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도심에도 완연한 봄이 왔다. 도심에서 봄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길을 걷는다. 봄은 가장 낮은 바닥에서부터 시작되고, 이름은 있어도 제대로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 잡초 같은 들풀들의 새싹으로부터 시작된다.

 

질경이가 보도블록 틈에서 싹을 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무리 밟히며 자라는 인생이라지만 하필이면 저 곳일까 안타까우면서도 그렇게라도 피어준 것이 고맙기만 하다.

 

 

보도블록 틈에는 질경이만 푸른 싹을 낸 것이 아니었다. 이맘때 봄나물을 뜯으러 가면 어김없이 뜯곤 했던 냉이나 쑥 같은 것들이 함께 보도블록의 틈을 따라 피어나고 있었다.

 

본래 그들의 땅이었던 그 곳을 보도블록이 점령군같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점령군들의 연대에도 불구하고 민중을 닮은 들풀들은 꿋꿋하게 피어나고 있으며, 느슨해진 블록들을 들어올리며 그들의 연대를 와해시킨다. 보이지 않는 작은 들풀들의 연대가 생명없는 점령군들을 하나 둘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럴수록 점령군들은 작은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아스팔트로 도시를 메워가고, 콘크리트로 장벽을 치면서 흙의 기운을 막는다. 그러나 그럴수록 작은 풀꽃들도 작은 틈이라도 피어나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리려는 듯 안간힘을 쓴다.
 
봄 햇살에 피어난 그 처절한 생명의 몸짓은 우리네 민중을 닮았다. 콘크리트 장벽 같은 것들이 삶으로 치고 들어오고, 그것들이 민중의 삶을 옥죄는 만큼 입지는 작아지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을 하며 살아간다. 싸움 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은 끝이다. 오로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투쟁, 싸움 뿐이다.
 
 
 
그들의 싸움은 죽음 끝으로 달려가는 싸움이 아니라 함께 살자는 몸부림이기에 평화롭다.평화, 말로만의 평화가 아닌 온 몸으로 살아가는 평화는 때론 투쟁이요, 목숨 건 싸움인 것이다.
 
온갖 미사여구가 난무하는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만이라고 느끼는 것, 그래서 헛헛한 것은 삶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포장으로 평화, 사랑을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말이 없어서, 그런 구호가 없어서 이 세상이 차가운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이 없어서 이 세상은 차가운 것이다.
 
 
그들은 온 몸으로 말하고 있는 중이다. 마침내 피어남,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남, 그것이 그들이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저 콘크리트 바닥에서 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르지 않은 꽃을 피워내고, 다르지 않은 향기를 품고 피어난 저 들꽃이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나는 흔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여기서 본다. 흔한 것들이 있어 특별한 것들도 있는 것이다. 온통 특별한 것들만 살아남는 세상은 건강할 수가 없다. 특별한 것들만 대우받는 세상은 온갖 사이코패스를 양산해 낸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평범한 삶 조차도 힘들다고 느껴질 뿐 아니라 그것이 현실로 다가올 때 어느 누군들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흔한 것들,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라. 무지렁뱅이 백성들, 민중들 그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이 나라도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봄은 하루 아침에 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봄이구나!' 누구나 느낄 즈음이면 어느 새 다음 계절로 바통을 넘긴다.

 

혁명도 그렇지 않은가? 어제의 연장선상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그 순간이 혁명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순간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때론 아무리 정직하게 살아도, 최선을 다해도 한 순간에 절망할 순간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제초제 한 방 혹은 농부의 손에 까많게 타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 흔하디 흔한 꽃들의 운명이다.

 

그래도 그들은 피어난다. 콘크리드 빌딩 숲의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피어난다.

왜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봄이니까!"

 

이유가 없다. 봄이니까 피어났다. 그래서 그들은 매년 봄이면 피어난다. 봄이니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도시의 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