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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특검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재벌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 경제개혁연대가 3월부터 삼성 일부 계열사를 비롯해 신세계 등의 주주총회에 참여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소액주주운동이 다시 시작됨을 뜻합니다. <오마이뉴스>는 3회에 걸쳐 '이명박시대의 소액주주운동'이 갖는 의미와 구체적인 실천 내용을 전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로 최한수 경제개혁연대 연구팀장의 글입니다. <편집자주>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기 위해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타인의 돈을 훔쳤다. 그런데 이 사실이 밝혀지자 원래 돈의 주인은 돈을 횡령한 사람을 질타하며 그로부터 배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여러 가지 이유로 손해배상 요구를 주저한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가능하다. 실제로 이는 현재 신세계와 한화 등 4개 기업의 이사와 지배주주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추진하는 경제개혁연대가 소송을 위해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요청할 때 흔히 겪는 일이다. 

 

먼저 두 회사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 관계부터 정리해보자.

 

1998년 4월 ㈜신세계 이사회는 자회사인 ㈜광주신세계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의하였고, 이틀 후 이명희 회장의 아들인 정용진씨가 실권주 50만 주를 전부 인수하였다. 경제개혁연대의 추정에 따르면 ㈜신세계는 당시 ㈜광주신세계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420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2005년 6월 ㈜한화는 자회사인 한화에스앤씨㈜의 주식 40만 주를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씨에게 주당 5100원에 매각하였다. 경제개혁연대는 ㈜한화가 적정가격보다 싼 가격으로 보유주식을 매각함으로써 약 46억원 내지 121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재벌총수들의 이상한 자식 사랑

 

이 두 사례 모두 총수가 자신의 자식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기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사례에서 손해를 입은 주체는 형식적으로 신세계와 한화라는 회사들이다. 그러나 회사의 손해와 이득은 주주들에게 그 지분 비율만큼 귀속된다는 점에서 이는 결국 주주들이 손해를 본 것이다.

 

흔히 주주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대며, 소송 참가에 유보적이다.

 

첫째 이 소송을 추진한다고 해서 주주들에게 직접적으로 생기는 이득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는 맞는 지적이다. 주주대표소송은 승소하는 경우에도 그 배상금이 원고주주에게 직접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귀속되는, 일종의 공익적 소송이다.

 

그러나 주주대표소송은 이사⋅경영진⋅지배주주의 불법부당행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궁극적으로 회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며, 이를 통해 기업 가치를 제고함으로써 결국 주주들도 수혜자가 된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주주대표소송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체벌'이자, 미래에 반복될 수도 있는 부정행위에 대한 '사전경고'의 기능을 한다. 즉 남의 돈을 훔쳐간 사람에게 훔쳐간 돈을 '뱉어' 내게 하고, '도벽'이 재발하지 않도록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규율장치가 없다면 범법행위는 계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자신이 보유한 회사의 주식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주대표소송을 하면 기업가치가 훼손된다고?

 

주주대표소송을 진행하는 경우 또다시 회사가 어려워져서 결국 기업가치가 훼손되지 않겠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기업과 총수 일가가 동일시되는 현실에서, 총수 일가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회사의 경영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에 대한 형사상 사법처리가 진행되는 동안 현대자동차의 주가는 다른 회사의 주가에 비해 많이 상승폭이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주주대표소송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영진을 다시 감옥으로 집어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형사처벌은 그가 불법행위로 얻은 이익을 반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자의 경우 대부분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가 감옥에 갇힐까 두려워 불법이득을 반환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주주대표소송은 이사나 지배주주의 사익추구행위로 인한 회사의 손해를 원상 회복시키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총수 일가의 사법처리에 따른 회사의 혼란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물론 소송을 당하는 입장에서 전혀 부담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소송압력은 사익추구를 하는 총수일가나 경영진에게는 부담이 될지는 몰라도 주주에게는 이로운 것이다.

 

과거 분식행위와 배임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던 최태원 회장이 그러한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다른 재벌에 비해 이사회 중심 경영을 펼치는 것이 하나의 예이다. 오히려 이러한 주주대표소송이 없다는 사실은 회사 내외부의 견제장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는 기업가치의 평가에 있어 대단히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주주행동주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의에는 동감하지만 다른 소액주주들이 소송에 참여하겠지라고 생각하여 수수방관하는 일부 주주들이 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흔히 무임승차 (free-rider)의 문제라고 한다.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회사의 가치가 증대되는 것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주주나 참여한 주주나 동등하게 누리게 된다.

 

반면에 소송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실질주주증명서를 발급받거나 소송제기 전까지 주식처분이 제한되는 등의 부담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무임승차'의 문제 때문에 상당한 경우의 주주대표소송이 무산되고는 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이나 금융기관과 같은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주주행동주의가 요구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기관투자자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이사나 지배주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관행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한국은 아주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경제개혁연대와 같은 공익단체들이 소액 주주들의 주식을 모아 공익소송의 형식으로 주주대표소송을 진행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다 보니 깨어있는 소액 주주들의 의식적인 참여 없이 소송은 불가능하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격언이 있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을 방치하는 사람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 옆에는 언제나 그 사람이 계속해서 잠들어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

 

여기, 제 권리 찾기에 소극적인 소액주주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옆에 이러한 광경을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몇몇 재벌총수와 경영진이 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내 돈을 지키는 것도, 우리 회사를 튼튼하게 하는 것도, 그리고 나라 경제를 살찌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경제개혁연대는 ㈜우리금융지주, ㈜삼성증권, ㈜삼성화재해상보험, ㈜신세계, ㈜현대자동차, ㈜한화, ㈜삼성카드 등의 소액주주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소액주주들은 경제개혁연대 홈페이지(www.ser.or.kr)나 전화(02-763-5052)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태그:#경제개혁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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