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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이 아름다운 도시, 로마. 그곳에서는 자동차조차도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
▲ 로마의 빈티지카 오래된 것이 아름다운 도시, 로마. 그곳에서는 자동차조차도 오래된 것이 아름답다.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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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거리는 미니카와 빈티지카의 천국이다. 이 곳은 작은 것, 오래된 것이 아름다운 곳이다. 로마 시내에서 람보르기니나 페라리를 본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고급 스포츠카들은 길을 잘 닦아 놓은 곳에서 타야 한다.

로마처럼 울퉁불퉁한 노면 위에서는 탈 만한 곳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 멋지고 빠른 차를 만드는 그들도 재미있지만, 그런 차 비슷하게 만들지도 않고 시원스레 큰 도로를 빵빵 뚫어 놓은 우리도 웃긴다.

웬만해선 경적소리 들을 수 없는 도시

로마 시내에는 작은 도로만 있다. 웬만큼 시내를 벗어나도 큰 도로에 닿기 어렵다. 그런 로마의 도로 사정으로는 작은 것만이 살아남는 것처럼 보인다. 한강 양쪽에 그 넓은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가 있고, 강남과 신도시들에 그토록 넓은 도로가 있지만 차들도 서울을 닮아 길쭉길쭉 넓쭉넓쭉해서 그마저도 좁게 느껴진다.

서울은 모던하며 넓고 좋지만 그 위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 디자인과 운전자 매너는 세련되고 모던한 모습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그렇게 크고 넓은 도로를 만들어두고도 서울은 막히고 또 막힌다. 운전자들의 마음에는 브레이크가 없는지 한 순간도 보행자를 위해 멈추지 않는다.

유물로 먹고 사는 현대의 로마 시민이 지금도 거대한 무덤 속에서 사느라 길도 못 닦고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쪽이 행복해 보인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자동차 진입로를 막고 서서 넋 놓고 구경하는 관광객이 있다해도 그들은 사람을 향해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마음 확 상하는 경적 대신 하이빔으로 보행자에게 간단한 주의를 주며 충분히 기다렸다 가는 여유도 있다. 하이빔은 야간 주행시 상당히 위험하고 불쾌하지만 대낮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나 우리나 똑같이 속도를 좋아하지만 그들은 무단횡단하는 보행자일지라도 사람을 보면 우선 멈출 줄 안다. 기다렸다가 조용히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아무리 다혈질인 이탈리아인이라지만 무단 횡단자에게 경적을 쏘고 욕을 하고 우리처럼 싸우지는 않는다.

모든 인간은 다 무단횡단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인지하고 운전하고 있다. 다른 이를 탓하기보다는 스스로 주의하는 것에 익숙하다.

로마의 경차는 종류와 디자인이 다양하다. 그 중에는 디젤을 연료로 하는 경차도 있다.
▲ 로마의 경차 로마의 경차는 종류와 디자인이 다양하다. 그 중에는 디젤을 연료로 하는 경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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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디젤로 움직이는 경차.
▲ 연료 주입구 의외로 디젤로 움직이는 경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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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흔하디 흔한 미니카, 서울에선?

서울에서 미니카를 보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무대뽀' 운전 매너를 가진 서울에서 경차만큼 위험천만한 것이 또 없기 때문이다. 사고라도 났다하면 사고율도, 치사율도 높아서 당연히 작은 차는 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질량이 적게 나가는 차라면 접촉사고 시에 불리하기 때문에.

물론 그런 물리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법적인 문제도 있다. 9:1 과실이 나오더라도 과실 적은 쪽에서 돈을 더 내는 황당한 상황도 발생한다. 차가 비싼만큼 수리비도 더 많이 나오게 되어 있으니까. 누구라도 무조건 비싼 걸 사고 싶게 만들어놓은 법이다.

행여 비싼 차 건들기라도 할가봐 다들 알아서 기어주고 피해준다. 참 여러모로 편한 차다.  편하다는 것에는 차가 커서 발 뻗기 좋아 편하다든지, 주행능력이 탁월해서 편하다든지, 혹은 대충 막 굴릴 수 있는 차라서 편하다든지 등등 여러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차가 알아서 피해줘서 편하다는 것만큼 저질적인 이유가 또 있을까?

서울에서 자동차를 사는 공식은 첫째 클 것, 둘째 비쌀 것, 셋째 신형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크고 비싼 차를 선택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도로나 주차 공간이 좀 더 여유로워질 것이다. 관세와 세금을 아무리 많이 물려도 탈세를 해서라도 'BMW 7시리즈'를 타야 '간지'가 나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스쿠터 헬멧마저 명품 액세서리처럼 보이네

이탈리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바이크이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쿠터이다.
▲ 베스파 이탈리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바이크이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쿠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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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도로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스쿠터였다.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에서도 스쿠터 타는 장면이 나올 정도이다. 영화가 먼저인지 스쿠터 문화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쿠터를 타는 연인은 로마의 가장 자연스러운 풍경 중 하나이다.

렌탈 사업도 굉장히 발달해 있다. 상상 이상으로 스쿠터 천국인데 놀라운 것은 헬멧을 거의 대부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안전장구이기 보다 패션 소품이나 드레스 코드처럼 보였다. 하차 후에 팔에 걸고 가는 풀페이스 헬멧은 이탈리아 명품 가방 브랜드의 가방 만큼이나 소중해보였다.

한국에서처럼 바이크에 그냥 걸어두는 것은 소매치기 왕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불가능하겠지만 사실 헬멧을 바이크 안에 넣을 수도 있는데 들고 다니는 걸 보면 역시나 라이더임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거 같다.

이탈리아인들은 스쿠터 하나에도 멋을 아는 것처럼 보였다. 빅스쿠터에 수트를 입고 회색 풀페이스 헬멧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보기에 멋스러웠다. 그게 유행인가 싶을 정도였다. 자동차 사이를 잽싸게 빠져나가고는 해서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는 로마의 모습이다.

한국에서 스쿠터 동호회 한참 활동할 때 그런 복장을 하고 타는 분의 사진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거의 시위 수준이었고, 퍼포먼스였다. 메시지는 "돈 없어서 바이크 타는 게 아니랍니다", "돈 있고 멀쩡히 직장 생활하는 사람도 바이크 타도 됩니다"였다.

우리와 많이 닮은 이탈리아인,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탈리아에서 느낀 것 중 하나가 한국과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는데 유럽 사람치고는 검은 머리 검은 눈이 많은 데다 키도 큰 편이 아니라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이들도 우리처럼 검은 머리에 작은 키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멋진 정장을 입고 지나가는 이탈리아인을 보면 '수트란 이탈리아인을 위해 발명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어울렸다. 꼭 금발에 하얀 피부만이 미의 기준은 아니라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똑같이 속도에 미쳐있고, 똑같이 검은머리 검은 눈의 사람들, 똑같이 빨간 음식을 먹고, 똑같이 다혈질이다. 사회 인식과 시스템이 차이를 만든다. 사람을 바꿀 게 아니라 인식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로마는 작고 귀여운 차가 당당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도시다.
▲ 로마의 경차 로마는 작고 귀여운 차가 당당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도시다.
ⓒ 정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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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7년 6월부터 9월까지 여행한 내용입니다.



태그:#이탈리아, #여행, #로마, #미니카,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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