상업시설
 이화 캠퍼스밸리 내 입점한 상업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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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캠퍼스밸리 내 입점한 상업시설
 이화 캠퍼스밸리 내 입점한 상업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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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 학번의 한 사람으로서 '첨단 시설을 갖춘 교육공간을 넘어 환경친화적인 머무르고 싶은 캠퍼스'를 만들겠다는 당초 학교의 포부를 믿고 싶다. 내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함께 했던 ECC 프로젝트. 아직은 흙먼지와 포크레인만이 연상되는 전혀 머무르고 싶지 않은 공간일 뿐이다.


태그:#이화여대, #캠퍼스벨리, #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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