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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쯤 잔디밭이나 아파트 화단 울타리가 되어주는 키작은 회양목 나무가 아무도 모르게 꽃을 피웠다가 지는 때이지요. 키작고 볼품없어 잊혀져 사는 이 작은 나무가 비록 볼품없는 꽃이지만 향은 매화향같이 짙고 비슷합니다.

 

이맘 때면 언제나 길가다 쪼그리고 앉아 꽃이 있나 살펴보고 향을 맡습니다. 향이 얼마나 진한지 어떨 때 걸어가다가도 향이 코를 즐겁게 하지요. 이맘 때쯤 지인들에게 꽃소식을 보내지만 아마도 꽃향을 맡은 분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 수줍은 작은 꽃이 보이지도 않았겠지요. 올해도 꽃소식을 전하다 한분이라도 더 이 작은 나무가 내뿜는 경이로운 향을 즐기고 사랑해 주셨으면 해서 부탁을 드립니다. 

<어느 독자의 편지 일부>

 

 
 
들꽃이야기를 쓰다보면 간혹 위와 같은 편지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아, 어떤 분들은 이런 꽃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반갑기도 하고, 차마 전하지 못한 들꽃이야기에 미안하기도 합니다.
 
회양목, 언젠가 쓰리라고 생각하고 사진까지 담아두었는데 꽃이 못 생긴 탓에 그냥 내게도 잊혀져 버렸나 봅니다.
 
못 생긴 것, 작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하면서도, 삶의 화두라고 하면서도 삶으로 체득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자신을 보면서 반성을 하게 됩니다.
 
 
회양목, 그는 나무 꽃 중에서는 동백과 매화를 빼고나면 산수유나 생강나무보다도 훨씬 일찍 피어나는 부지런한 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무꽃들을 다 유명세를 타는데 유독 회양목은 꽃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지나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꽃이 못 생겼다는 것이고, 키가 작아 허리를 굽혀야먄 꽃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꽃술에 곤충이 앉아야 번식을 할 수 있기에 많은 꽃들이 헛꽃까지 피워가며 곤충들을 유인하는데 아예 꽃잎도 없는 회양목, 꽃술만 피어난 것 같은 회양목의 배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가만히 앉아 꽃을 바라보니 향기가 은은합니다.
 
'아, 향기에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로구나' 생각하며 꽃들을 바라보니 아직 이른 철인데도 제법 많은 꿀벌들이 회양목을 찾아와 분주하게 날아다닙니다.
 
'아, 배짱이 아니라 꽃이 귀한 시절에 배고픈 곤충들의 배를 채워줄 마음으로 급하게 피어난 것이구나.'
 
 
 
어떤 것들은 아직도 굳게 입술을 다물고 있고, 어떤 것들은 이미 피었다가 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피어나는 시기를 조절하면서 작은 곤충들의 생명을 피어나게 하는 꽃입니다.
 
우리가 흔히 정원수로 보는 것들은 손질을 해서 나무들이 작지만 지팡이의 재료나 목재조각품의 재료로도 쓴다고 하니 제법 큰 나무들도 있을 것입니다. 경기도 용주사와 양평에 가면 수령 300년이 넘은 회양목이 있다고 합니다.
 
봄이 다 가기 전에 그들을 만나러 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들은 지팡이, 목재조각품으로 사용될 뿐 아니라 도장의 재료로 사용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목향이 좋아야 하는 것들이고, 재질이 단단해서 변하지 않는 것들일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꽃은 예쁘지 않지만 그들은 꽃보다도 그들의 나무줄기는 여느 나무들 보다도 아름다운 것이지요.
 
겉모습보다는 속내에 충실하는 회양목의 마음을 보는 듯 합니다.
 
 
그들은 꽃받침도 있는둥 마는 둥, 꽃잎도 아예 없이 꽃술만 잔뜩 피어난 형상입니다.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서 헛꽃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 꽃들의 세계인데 오로지 회양목은 향기로만 승부를 하는가 봅니다.
 
향기만으로도 자신있게 곤충들을 유인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회양목의 자신감이겠지요.
뭐 하나만 뛰어나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세상은 아이들을 만능으로 만들려합니다.
 
 
회양목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니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무 혹독하구나 싶어 반성이 됩니다.
 
놀기에도 모자랄 아이들인데, 맘껏 놀게하기는 커녕 경쟁의 구도 속에 몰아넣고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게 합니다. 아이들도 죽고, 부모들도 함께 죽는 그 경쟁의 구도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꿈은 자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야만 죽는게 아닙니다.
 
꿈이 죽으면 사람이 죽는 것이고, 자기가 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포기해야 하면 그것이 죽는 것입니다.
 
 
회양목, 그들은 산수유, 생강나무보다도 먼저 피어났는데 주목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피고 지는 일에 열중하느라 남과 자신을 비교할 시간조차도 없었을 것이고, 남들이 보아주는지 아닌지 신경쓸 겨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들 속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꽃보다 향기가 예쁜 꽃, 꽃향기 보다도 목향이 더 좋은 꽃안 회양목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꽃은 못 생겼지만 겉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세상 속에서 '그게 아니야!' 외치는 꽃입니다.
 
회양목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우리 주변에서 도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햇살 좋은 봄 날, 회양목 못 생긴 꽃에 코를 대고 향기를 음미하는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회양목, 그에 대한 글을 쓰도록 재촉해 주시어 회양목 꽃이 지기 전에 그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독자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회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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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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