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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절망을 모르는 뿌리의 힘으로 문어가 된 나무야, 고맙다!
 
천년 늙은 나무는 그 정(精)이 청양(靑羊)으로 화하고, 만년이 된 나무는 그 정이 청우(靑牛)로 화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처럼 지난 16일 부산 금정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길에 만난 나무는 문어가 된 나무였습니다. 몸뚱이는 베어지고 뿌리만 남은 죽은 나무였지만 뿌리에는 아직 힘찬 생명력이 문어발처럼 느껴졌습니다.
 
다 죽은 뿌리가, 마치 아귀가 세찬 문어처럼 큰 바위를 꼭 붙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숨을 놓는 그날까지 생명의 손을 절대적으로 놓지 않으려는 듯 말입니다. 누군가의 끔찍한 도끼날에 몸뚱이를 잃어 버린 뿌리만 남은 나무…. 조용히 촛불처럼 그 심지가 다 하는 날까지 남아 있는 자신의 생명을 다 태우며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초극적인 그 뿌리의 힘에 불이 까맣게 꺼진 마음의 심지에 뜨겁게 불씨가 옮겨 붙는 듯했습니다.
  
 
땀 절은 얼굴들을 붉은 횃불이 지나간 다음
산정에 서리 같은 고요가 깃들인 다음
돌밭에 괴로움을 겪고 난 다음
외치는 소리 아우성 소리
옥(獄)과 궁궐과 먼 산을 넘어서
울려오는 봄 천둥소리
살았던 그분은 이미 죽었고
살았던 우리들은 이제 죽어 간다
가까스로 참아가면서
- T.S 엘리엇
 
 
나무들은 존재의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나무들은 어떠한 악조건과 불우한 환경에 놓여도 절대 절망을 모르는 성자(聖者)와 같습니다. 절벽에서도, 비탈에 서서도 폭풍과 태풍 속에서도 나무들은 혹독한 시련을 다 겪고 꽃과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은 어려운 시련과 절망을 만납니다. 그 다가오는 시련과 절망을 이겨내는 사람도 많지만, 자신의 생명을 아예 포기하고 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들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너무 잘 아는 듯, 주어진 여건 따위를 불평하거나 하늘을 향해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두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갑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일새, 꽃 좋고 열매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칠 새
내에 이르러 바다에 나가니.
- <용비어천가> 제 2장
 
 
철학의 나무들, 시를 쓰는 나무들
 
심리학자 융은 나무를 모성성 또는 여성성뿐만 아니라 남성적인 상징을 예시하는 양성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나무를 '리비도'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의 나무도 선악과를 지닌 지식의 나무이자 영원한 삶의 나무라는 양면적인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어디에나 있는 나무들. 그 나무들에게도 가족이 있습니다. 서로 과가 다른 나무들도 서로를 도와주며 살아갑니다. 나무들은 천상과 지하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의 상징입니다. 
 
융은 나무를 인간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정신 현상의 핵이며 원동력이라고 했습니다.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이나 토머스의 시 <양치식물이 자라는 언덕> 등에는 이러한 나무의 상징 체계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며 이야기하는 동무나무
 
사람이 격을 갖추었을 때, 그것을 '인격'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나무도 그 격을 갖추면 수격(樹格)을 갖추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수격을 갖춘 나무는 겉모습이 잘 생긴 나무만을 이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음이 넉넉하고 다른 동무나무를 품어주는 나무일 때, 그 나무는 동무나무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아니 존경을 받는 것 같습니다. 서로 서로 몸을 의지하면서, 함께 자라는 동무나무들은 우리네 삶에 스승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말 없이 일러주는 것 같습니다.
 
 
철거 아파트 단지의 나무들... 마지막 벚꽃축제 준비 중 
 
매일 지나다니는 이웃 동네, 해운대 주공아파트 단지 안에서 만난 나무는 정말 끔찍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고 쓰러진 나무, 누군가 벌목을 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이 아파트 단지는 내달이면 철거될 지역입니다 아파트가 35년이 넘어서 주위의 숲이 울창합니다. 그러나 곳곳이 화단에 나무들이 이미 많이 베어진 상태입니다. 옛 선인들은 나무가 신성하다 하여 함부로 나무를 베지 않았습니다. 
 
하나 둘 이주해 가는 아파트 안에 있는 나무들은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 같습니다. 마치 어디로 이사할 곳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월세입자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못생기고 늙고 병든 나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나무들은 동무나무들과 손을 맞잡고 곧 만개할, 이 아파트의 아름다운 벚꽃 축제를 보여 줄 것입니다. 이곳에서 오랜 세월 정들었던 나무들이 사람들 대신 마지막 꽃봉오리를 터트리며 벚꽂 축제를 열 것입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겨울을
바람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자라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피던 봄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 <겨울나무> 이원수

태그:#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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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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