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별립산에 오르는 마지막 정상길. 줄을 타고 오른다.
 별립산에 오르는 마지막 정상길. 줄을 타고 오른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정기산행, 창후리 별립산 3월 8일 10시 집합'

우리 모임 산악대장이 보낸 문자메시지이다. 한 달에 두 번 가는 산행. 쉬는 토요일이면 우리 고장 강화도의 산을 더듬고 있다. 자연을 찾아 맑은 공기를 쐬고 오면 며칠간은 몸과 마음이 가뿐하다. 그뿐만 아니다. 간단한 간식을 산 위에서 나눠먹는 맛 또한 산행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가끔 부부가 모여 함께 산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내의 출석률은 극히 저조하다. 그래도 올 들어 빠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얼마나 갈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에도 떠나기 전부터 엄살이 심하다.

"별립산이 어디에 있지요? 처음 들어보는데…. 산이 험하지는 않을까 몰라! 몸도 뻐근한데 밀린 일이나 할까?"

마지못해 준비를 서두른다. 날이 풀린 봄날에 집안일은 잊어버리고, 봄 마중 다녀오자는 말에 어물쩍 따라나선다.

별립산에도 봄이 오고 있다

강화라면 모르는 곳이 없다는 아내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를 정도로 별립산은 알려진 산이 아니다. 산 정상에 군부대 시설물이 있고,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는지라 사람들과 접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강화도에는 산행을 즐길 만한 산이 참 많다. 주말에 길게 줄지어 타야 하는 산부터 산책삼아 가볍게 걷는 산까지 즐비하다. 암릉이 있는 험준한 산길도 있고, 호젓한 산길도 있다. 자기 체력에 맞는 산을 골라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 일행은 48번국도를 따라가다 하점면 창후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별립산은 나도 초행길이다. 처음 오르는 산이라 기대가 크다. 미리 사전 조사를 마친 산악대장이 길을 안내한다.

별립산에 오르며 펼쳐진 산하가 그림 같았다.
 별립산에 오르며 펼쳐진 산하가 그림 같았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산 들머리에 들어서자 겨울의 끝자락은 서서히 꼬리를 내리는 듯싶다. 숲 속의 고요함이 평화롭다. 간간히 작은 새들이 푸드덕 날며 지저귄다. 녀석들의 즐거운 노랫소리에 겨우내 잠든 산하가 깨어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일까? 어느새 자연은 계절의 변화를 빠르게 눈치 채고 있다. 나무의 눈이 통통 살이 쪄 부풀려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며 따스한 기운을 기다리며 잔뜩 힘을 모으고 있는지도 모른다. 숨죽이며 살아남은 나무가 어느새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변했을까? 식물의 눈에서 활짝 웃음꽃을 피울 날도 머지 않으리라.

벌써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얼마 가지 않았는데도 이마에 땀이 맺힌다. 이미 겉옷은 거추장스럽다. 어제 마신 술독이 흐르는 땀으로 모두 빠져나가는가! 산에 오르며 숨은 가쁘지만 마음은 날아갈 것 같다.

"어! 이곳에도 약수터가 있네! 목 좀 축이고 가자구!"

절터로 보이는 곳 밑에 맑은 약수가 흐르고 있었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절터로 보이는 곳 밑에 맑은 약수가 흐르고 있었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기분이 이럴까? 약수터에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숨을 고르고 계신다. 우리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서 손짓을 한다.

"어디서들 오셨을까? 우린 산 밑 창후리에 사는데. 약수로 목을 축이고 가시겨. 배속까지 시원할 거니까!"

약수터에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도 봄이 묻어 있다. 단숨에 들이키는 물맛이 달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며 먹는 한 모금의 물, 이게 바로 생명수가 아닐까 싶다.

산을 저렇게 까부셔도 되는 건가?

물 한 모금이 팍팍한 다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 헐떡이는 숨도 잠깐이다. 첫 번째 능선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인다. 가슴을 헤집고 지나는 바람이 부드럽다. 봄바람이다.

"강화 산은 어디를 가도 멋져! 별립산이 야트막한 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야가 시원할 줄 몰랐네!"

별립산에서 바라본 드넓은 들판과 첩첩이 펼쳐진 강화의 산
 별립산에서 바라본 드넓은 들판과 첩첩이 펼쳐진 강화의 산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창우리 선착장 옆에는 무태돈대가 있다. 바다 건너가 교동도이다.
 창우리 선착장 옆에는 무태돈대가 있다. 바다 건너가 교동도이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일행이 환호성을 지른다. 발아래 멀리 드넓게 펼쳐진 평야는 바둑판같은 망월리 벌판이다. 오른쪽으로 창후리 선착장이 보인다. 출렁이는 바다 너머 왼쪽은 석모도,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교동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가파른 산길에 로프가 놓여 있다. 정상이 머지않은 모양이다. 마지막 힘을 비축하기 위해 펑퍼짐한 바위에 앉아 쉬기로 했다.

아! 그런데 이게 뭔가? 못 볼 것이라도 본 것 같은 볼썽사나운 게 눈에 띈다. 무참하게 깎여진 산허리를 보면서 일행들이 안타까움에 탄식을 한다.

48번국도 끝인 인화리에 있는 산이 채석으로 산 허리가 잘린 모습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48번국도 끝인 인화리에 있는 산이 채석으로 산 허리가 잘린 모습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누가 산허리를 저렇게 잘라놓을 수가 있을까?"
"산을 깔아뭉개면 복원도 못할 텐데…."
"저게 인화리 상산(上山)인데, 자연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하고 있어!"

48번국도가 끝나는 인화리에 있는 산에서 채석하느라 중장비로 헐어낸 모습이 흉하기 그지없다. 개성 송악산과 김포 문수산의 산세가 바다 건너 교동 화개산으로 이어지는 지맥을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안타깝다.

별립산은 도도히 흐르는 길고 큰 강을 지키다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정상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드디어 해발 400m의 별립산 정상. 정상 바로 옆 봉우리에는 군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통제구역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깎아지른 절벽인 바위산인지라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별립산(別立山)은 다른 산과 연결되어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다 하여 별립산이라 부른다. 또, 호랑이가 무릎을 꿇어앉은 형상을 하였다 하여 준호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강화지맥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봉천산이 이웃이고, 고려산, 혈구산, 진강산 그리고 마니산이 첩첩산중으로 펼쳐진다. 한 폭의 그림이 이보다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가 서해바다에 안긴다. 강 너머는 북한 땅이다.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가 서해바다에 안긴다. 강 너머는 북한 땅이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남한의 서북쪽 맨 끝자락에 자리 잡은 별립산. 홀로 서 있어도 외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별립산은 한강과 임진강이 한 몸이 되어 흐르다가 한 줄기는 강화해협으로 흐르고, 또 한 줄기는 예성강과 만나 서해 바다로 흘러가는 끝자락을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의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이 인다. 시냇물이 모이고 모여 큰 강물이 되고, 결국 어머니 품속 같은 바다에 안기는 현장을 아무리 바라봐도 싫지가 않다. 거대한 물줄기 너머 북녘 땅이 보인다. 맑은 날에는 북한의 현백평야와 송악산까지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

소나무 그늘 아래 한참을 쉬니 세상이 모두 내 것 같다. 좀더 머물고 싶은 생각에 발길을 옮기기가 싫다. 산악대장이 귀가 번쩍 띄는 소리를 한다.

"자! 하산합시다. 창후리 어판장에서 갈매기 날갯짓도 보고, 숭어회에 소주 한 잔 해야죠!"

창후리 선착장의 갈매기 떼가 한가롭다.
 창후리 선착장의 갈매기 떼가 한가롭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창후리 어판장에는 인근 서해에서 건진 싱싱한 횟감이 많다.
 창후리 어판장에는 인근 서해에서 건진 싱싱한 횟감이 많다.
ⓒ 전갑남

관련사진보기



태그:#별립산,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