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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 있는 '냠냠이'와 엄마 젖을 찾는 새끼들
 지쳐 있는 '냠냠이'와 엄마 젖을 찾는 새끼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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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인터넷 메신저로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다. 아들 딸과 떨어져 지내는 탓이다. 아들 녀석은 어제도 메신저를 주고받았지만 딸아이와는 이틀 동안 주고받지 못했다. 컴퓨터를 켜고 있다가 딸아이와 우연한 시간에 접속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신속하게 메시지를 날렸다.

나: 딸아, 대답하라 오바!
딸: 예, 엄마!
나: 왜 이리 오랜만이냐?
딸: '냠냠이' 양수 터졌슈!
나: 뜬금없이 무슨? 출산하려고 하나?
딸: 꺅!!! 오늘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게 될 것임.
나: 그래?

딸아이의 말에서 벌써 기쁨이 묻어난다. 늘 살붙이처럼 옆에 끼고 있는 '냠냠이'(고양이 이름)는 벌써 몇 년째 '동거동락' 하고 있다. 냠냠이가 어렸을 땐 그럭저럭 봐 줄만 하더니 이젠 너무 많이 커버려서 귀여운 구석이 없는데도 딸아이는 싫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끔 아이들 방에 가면 고양이털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다. 늘 끼고 사는 애들은 피붙이처럼 좋아한다.

딸아이 왈 "힘주는구나 생각하는 순간 쑥~하고 나왔다"고.
▲ 첫째의 출산 장면 딸아이 왈 "힘주는구나 생각하는 순간 쑥~하고 나왔다"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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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냠냠이가 출산까지 하게 되었으니 식구가 더 늘어나게 생겼다. 어쨌든 오랜만에 즐거워하는 딸을 대하니 나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에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니 어쨌든 감사한 일이다.

딸: 양수 터진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낳을 기미는 안보임.
나: 양수부터 터지면 새끼고양이가 나올 수 있나?
딸: 양수 터지고 길게는 5시간 안에 낳는데요. 자는데 하도 시끄러워서 깼더니 산통이 왔다갔다 하나 봐요. 울다 안 울다 하네요.
나: 그나저나 식구가 많이 늘어나서 어떡하냐?
딸: 어떻게 다 키워요. 새끼들은 나중에 남 줘야죠!

한 3분동안 돌봐주지 않아서 딸이 직접 수막을 찢고 닦아줘야했다.
▲ 갓 태어난 둘째 한 3분동안 돌봐주지 않아서 딸이 직접 수막을 찢고 닦아줘야했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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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냠냠이가 산통을 겪으며 새끼를 낳는 것이 궁금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어가는지 궁금했던 나는, 몇 분을 참지 못하고 조바심에 또 묻는다.

나: 고양이 아기 출산했나?
딸: 아직 진통 중.
나: 고양이는 몇 개월 만에 새끼를 낳나?
딸: 임신 60~70일 사이에 대개는 낳아유.
나: 냠냠이는 며칠 정도 됐냐?
딸: 지금 한 63일 정도… 대부분 63~65일에 많이 낳거든유.
나: 고양이는 아기 낳으려면 어떤 증상을 보이니?
딸: 고양이는 새끼 낳을 때 어둡고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어서 집에서 기르면 대부분 출산 박스라고 구석에 하나 만들어줘유. 박스에 패드나 시트 같은 걸 깔아서. 저도 하나 만들어 줬슈. 진통이 시작되면 이제 글로 기어들어가 알아서 자리 잡고 앉아유.

갓 태어난 새끼를 바라보는 냠냠이의 그윽한 눈. "생각보다 작은 머리...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일까"
▲ 모성 갓 태어난 새끼를 바라보는 냠냠이의 그윽한 눈. "생각보다 작은 머리...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일까"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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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아이한테 고양이 출산과정을 잘 관찰하고 사진을 몇 장 찍어 올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딸아이는 사진 찍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단다. 냠냠이가 예민해서 사진기만 들이대면 힘을 주다가 다시 뺀다고 했다. 카메라만 보면 울고불고 야단이란다. 하는 수 없이 출산하고 나면 찍으라고 했다. 지금쯤 어떻게 진행되어 갈까 궁금하다. 그새를 참지 못하고 몇 분 뒤 다시 물었다.

나: 출산했나?
딸: 네 마리 낳았슈. 더 낳을 것 같아요.
나: 엄마야! 많이 낳으려나보네. 그것 다 어찌하누?
딸: 2달 뒤 젖 떼고 나면 남 줘야쥬.
나: 큰 고양이를 남 주지.
딸: 안돼요. 냠냠이는 내 사랑, 평생 함께 할꼬얌.
나: 늙어 죽을 때가 안됐남?
딸: 고양이는 10년 이상 사는데 아직 한참 남았어요.
나: 고양이의 특성에 대해 읊어봐!
딸: 특성이라… 어떤류의 특성 말이에요? 출산과정을 보면, 새끼 한 마리 낳고 태반 먹고, 태반 먹으면서 탯줄 함께 끊고, 핥아서 말려주고, 또 진통 오면 또 낳고, 태어난 새끼들은 계속 젖 찾아 삼만리, 지금 빽빽 울어서 정신이 없음.
나: 지금 온 방이 시끄럽겠네?
딸: 병아리 울음소리 같아요.

생명, 그 신비...
 생명, 그 신비...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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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답이 없다. 시간이 꽤 됐는데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아직 알 수가 없다. 궁금증만 유발한다. 고양이 새끼는 다 낳은 것일까. 아직도 진통 중에 있는 것일까. 드디어 답이 왔다.

나: 대답하라 오바, 딸 대답하라 오바!
딸: 넹!
나: 출산은 다 했나?
딸: 넹, 다섯 마리가 끝인가 보옵니다. 냠냠이 진이 다 빠졌네.
나: 사진 올려라 오바!
딸: 밥부터 먹구요.
나: 니가 출산했나? ㅋㅋ

냠냠이의 산고가 마치 딸아이 자신의 것인양 몇 시간 동안 다섯 마리의 고양이새끼를 낳는 것을 지켜보고 신경을 쓰느라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밥을 먹고 난 뒤 사진을 올린다 한다. 오늘은 딸 아이가 사랑하는 냠냠이가 다섯 남매(?)를 순산한 날이다.

젖을 찾아 어미 품속에 안겨드는 새끼들
▲ 출산 후 젖을 찾아 어미 품속에 안겨드는 새끼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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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집이 고양이들로  미어 터지겠다. 안 봐도 눈에 환하다. 어쨌든 경사다. 생명의 신비를 보며 딸아인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마디 물었다. 아니, 그런데 사진을 보니 정말 하나도 안 이쁘다.

나: 냠냠이가 새끼 고양이 낳은 것에 대한 느낌이 어떠냐?
딸: 부모의 마음을 알 것 같음. 이쁠 줄 알았는데, 첫인상은 별로 안 이쁘네요.
나: 야들이 왜이리 징그럽노?
딸: 한 1, 2주 지나야 이뻐요. 사람이랑 다를 게 없어. 사람도 처음에 태어나면 쪼글쪼글하고 이상하지 으으~
나: (딸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를 떠올리며) 진짜, 니가 꼭 그랬어. 마지막으로, 냠냠이가 새끼 고양이 낳은 것에 대한 감회 한마디?
딸: 잠 온다. 힘들다. 지친다. 내가 출산한 기분입니다. 태반을 두어개만 먹고 나머지는 못 먹게 해야 된대서 내가 탯줄 자르고 어찌나 부들부들 떨리던지… 삶은 실로 탯줄 묶어서 소독한 가위로 잘랐슈.
나: 어이구, 산부인과 의사가 따로 없구나.
딸: 난 천재!
나: 근데 고양이들이 득실거리고 징그러워서 어쩌나?
딸: 안 징그러워요! 귀엽기만 하네.
나: 아무튼 축하한다. 수고했다.


태그:#생명의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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