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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가운데), 정종복 간사(왼쪽), 임해규 의원이 13일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영남권 공천심사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안강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가운데), 정종복 간사(왼쪽), 임해규 의원이 13일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영남권 공천심사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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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영남권 물갈이가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을 격랑으로 몰아넣고 있다.

당의 주류세력인 '이명박계'는 자파의 원로그룹까지 희생시키는 '개혁공천'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다시 모으고 정국의 주도권을 일정부분 회복하는 데 성공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김무성 최고위원(친박)이 무소속 출마를 공언하는 등 가장 큰 피해를 본 '박근혜계'가 집단반발하고 있어 한나라당이 총선에서도 대선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이 통용되는 영남권에서 한나라당은 무려 25명의 현역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민주당에서 박재승 공심위원장이 김대중·노무현 측근그룹의 공천 배체를 관철시키자 한나라당 안강민 공심위원장도 '개혁성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영남권에서 '대형 사고'를 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영남에서 3선이상 중진 의원 14명이 공심위의 칼날에 스러진 상황에서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이미 손쉽게 공천권을 따낸 것은 '영남 물갈이'의 효과를 반감시킨다. "도대체 원칙과 기준이 뭐냐"라는 불만과 항의가 당 안팎에서 비등하고 있다.

정부 인사, 공천에도 깊숙한 영향력 행사하는 '상왕'

1935년생인 이 부의장은 한나라당의 최고령이자 최다선(5선) 의원이다. 영남권 공천에서 탈락한 이강두·박종근 의원이 그보다 두 살 밑이고, 박희태 의원은 세 살, 김기춘·이상배 의원은 네 살 밑이다.

민정당 시절부터 당에 몸담았던 그는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등을 두루 거친 뒤 2004년부터는 임기 2년의 국회부의장을 맡아왔다.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워낙 조용한 성격 탓에 그의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동생이 대통령이 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실세 중의 실세'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의 힘으로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그의 국회 사무실에 줄을 이었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얻으려는 예비후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월 3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오른쪽)이 이명박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을 찾아가 '교육과학부'라고 적은뒤 몇몇 인사들의 이름을 메모하자, 이 부의장이 '박종구'라는 이름을 지목하는 모습. 권 의원은 주머니에서 그의 이력서를 꺼내 이 부의장에게 그 자리에서 전달했다.
 지난 1월 3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오른쪽)이 이명박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을 찾아가 '교육과학부'라고 적은뒤 몇몇 인사들의 이름을 메모하자, 이 부의장이 '박종구'라는 이름을 지목하는 모습. 권 의원은 주머니에서 그의 이력서를 꺼내 이 부의장에게 그 자리에서 전달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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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의장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질수록 그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한나라당 주변에서 그 자신이 달가워하지 않을 '상왕(上王)'이라는 칭호가 회자되는 것도 이 부의장 스스로 돌아볼 대목이다.

이 부의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들춰보던 고위공직자의 이력서 내용을 1월 30일 <오마이뉴스>가 촬영한 적이 있는데, 이 부의장이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으로 지목한 인사가 그대로 그 자리에 기용됐다. 서울 영등포갑에 공천된 전여옥 의원의 경우도 "이 부의장의 입김이 공천심사에 작용했다"는 주장이 탈락한 고진화 의원으로부터 제기됐다.

이명박 정부의 첫 내각이 '고소영'·'강부자'라는 비난을 산 뒤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가까운 소장그룹으로부터 "인사 파동의 실질적 책임자는 이 부의장"이라는 얘기들이 흘러나왔고, 화가 난 이 부의장이 이들에게 거친 표현을 구사하며 맹비난을 퍼부었다는 얘기도 있다.

민주당 '개혁공천' 바람에 김무성·박희태 동반 탈락?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며 공심위가 '이상득 공천' 문제로 처음부터 난항을 겪은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공심위는 지난달 29일 이상득·강재섭·박근혜 등을 1차 공천확정자 명단에 포함시켰는데, 이 부의장의 공천은 이 때만 해도 나이나 당선횟수가 공천 탈락의 기준이 되지 않을 것을 시사하는 척도였다.

그러나 이로부터 일주일 뒤 민주당이 사법처리 전력이 있는 주요인사 11명의 공천 배제를 발표하며 '개혁공천' 바람을 일으킨 것이 한나라당 공천의 새로운 촉매제로 작용했다. "민주당에 개혁공천의 주도권을 쥐어줘서는 안 된다"는 한나라당의 강박관념이 공천이 확정된 이상득 부의장과 탈락한 중진의원 14명의 운명을 갈라놓은 셈이다.

한 당직자는 영남권 물갈이가 큰 폭으로 이뤄진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계파를 불문하고 영남권 의원 상당수를 솎아내는 것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고 봐야한다. 문제는 '민주당발 개혁공천' 바람이 불면서 1월에 잠시 덮었던 '부패전력자 처리' 당규가 공심위원들사이에서 다시 논란이 된 것이다. '박근혜계 좌장' 김무성 의원을 탈락자 명단에서 제외시킬 경우 '박근혜 달래려고 누구 봐주었다'는 얘기가 나올 게 분명했고... 결국 김무성 건을 '원칙대로' 처리한 뒤 박근혜계 반발을 무마시킬 카드로 박희태 의원마저 낙마시킨 셈이다."

이러한 설명이 맞다면, 공천에서 탈락한 영남권 의원 상당수가 민주당 변수로 인해 불이익을 본 것으로 판단하고 이 부의장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공산이 크다. 특히 박희태 의언의 거취와 관련해 이명박계 내부에서는 "말이 안되는 결정인 만큼 비례대표를 줘서라도 예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고개를 드는 실정이다.

날개 꺾인 박근혜의 딜레마

지난 1월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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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권 최대의 관심사는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이다. 유승민·허태열·서병수를 제외한 영남권 친박 의원들의 날개가 모두 꺾인 상황에서 박근혜계는 총선 이후 군소 정파로 명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권을 쥐었을 때는 당의 주인이었고, 경선 국면에서는 당의 지분 절반을 거머쥐었던 박 전 대표로서는 극적인 몰락을 눈앞에 둔 셈이다.

당장의 숙제는 친박 성향의 공천 탈락자들과의 관계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재심 과정을 지켜보며 구체적인 대응 수위를 정하겠지만, 운신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박 전 대표로서는 자신을 따르는 낙천자들을 규합한 뒤 한나라당을 떠나 '새로운 깃발'을 세우기도, 그렇다고 당에 그대로 주저앉아 이들의 호소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공천을 계기로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의 신뢰 관계는 회복될 수 없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반이명박 노선'을 견지할 수밖에 없는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진지'를 한나라당 내부와 외부 중 어느 곳에 둘 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부분이다.


태그:#18대 총선, #박희태, #김무성, #이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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